튀르키예 대지진 여파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튀르키예 정부 등을 비판한 인물에 대한 견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튀르키예 ShowTV 앵커는 대지진 원인과 미흡한 대비에 관해 비판 발언을 했다가 사임했다. 튀르키예 정부에 ‘미운털’이 박힌 인물이 회장으로 있는 한 사단법인에 대해 주한튀르키예대사관이 ‘테러 조직 구성원’이라는 입장을 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진 관련 비판 발언한 앵커, 사임 밝혀

이번 튀르키예 지진은 발생 범위가 매우 컸다. 무너진 건물이 1만 채가 넘는다. 튀르키예가 과거부터 걷은 지진세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터키 ShowTV의 Dilara Gönder 앵커가 방송에서 지진과 관련한 비판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유튜브 영상 캡처. 
▲터키 ShowTV의 Dilara Gönder 앵커가 방송에서 지진과 관련한 비판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유튜브 영상 캡처. 

지난 8일 튀르키예 ShowTV 앵커인 Dilara Gönder는 방송을 통해 비판적 발언을 했다. 유튜브 등에서 볼 수 있는 ShowTV 방송 장면을 보면, Dilara Gönder 앵커는 “여러분들을 보며 말하고 싶다. 광고에서 보이는 이 아파트는 여러 사람들의 죽음의 값이다. 어떤 건설업자가 만들었는지, 어떤 토목 기사가 만들었는지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앵커 옆의 한 전문가는 “누가 승인했는지도 (다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앵커는 “이것은 많은 이들의 무덤이다. 이 아파트들은 1년 전에 건축됐다. 사람들을 산 채로 묻었다”고 지적했다.

방송 후인 9일 Dilara Gönder는 자신의 트위터에 “쓰기 굉장히 힘들지만 나는 사임했다. 지금까지 내게 이런 기회를 준 동료들과 Ciner 미디어 그룹에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ShowTV의 앵커인 Dilara Gönder의 트위터. 방송 이후 9일 그는 트위터를 통해 스스로 사임했다고 밝혔다. 사진출처=Dilara Gönder 트위터. 
▲ShowTV의 앵커인 Dilara Gönder의 트위터. 방송 이후 9일 그는 트위터를 통해 스스로 사임했다고 밝혔다. 사진출처=Dilara Gönder 트위터. 

한국으로 망명한 튀르키예 기자
“튀르키예 비판하면 체포 당해”

튀르키예 출신 기자이자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알파고 시나씨는 튀르키예 정부에 각을 세운 이들은 탄압을 받는다고 증언했다. 

알파고 기자는 13일 ‘YTN 라디오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 “지진세를 걷은 주무처에서 세 번 정도 연임한 장관이 있었는데 지금 그분은 정부로부터 아웃됐다”며 “너무 바른 말을 많이 해서 아웃된 사례다. 기자들이 몇 년 전 그에게 ‘그동안 지진세를 걷어놨는데 그 돈 어디 갔냐’라고 물어봤는데 ‘우리는 그 돈으로 도로를 깔았다’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진행자인 이재윤 YTN 아나운서가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세금을 거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자꾸 질문하면 튀르키예에서는 감옥에 갈 수 있다. 답변하는 걸로 만족해야 한다”며 “얼마 전 어떤 앵커가 ‘우리는 이렇게 지진 대비를 했는데 이게 결과냐’라고 말했고 정부를 비판하지도 않았는데 다음날 해고가 됐다”고 전했다.

이어 알파고 기자는 “(튀르키예 정부를) 비판한다는 것만으로도 체포할 수 있다. 비판하면 애국자가 아니라 반역자라는 논리”라며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전했다.

▲ 튀르키예 출신 언론인 알파고 시나씨. 사진=김용욱 기자
▲ 튀르키예 출신 언론인 알파고 시나씨. 사진=김용욱 기자

알파고 기자는 에르도안 정부의 언론 탄압을 피해 한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튀르키예 최대 민영 통신사인 지한통신의 한국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지한통신은 튀르키예 최대 신문사 중 하나인 ‘자만’ 계열의 통신사로 2013년 에르도안 대통령의 비리 의혹을 크게 보도한 후 강제 법정관리를 당하게 된다. 이후 자만의 편집국장과 기자들이 체포되거나 구금되는 일이 벌어졌다.

[관련 기사: 경향신문: 에르도안식 언론 탄압, 최대 언론사 ‘자만’ 강제 법정관리]

산자부 산하 사단법인이 ‘테러 조직’으로 오인되기도

튀르키예 정부가 ‘미운털’이 박힌 인물들을 견제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주한튀르키예대사관은 지난 12일 튀르키예 지진 구호를 위한 후원 활동을 벌이는 일부 단체에 지원하지 말라며 공문을 게시했다.

