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콘텐츠, 왜 거기다 공짜로 쓰세요?”

참여형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alookso, a look at society)가 지난해 11월부터 콘텐츠 생산자를 공모하면서 내건 문구다. 얼룩소가 글 쓰는 생산자를 공모하고 글에 보상을 지급하며 프로젝트가 확산됐다. 페이스북 등 여타 플랫폼에서 활동하던 필자들이 얼룩소로 옮겨가면서 ‘글 값’ 논쟁이 점화됐다.

얼룩소는 2021년 9월30일 ‘프로젝트 얼룩소’로 시작해 ‘쏘프라이즈’ 등의 실험을 거쳐온 미디어 플랫폼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 정혜승 대표가 설립에 참여하고 이재웅 전 쏘카 대표가 투자, 천관율 전 시사IN 기자가 에디터로 합류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얼룩소는 사회적 의제에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론장을 구축하고 지속가능한 미디어 생태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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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플랫폼 얼룩소가 콘텐츠 생산자를 모집한다는 공고. 사진출처=얼룩소 홈페이지.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가 콘텐츠 생산자를 모집한다는 공고. 사진출처=얼룩소 홈페이지. 

한 편에 수백만원 받은 사례도…“‘글 값’ 과소 평가돼왔다”

지난 11월 콘텐츠 생산자를 공모한 얼룩소는 선정된 생산자에게 1주일에 최소 100만 원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시작했다. 많은 참여를 이끈 생산자는 그 이상의 보상을 받는다. 공식적으로 콘텐츠 생산자로 선정 되지 않아도 이용자들이 콘텐츠를 게시하고 많은 이용자 참여를 이끌었다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얼룩소는 매주 한 번 보상한다. 누구나 기사를 작성하고 기사가 채택되면 원고료를 받는 오마이뉴스 시스템과 유사하지만, 오마이뉴스 보상 등급은 정해져 있고 편집부가 그 등급을 결정해 고료를 지불하는 반면, 얼룩소는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 낼수록 더 많은 보상을 제공한다는 차이가 있다.

몇몇 필자들이 얼룩소에 글을 게시하고 한 편에 수백만 원을 받았다는 사례가 알려지며 ‘글 값’ 논쟁에 불이 붙었다. 얼룩소에서 큰 보상을 받은 필자들은 “지금까지 글을 써서 받았던 액수 중 가장 큰 액수”, “글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글 값’은 너무 과소평가됐다” 등의 이유로 얼룩소 보상 시스템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우리사회가 지금까지 글 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얼룩소도 ‘가치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정당한 보상을 받는 곳’이라고 홍보하는 이유다.

▲2월 1주차 '얼룩소 트렌드' 글 가운데 발췌. 얼룩소는 매주 1번 글들에 대한 보상 상황을 정리해 공개한다. 사진출처=얼룩소 홈페이지.
▲2월 1주차 '얼룩소 트렌드' 글 가운데 발췌. 얼룩소는 매주 1번 글들에 대한 보상 상황을 정리해 공개한다. 사진출처=얼룩소 홈페이지.

물론 한 편에 수백만 원을 받는 사례는 흔치 않다. 얼룩소가 주1회 공개하는 ‘얼룩소 트렌드’를 보면, 한 주의 보상액은 2000만 원이 넘고 한 편에 수십만 원을 가져가는 콘텐츠가 여러 개다. 2월 첫 주의 경우 10만 원 이상 보상을 받은 필자는 67명이었고 20만 원 이상의 보상을 받은 이는 37명, 50만 원 이상 보상을 받은 사람은 8명이었다.

예를 들어 김형민 PD가 쓴 <태극기랑 586이 뭐가 다른데?>라는 한국 정치에 관한 글은 한 편에 70만 원 이상의 보상을 받았고,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가 쓴 <지방대생은 어리숙하지 않고 이상하지도 않다>는 글은 50만 원에 가까운 보상을 받았다.

