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적 시사주간지 <아에라>(AERA)의 5월 3일자 표지 주인공은 ‘용사마’(배용준)입니다. 언제나처럼 이를 드러내고 양 쪽 입 꼬리를 살짝 들어 올린 하나밖에 없는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이어 17일자에는 <배용준이 남긴 것>이라는 타이틀의 후속 기사가 실렸습니다. 앙케트 기사인데, “남은 용사마의 사진이 있으면 제발 게재해 주세요!”라는 독자들의 요청에 긴급 대응한 기사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마’를 우리말로 표현하면 ‘님’ 정도라고 할까요? 편지 쓸 때, 혹은 은행 같은 데서 ‘아무개님!’하고 부를 때도 쓰입니다. 보도에서 ‘사마’를 쓰는 경우는 황실일가를 칭할 때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보기 힘든데, 지금까지 몇몇 거물급 스타에게 이 칭호가 주어졌습니다. 물론 이 때엔 경의의 표시라기보다는 일종의 애칭으로 쓰이는 것이긴 합니다만, 용사마에 앞서 ‘사마’로 칭해진 인물이 바로 월드컵 당시 일본을 방문했던 영국의 축구스타 ‘베컴사마’입니다. 신용어사전을 펴내는 <자유국민사>라는 출판사가 매년 유행어대상을 수상하는데, 2002년에는 이 ‘베컴사마’라는 말이 유행어 톱텐에 들기도 했습니다.

   ‘용사마’와 ‘용군’의 차이

<후유노소나타> (겨울 소나타, 줄여서 후유소나) 열풍에 대하여 처음에 NHK이외의 방송사들은, ‘NHK드라마인데, 우리가 왜?’라는 입장이었지만, 사회현상이라 불릴 정도로 그 열기가 뜨거워지자, 너도나도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기자회견장엔 무려 700여명의 보도진이 몰렸고, 개별 인터뷰는 용사마가 도착하기 이틀 전 접수를 해야 했습니다. 각 프로그램이 할당받은 시간은 겨우 10분. NHK와 두 개 프로그램 정도만 30분 정도 단독 인터뷰를 할 수 있었는데, 후지 TV <도크다네>의 경우 메인 MC인 오구라씨가 직접 용사마를 만났고, 진행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이어폰을 통한 동시통역으로 촬영이 이루어졌습니다. 용사마가 잠시 짬을 내 들른 오모테산도의 한 카페가 화제가 되었고, 여성지들은 그가 마신 카푸치노와 망고 레어치즈케이크의 메뉴를 사진까지 찍어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용사마가 일본을 찾은 것은 영화 <스캔들>을 홍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아는 사람들은, “일본 팬들은 스캔들에 나오는 용사마의 모습은 별로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더군요. 일본사람들이 용사마의 부드러운 용모와 마지메(성실+착실+바름)한 태도에 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감정을 배가시킨 건 드라마에 깔린 ‘순애(純愛)’였습니다.

“결혼하면 어떤 집에 살고 싶어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가장 멋진 집이잖아요.”

현실 세계에 대입시켜보면 지극히 ‘닭살스러운’ 이런 대사가 한국 배우들의 입을 탈 때 호소력을 갖는 건 왜 일까요?

“만일 기무라 타쿠야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가장 좋은 집이라는 대사를 읊은들, 쳇! 외제 스포츠카에 호화로운 집에 살고 있는 놈이 뭔 소리야! 하면서 분위기 확 깨지죠. 여배우의 경우도, 사생활 복잡한 것 뻔히 아는데 순애 드라마에서 눈물 흘리고 있으면 현실이 오버랩 돼서 절대 몰입할 수 없을 거예요.”

후유소나 팬인 테레비 아사히의 40대 남성 PD의 말입니다. 이 PD, 이번 주에도 ‘순애’를 봐야 한다며 먹고 있던 샤브샤브를 얼른 해치우고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용사마’, 용두사미로 끝날지도

위성방송 이후 다시 지상파를 타고 있는 <후유소나>는 4월 평균시청률 10%(관동지구 비디오서치 조사), 5월 첫 주는 13%를 넘어섰습니다. 같은 시간에 3월까지 방송되던 미국 드라마 <더 화이트하우스2>가 3%대였고, 토요일 11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경이적인 수치라고 합니다. 팬들의 열기는 여전히 뜨겁고 한국어 강좌는 성황을 이루고 있지만, 이지와루(심술 혹은 괴롭히기?) 좋아하는 일본 매스컴이 언제까지나 용사마를 ‘미소의 귀공자’로만 놓아둘 리 없습니다.

지난 주 몇몇 주간지 기사 중 슈칸신초(週刊新潮)의 <일본시장을 노리는 용사마에 연예 프로덕션은 왜 냉담한가>가 눈에 띕니다. 소속사와의 결별 소식과 관련, 용사마의 시장가치를 따진 것이었는데, 일본 연예관계자들의 말을 빌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곱상한 얼굴에 미소 전략만 가지고는 경쟁력이 없다. 세간에 이야기되는 것처럼 CM하나에 1억엔이 아니라 1억원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5월 조사에서 겨우 인기15위였다. 나이도 이미 서른하나이고 팬들은 다 아줌마라서 돈이 안 된다.” 결론적으로 “용사마가 아니라 용씨, 아니 용군으로 족하다”라고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언제 ‘용사마’라고 불러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는데 말이지요. 용사마 열풍이 한류로 이어질 지, 아니면 그저 용사마 열풍으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한 번 ‘사마’ 영원한 ‘사마’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것이 배용준씨와 아무런 개인적 친분 없는 저의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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