주한튀르키예대사관은 “일부 소셜미디어에서 Global Business Alliance(GBA)라는 이름의 기관이 우리 대사관과 합동해 지진 구호를 위한 물품 및 현금 모금 활동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GBA는 우리 대사관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면 해당 관리자는 테러 조직 구성원으로 튀르키예에서 수배 중인 사람이다. 이런 이유로 해당 기관에 모집된 기부금이 튀르키예에 전달될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주한튀르키예대사관은 “기부하고자 하는 한국인 형제인들은 튀르키예 지진 재해를 위한 기부금을 우리 대사관이나 AFAD, 튀르키예 적신월사, 대한적십사와 같이 신뢰할 수 있고 잘 알려진 기관 및 조직에 기부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주한튀르키예대사관이 2월12일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입장문. 이를 두고 수십개의 한국 언론이 GBA의 관리자가 테러조직 구성원이라는 내용을 담은 기사를 올렸다. 그러나 GBA 측은 단체가 테러조직과 전혀 관련이 없으며 튀르키예 대사관의 입장은 허위사실이라고 전했다. 사진출처=주한튀르키예대사관 페이스북. 
▲주한튀르키예대사관이 2월12일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입장문. 이를 두고 수십개의 한국 언론이 GBA의 관리자가 테러조직 구성원이라는 내용을 담은 기사를 올렸다. 그러나 GBA 측은 단체가 테러조직과 전혀 관련이 없으며 튀르키예 대사관의 입장은 허위사실이라고 전했다. 사진출처=주한튀르키예대사관 페이스북. 

GBA 관리자를 ‘테러 조직 구성원’이라고 규정한 주한튀르키예대사관은 ‘주의를 요하는’ 계정을 소개하면서 알파고 기자의 한국인 아내 계정을 캡처해 올리기도 했다. 알파고 기자의 아내는 튀르키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전달하면서 다양한 국제구호기구를 소개했는데 이 가운데 GBA도 포함돼 있었다.

GBA “테러 단체와 무관…대사관 입장 받아쓰기 전 확인했다면”

GBA 측은 곧바로 입장을 내고 자신들은 ‘테러 조직’과 전혀 관계 없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사단법인이라고 밝혔다. 알파고 기자 역시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GBA와 알파고 기자는 튀르키예 대사관 입장을 그대로 받아쓴 일부 한국 언론에 직접 수정을 요청했고 수많은 기사들이 삭제되거나 수정됐다.

GBA 측은 14일 공식 입장을 통해 “튀르키예 대사관 보도자료에 언급된 테러 또는 테러 조직과 일체 무관하며, GBA는 2019년 창립된 산자부 산하 사단법인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60여개국의 외국인 사업가들과 한국의 사업가들이 만나 만든 수출입 비즈니스 플랫폼”이라며 “모금과 관련해서는 GBA와 터키 대사관과 합동해 모금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튀르키예 지진으로 인한 피해 복구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국내 모금 단체 중 하나인 국제구호기구를 통해 기부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4일 GBA 측의 공식입장. 
▲지난 14일 GBA 측의 공식입장. 
▲GBA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단체에 대한 설명. 사진출처=GBA 홈페이지. 
▲GBA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단체에 대한 설명. 사진출처=GBA 홈페이지. 

김은진 GBA 사무총장은 16일 통화에서 “자세한 내막을 알 순 없지만 튀르키예 정부는 조금이라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인물을 감옥에 보내거나 ‘테러리스트’라고 부른다. 우리 단체 회장의 경우 정부를 비난하는 행동을 하지도 않았는데 미운털이 박혔는지 과거부터 몇 번 이런 적이 있었다”며 “현재 대사관에 어떻게 대응할지 내부 회의 중”이라고 했다.

김 사무총장은 “튀르키예 대사관의 보도 자료를 받아쓴 언론 20여곳에 직접 수정을 요청했다. 대부분 언론이 기사를 삭제하거나 수정했다”며 “대사관 공식 입장이니 언론들이 확인 없이 보도한 것도 이해하지만, 우리로선 매우 억울하다. (언론이 우리에게) 미리 확인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알파고 기자도 15일 통화에서 “튀르키예 대사관에서 GBA에 관해 밝힌 입장은 사실이 아니다. 아내 역시 SNS에 구호 물품을 보낼 수 있는 국제구호기구를 소개한 것뿐인데 튀르키예 대사관이 개인 SNS까지 캡처해 ‘주의를 요한다’는 식으로 올렸다. 이 때문에 언론사에 직접 요청해 사진을 삭제하고 수정했다”며 “언론인이라면 GBA라는 단체가 어떤 곳인지 한번 찾아보고 기사를 써야 하는데 조금도 찾아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요청에 즉각적으로 기사를 삭제하고 사과한 언론인도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미디어오늘은 주한튀르키예대사관에 왜 GBA를 테러 조직과 연관해 입장을 냈는지 질문했지만 17일 오전까지 답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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