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갑작스러운 속보가 인터넷 망 여기저기에 퍼지기 시작했다. 동명의 인기 웹소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웹툰을 제작한 레드아이스 스튜디오의 전 대표이자, 해당 작품에서 작화를 담당했던 장성락 작가가 향년 37세의 나이에 별세했다는 소식이었다. 레드아이스 스튜디오가 밝힌 공식적인 사인은 뇌출혈이었다. 27일 한겨레의 보도에서 장성락 작가는 평소 고혈압 등의 지병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관련 기사: 한겨레: 37살 웹툰 작가의 죽음, 장시간노동 현실 재소환했다]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은 추공 작가의 원작 웹소설 이상으로 센세이션을 낳은 작품이었다. 원작이 소위 ‘헌터물’이라는 한국 판타지의 새로운 클리셰이자 경향성을 만들었던 작품이라면, 웹툰은 이를 몰입감 넘치는 연출과 이미지로 구현하면서 더욱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의 인기는 한국을 넘어 일본, 미국, 프랑스 등 해외 국가에도 전파되었다. 장성락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이었던 7월4일 세계적 그룹인 일본 소니 산하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A-1 픽쳐스와 애니메이션 전문 플랫폼 크런치롤(Crunchyroll)이 투자해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까지 발표되었던 상황이었다. 장성락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것을 미처 보지 못한 채 먼 길을 떠나고 말았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는 웹툰을 그린 작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동시에 아직 40세도 채 되지 않은 젊은 작가가 어쩌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줄을 이었다.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서는 웹툰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국 웹툰의 작업 환경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반면 장성락 작가는 최근까지 레드아이스 스튜디오의 대표로 재임하는 등 여러 명의 작가들이 함께 웹툰을 그리는 작업 환경 속에서 일해왔던 만큼 장성락 작가의 웹툰 작업량은 적었을 가능성이 높음을 말하며, 작업량 등 웹툰 노동과 관련된 요인이 별세의 직접적 요인으로 보는 것은 어렵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고인이 대표로 재직했던 레드아이스 스튜디오 관계자도 앞서 언급한 한겨레의 기사를 통해 “지병이 있었지만 연재 당시 큰 건강 문제는 없었다”, “고강도 노동을 하지 않도록 협업 체제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을 남기며 노동 문제와의 선을 긋는 입장을 드러냈다.

▲'나 혼자만 레벨업' 애니메이션. 사진출처=카카오엔터테인먼트.
▲'나 혼자만 레벨업' 애니메이션. 사진출처=카카오엔터테인먼트.

장성락 작가의 사망은 이렇듯 구조적 요인과 크게 상관없는, 갑작스럽게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인가.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꼭 구조적 요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동시에 건강에는 가족력을 비롯한 유전적 요인이나 평소의 생활 습관을 비롯해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에 쉽게 건강에 대한 문제를 일반화하여 논의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 스튜디오 관계자의 코멘트처럼, 구조적으로 형성된 건강이나 노동 문제가 아닌 다른 요인이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만화 창작이 지니는 고강도 작업 문제 인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이 많은 작가나 만화계 관계자에게 퍼지는 이유는 장성락 작가를 비롯해 ‘나 혼자만 레벨업’이 가지는 상징성도 있지만, 더 이상 건강의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으로만 넘기기에는 어렵다는 인식이 커져가고 있음이 클 것이다. 이미 2021년에도 국제적으로 명성을 발휘하던 일본 다크 판타지 만화 ‘베르세르크’의 미우라 켄타로 작가가 향년 54세의 나이에 급성 대동맥 박리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사건이 있었다. 미우라 켄타로 작가의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그가 오랜 시간 동안 건강 관리에 신경을 썼음을 언급하며, 작업량 등의 문제가 사망과 연관이 있다는 해석에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한동안 만화가의 작업 환경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일본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잇달았던 것은 만화 창작이 지니는 작업 강도에 대한 문제를 모두가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분명 만화 창작은 뛰어난 스토리와 의도에 맞는 연출 구도를 찾는 이상으로 창작자에게 육체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이다. 평면의 종이 원고, 또는 평면의 태블릿 모니터에 마감 주기에 맞춰 일정한 작업량을 완성해야 한다. 대략적 콘티를 구상하기 위해, 다시 콘티를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선과 명암을 칠하는 과정에서 허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앞으로 기울어지며, 그 상태에서 오랜 시간 손을 움직여야 한다. 장시간 가까운 곳을 오랜 시간 응시해야 하는 것은 덤이다. 만약 연재 주기가 주간이라면 휴재라도 하지 않으면 집이나 작업실 밖을 나가는 것은 더욱 쉽지 않아진다.

