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화 ‘브로커’의 강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브로커’는 보육원 출신 동수(강동원)와 세탁소를 운영하는 상현(송강호)이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버린 소영(이지은)의 아이를 훔쳐 팔려는 이야기다. 동수와 상현, 즉 브로커들은 입양을 원하는 부모에게 아기를 팔려고 하고 이를 쫓는 형사 수진(배두나)과 이형사(이주영)는 현행범으로 이들을 잡으려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어느 가족’이라는 영화에서 보여줬듯 ‘훔친 아이’로 만들어진, 기존의 전형적 가족이 아닌 새로운 가족의 탄생 혹은 그들의 좌절을 보여준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 이야기를 참신하게 그려왔다고 호평받는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송강호, 강동원, 이지은(아이유), 배두나, 이주영 등 한국 스타들과 함께 만들어 더욱 화제가 됐다. 호화캐스팅과 함께 제75회 칸영화제에서 송강호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영화가 널리 알려졌다.

▲영화 '브로커'의 한 장면.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브로커'의 한 장면.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영화는 어쩌면 학생 시절 논술 주제로 나왔을 법한, “베이비박스가 있기 때문에 아이를 버리는 사람이 많아지는 걸까, 아니면 베이비박스가 있기에 그나마 버려진 아이들이 살 수 있었을까”라는 고전적 주제를 건드린다. 영화 속 논쟁에서 “베이비박스가 있기에 그나마 버려진 아이들이 살 수 있다”는 선한 주장을 펼치는 인물은 브로커, 즉 인신매매범인 상현이다. 이처럼 고레에다 영화 주인공들은 양가적 모습을 가진다. 영화 브로커에서는 그러한 주인공들의 모습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특히 배우 송강호가 연기한 ‘선한 인신매매범’ 모습이나 배두나가 연기한 ‘인신매매범을 현장에서 잡기 위해 하루빨리 인신매매가 벌어지길 원하는 경찰’의 모습이 그렇다. 형사들은 인신매매가 잘 이뤄지지 않자 자신들이 인신매매할 상대(양부모)를 섭외해 인신매매를 유도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형사들은 “어쩌면 우리가 브로커였는지도 몰라”라고 반성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영화는 ‘경찰:범죄자=선:악’이라는 구도를 깨고, 전형적인 가족이나 정의를 강조하는 모습들에도 ‘이게 정말 맞나’라는 회의를 느끼게 한다.

▲영화 '브로커'에서 형사들이 브로커들을 쫓는 모습. 
▲영화 '브로커'에서 형사들이 브로커들을 쫓는 모습. 

가장 돋보인 장면은 월미도 관람차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월미도는 상현이 기존의 가족들과 즐거운 추억을 보낸 곳이다. 새로운 가족들은 월미도에서 즐겁게 지내며 새로운 가족의 가능성을 엿본다.

동수 역시 소영이 아기를 버린 것처럼, 부모 품에서 자라지 못한 보육원 출신이다. 동수는 소영에게서 자신을 버린 엄마를 떠올리며 “아기를 안으면 정이 들어 떠나지 못해서 아기를 안지 않는 거지?”, “아기가 떠나면 너무 슬프니까 말 걸지 않는 거지?”라는 식으로 아기에 대한 소영의 애정을 확인하려 한다. 자신의 엄마 역시 자신을 사랑했지만 찾으러 오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월미도 관람차 속에서 소영의 눈을 가리며 자신의 엄마를 떠올리고 결국 아기에 대한 엄마의 애정을 확인하면서 마음의 편안함을 얻게 됐다고 말한다. 

▲영화 '브로커'의 월미도 관람차 장면. 
▲영화 '브로커'의 월미도 관람차 장면. 

아이를 낳고, 버리는 걸 소재로 했기 때문에 논쟁이 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영이 형사에게 “아이를 태어나기 전에 죽이는 것이 낳은 이후 버리는 것보다 죄가 가볍냐”고 소리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헌법재판소가 2019년에야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는 등 지금도 낙태(임신중지)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논쟁적이라는 점에서 영화가 낙태를 보수적으로 바라본다는 비판이 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배우 이지은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그 대사를 읽고 고레에다 감독님께 면담을 신청했다. 이것이 소영 개인의 가치관인지 감독님이 소영의 입을 빌려 하고 싶은 말이지 여쭤봤다. 감독님은 ‘그것은 소영의 생각’이라고 답을 주셨다. (...)그 대사가 영화의 주제라고 한다면 제가 마음이 힘들 것 같아서 확실하게 여쭤봤다”고 말한 바 있다. 

[관련 기사: 경향신문: ‘브로커’로 칸영화제 찾은 이지은 “내게 ‘넌 행운아’ 말해주고파”]

▲영화 '브로커'의 한 장면. 
▲영화 '브로커'의 한 장면. 

영화는 특히 ‘비’와 ‘우산’과 같은 비유 장면으로 주인공의 상황을 알려주며 재미를 더한다. 첫 장면, 비가 쏟아지는 날 아기를 버리는 소영은 ‘비가 나를 씻겨주고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되는’ 꿈을 꾼다. 아기를 낳은 자신과 더 나아가 아기 친부를 살해한 자신을 잊고 새로운 가족을 꿈꿔보기도 한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가지고 나가라는 동수에게 “네가 씌워주면 되잖아”라고 잠깐의 기댐을 보이기도 한다. 동수와 같은 보육원 출신인 해진(임승수)이 합류한 뒤에는 더욱더 즐거운 가족 분위기가 형성된다. 세차하는 도중 장난으로 창문을 연 해진 때문에 그들은 다 같이 물을 뒤집어쓰고 과거는 잊고 새 가족이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에서 물은 주인공을 힘들게 하면서도 새 희망을 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영화 전반에서 나타나는 비와 우산의 비유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옆에서 우산을 들어줄 사람이 여러 명 필요하다는 걸 알게 한다.

이와 더불어 영화 말미 반복해서 나오는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단순한 위로 역시 영화가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다. 매우 기발하거나 참신한 메시지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비를 맞고 있는 사람 앞에서 정의만을 앞세운 섣부른 재단이나 비판보다는, 따듯하게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감독의 시선은 충분히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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