얼룩소는 ‘페북 유료화’? 유료화에 성공할까 관심도

이 같은 현상을 비판하는 이용자들도 있다. “기존 페이스북 등에서 공짜로 읽을 수 있던 글을 얼룩소가 가져갔다”라며 사실상 ‘페북 유료화’가 아니냐는 불만이다. 참여도가 높으면 많은 보상을 주는 시스템이 공론장을 만들겠다는 목표와 부합하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또 얼룩소는 월 9900원의 유료 ‘얼룩 패스’를 이용해야 글을 볼 수 있는데, 현재는 간단한 투표를 진행하면 이 패스를 무료 제공한다. 그러나 이후 실제 유료 서비스를 이용할 사람은 적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얼룩소는 현재 몇가지 투표를 진행하면 월9900원의 '얼룩패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해당 이벤트가 끝나고 유료 서비스에 돈을 지불하는 독자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 지도 미디어 업계의 관심사다. 사진출처=얼룩소 홈페이지. 
▲얼룩소는 현재 몇가지 투표를 진행하면 월9900원의 '얼룩패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해당 이벤트가 끝나고 유료 서비스에 돈을 지불하는 독자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 지도 미디어 업계의 관심사다. 사진출처=얼룩소 홈페이지. 

얼룩소에 콘텐츠를 올린 적 있는 ‘지금은 없는 시민’ 저자 강남규씨는 한 편에 수십~수백만 원의 보상을 받는 글은 예외적으로 본다고 전했다. 강씨는 2일 통화에서 “한국 정치와 사회에 대해 진보적 관점이 더 필요하다는 글을 주로 쓰는데, 내가 생각한 독자의 타깃이 얼룩소 이용자와 맞지 않는다는 고민이 있다”며 “글 값 논쟁도 있는데, 매우 큰 반응을 부른 예외적 콘텐츠를 제외하면 그렇게 큰 보상이 뒤따르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씨는 “큰 히트 콘텐츠가 아니면, 신문 고료와 비교해서도 적다고 느껴진다. 신문에 기고할 경우 고료뿐 아니라 필자 인지도가 높아지는 효과도 있는데, 이 역시 큰 범주의 ‘글 값’이라고 생각한다”며 “결국 예외적 상황이 아니면, 얼룩소 플랫폼에선 이용자 반응에 따라 보상을 받게 되는데 일종의 편향이 발생할 수 있다. 이용자들의 관심이 적은,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밝혔다.

“지속가능을 위해 더 좋은 시스템 정비해야” 지적도

페이스북 기반의 뉴스 플랫폼 ‘뉴스포터’를 운영하는 신혜리 에디터는 얼룩소가 지금과 같은 시스템에 머문다면 ‘부익부 빈익빈’, 즉 몇몇 인플루언서들만 많은 보상을 받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 에디터는 2일 통화에서 “얼룩소가 소위 ‘인플루언서’만 살아남는 시장이 될 것이며 나머지 기고자들은 박탈감에 사라질 것이라는 지적에 공감하는 편”이라며 “이미 프리미엄 구독을 시도한 다른 유료 모델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매출이 굉장히 높은 채널을 위주로 편향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런 현상이 지속되면 다른 이들은 회의감이 들고 떠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다양한 콘텐츠를 확보하고 지속 가능하게 하려면, 잘되는 채널이나 기고자들보다 발전 가능한 곳에 지속해서 투자하고 키워주는 역할을 플랫폼 공급자들이 해야 한다”며 “좋은 공론장이 되고 싶다면 이미 다른 플랫폼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 혹은 현재는 힘이 없지만 발전 가능성이 있는 목소리들도 키워내기 위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짚었다.

얼룩소 측은 이용자들의 토론에 직접 의견을 내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얼룩소 관계자는 3일 “얼룩소는 계속 만들어가는 중이다. 이용자들이 주신 비판 의견도 큰 도움이 된다”며 “감사하게 살펴보고 개선에 반영하려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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