▲'나 혼자만 레벨업' 웹툰 로고. 사진출처=카카오페이지. 
▲'나 혼자만 레벨업' 웹툰 로고. 사진출처=카카오페이지.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주간 연재 외에도 격주간, 월간 연재가 적지 않게 정착이 되어 있지만 한국은 투믹스, 만화경 등 일부 플랫폼을 제외하면 주간 연재가 기본으로 정착되어 있으며, 컬러 작업이 일반화되어 작업량이 한층 더 늘어난다는 특성까지도 존재한다. 동시에 관행적으로 어시스턴트의 고용 대금을 원고료에 산입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연재 시스템의 골간은 일본에서 들여왔으나 고료의 지급은 어시스턴트를 고용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주는 움직임이 오랫동안 이어져왔다는 역사적인 차이까지 도사리고 있다.

웹툰이 한국 만화의 주된 표현 방식으로 정착한 이래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흐름이 있었다. 그러나 산업의 논리에서 빠르게 콘텐츠가 갱신되어 독자의 눈길을 끄는 주간 연재 체제 (게다가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는 주 2-3회 연재도 있었다.) , 흑백보다는 확실히 눈요기가 늘어난 컬러 작업을 쉽게 포기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주간 연재와 컬러를 유지하면서 작업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는 서서히 ‘스튜디오 체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튜디오 체제는 스토리부터 콘티, 작화, 채색 등 최대한 업무를 분담할 수 있는 작업 과정을 전부 분리하여 분업화된 공정으로 작품을 공동으로 창작하는 시스템이다.

미국에서는 DC와 마블이라는 양대 만화 스튜디오가 오랜 시간 채택하고 있던 시스템이었으며, 일본에서도 (특히 주간 연재를 지속하는) 작가 상당수가 화실을 운영함에 있어 작가 1인이 만화 창작의 모든 일을 맡는 대신 고용한 어시스턴트에게 각자의 업무를 나누는 식으로 이러한 시스템이 부분적으로 적용되어 있었다. 한국 역시 출판만화 시기에도 어시스턴트, 특히 ‘문하생’들을 다수 활용하는 식으로 일본식 업무 분담 시스템이 일부 도입되어 있었지만 비용 문제 등으로 인해 직업적으로 활동하는 일본의 어시스턴트와 달리 한국은 숙식하며 작업을 배우는 대신 보수는 거의 지급하지 않는 도제식 제도인 ‘문하생’을 활용하는 경우가 다수였다. 그나마도 웹툰으로 전환되고 나서는 문하생 제도는 사실상 사라진 것이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다.

2010년대 웹툰이 출판 만화를 대체해 새로운 간판이 된 이후 상대적으로 2000년대에 비해 지급되는 고료의 양이 늘어났고, 주로 웹툰의 작업 난이도를 높이는 채색 작업에서 1-2명 내외의 어시스턴트를 고용하는 일이 점점 등장하기 시작했다. 본래 건축 설계 프로그램이었던 ‘스케치업’을 웹툰에 등장하는 배경 건축물 표현에도 가능하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최대한 작업량을 줄이기 위해 우후죽순 해당 프로그램을 웹툰 창작 작업에 사용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만으로는 웹툰의 주간 연재 체계에서 작가에게 쏠리는 작업의 강도를 완벽하게 줄이는 것은 어려웠다. 특히 웹툰에서 더욱 섬세한 작화, 화려한 연출을 원할수록 작업 강도 역시 비례하며 상승하는 상황에서 소수의 어시스턴트를 고용하거나 작업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만으로 이를 버티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한국 웹툰에서는 스튜디오 체제로 웹툰을 창작하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스튜디오를 만든다는 것은 하나의 법인 사업체를 만드는 일이고, 스튜디오에 소속된 창작자들에게 인건비를 지급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리하여 웹툰 스튜디오는 네이버를 비롯한 대형 웹툰 플랫폼이 직접 스튜디오를 설립하거나, 인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거나, ‘로맨스 판타지’나 ‘성인 만화’처럼 고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장르의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다수이다. 최대한 확실하게 이윤을 보장할 수 있는 작품을 우선적으로 창작하여, 그렇게 확보한 자본을 바탕으로 창작 업무를 분담할 수 있는 창작자들을 여럿 계약하는 식으로 스튜디오는 움직인다.

분명 스튜디오 체제는 주간-컬러 연재를 유지하면서 작업량을 최대한 줄이는 것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면서도 레드아이스 스튜디오의 ‘나 혼자만 레벨업’이나 네이버 산하의 LICO가 역시 동명 웹소설을 웹툰으로 만든 ‘내 남편과 결혼해줘’ 같이 실제 대중에게 인기를 얻는 작품이 다수 등장하며 한국 웹툰의 새로운 미래 시스템으로 이야기 되고 있었다. 비록 작가 개인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알리는 것은 쉽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안정적인 수입 획득과 작업량을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점은 많은 창작자들을 솔깃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웹소설을 웹툰으로 만든 ‘내 남편과 결혼해줘’. 사진출처=네이버웹툰. 
▲웹소설을 웹툰으로 만든 ‘내 남편과 결혼해줘’. 사진출처=네이버웹툰. 

그러나 이번의 안타까운 사건은 스튜디오 체제 도입과 같은 산업 차원의 변화가 지니는 중요성 이상으로 한국 만화 전반의 상황 파악과 현안 논의가 중요함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산업이 최대한 효율성 있게 변하는 것이 지니는 중요성을 도외시할 수 없다. 하지만 마치 일반적인 제조업을 비롯한 노사 문제가 효율적인 기계 도입과 같은 생산 체계의 개선으로 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작업이 이뤄지고 관계를 맺는 체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오랜 시간 접근할 때 비로소 근본적인 개선이 가능하듯 만화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건강의 문제는 분명 개인적인 요인을 무시할 수 없더라도, 최대한 구조적인 차원에서 개개인에게 가해지는 부하를 줄일 때 최대한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는 가능성을 막을 수 있다.

2010년대가 되어 만화가들의 처우 개선 요구가 늘어나고, 만화가들이 결성한 노동조합이 속속 등장하면서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에서는 정기적으로 만화 산업 및 만화가들에게 대한 실태조사를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실태조사의 결과가 적정한 수준의 작업량, 연재 주기 및 조건에 대한 논의 단계로는 아직 이어지지 못하고 있지 않은 것 역시도 현실이다. 휴재권 부여, 연 1회 건강검진 비용 지원 등을 내건 웹툰 플랫폼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근본적 작업 환경에 대한 논의와는 아직 거리가 먼 측면이 있다. 동시에 어시스턴트, 또는 스튜디오나 에이전시, 플랫폼 등의 웹툰 PD와 같이 작가가 아니지만 엄연히 만화 산업에서 근무하는 종사자가 놓인 작업 환경과 인권 현황 등에 대한 실태 파악은 더욱 이뤄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분명 모든 문제들에는 구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개인적 측면이 존재한다. 모든 문제의 책임을 구조로만 돌리는 것 역시도 그다지 가능하지 않은 움직임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나 칼 마르크스 같은 사상가들이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 지니는 특성을 일찌감치 언급했던 것처럼, 개인이 놓인 구조와 환경이라는 존재를 배제하는 것도 문제에 대한 온전한 접근을 가로막는다. 한국 만화 산업 내부에서 논의가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며, 동시에 이러한 작업 환경의 문제가 단순히 한국 일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일본, 미국 등 만화 산업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존재하는 국가들과 국제적 논의가 이뤄질 때 좀 더 명확하며 실천적인 ‘지속 가능한 만화’를 향한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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