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의 대통령 탄핵 소추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기각 결정을 내린 지난 14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로 들어 서는 김기춘 국회 소추위원을 많은 취재진들이 둘러 싸고 취재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창길 기자photoeye@mediatoday.co.kr
“탄핵심판 청구는 탄핵결정에 필요한 정족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4일 오전 국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 결의안에 대해 기각결정을 내렸다. 노 대통령이 국회로부터 탄핵 당한 지난 3월12일 이후 63일 동안 이어졌던 사상 초유의 대통령 직무정지 사태가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헌재는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 파면은 ‘중대한 직무상 위배’로 해석해야 한다”며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등을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을 파면할 만한 중대사유로 보긴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통령 탄핵안 기각 결정이 내려진 것과 관련, 탄핵을 주도했던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의 책임을 촉구하는 목소리와 대통령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 등이 사회각계에서 이어졌다. 탄핵정국의 책임 대상에는 언론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부언론, 탄핵논란 확대재생산= 언론 책임론이 거론되는 배경에는 언론이 앞장서 정치권의 탄핵논란을 확대 재생산시키거나 스스로 탄핵을 부추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은 지난해 연말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탄핵 뒤 조순형 차기 대통령론>이라는 글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문제 언행은 탄핵 사유로 충분하다”며 “국회의 야3당이 협력하면 내일에도 탄핵이 가능하다”고 야3당의 공조를 권유한 바 있다.

탄핵을 부추겼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조 편집장의 주장은 현실로 나타났고 3월12일 국회는 야3당의 공조 속에 탄핵을 가결시켰다. 노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거론됐던 정치권의 탄핵 주장을 따옴표 처리를 통해 여과 없이 보도했던 당사자도 일부 언론이었다.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한 이후 국민들이 ‘민주수호’를 다짐하며 촛불시위를 벌이는 등 행동에 나서자 일부 언론은 국민들의 비판열기를 잠재우고 촛불시위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키는 데 매진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국회의 탄핵가결 다음날 <나라를 생각해야 한다>는 사설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를 절제하고 법이 제시한 길을 따라가는 것이 지금 이 순간 이 나라를 지키고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법 지켜야 평화시위다>라는 3월17일자 사설에서 “지난 며칠 간 촛불집회로 저녁시간 광화문 일대의 교통이 막히는 등 시민 불편이 이어지고 있다”며 “불법 집회로 인해 다른 시민들의 권리가 침해받는 일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단체, “언론도 탄핵정국 책임 느껴야”= 일부 언론이 탄핵문제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거나 양비론으로 일관한 것과 달리 국민들은 뜨거운 민주수호 열기 속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언론이 사회문제를 비판하고 국민들의 올바른 판단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언론의 무책임함을 비판하고 비판의 주체로 등장한 것이다. 언론단체들은 탄핵 전후 과정에서 보여온 언론의 모습과 관련, 탄핵정국의 책임에 언론도 예외일 수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인터넷기자협회는 헌재가 탄핵을 기각한 지난 14일 성명을 내어 “탄핵을 주도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 등 정치권과 탄핵을 사주했던 일부 거대 수구언론은 지난 두 달 동안 국민과 국가에 심대한 혼란을 초래한 사실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하고, 새롭게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헌재가 탄핵 기각을 결정한 이후에도 일부 언론은 사설 등을 통해 탄핵정국의 책임 등을 ‘물타기’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탄핵정국의 1차적 책임자로 지적 받고 있는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의 정치적 행위에 대한 비판보다는 대통령의 위법행위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15일 성명을 통해 “탄핵을 배후 조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조선일보, 탄핵과정에서 한·민·자 공조의 부당성을 올바로 지적하지 못한 일부언론에게도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민언련은 “헌재의 기각결정이 내려졌음에도 자신의 잘못된 보도행태를 참회하고 사과
하기는커녕 한·민·자 공조의 책임은 뒤로 하고 대통령 책임론 운운하며 곡학아세하는 일부언론의 행태에 역겨움을 느낀다”고 비판했다.

▷탄핵기각, 언론개혁 움직임 탄력 받나=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 이후 언론단체들은 “이제는 언론개혁을 힘있게 추진 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실상 노 대통령의 제2기 임기가 시작되는 상황이고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등 개혁·진보 세력들의 원내 과반수 확보 등 정치환경이 언론개혁의 적기라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과정에서 보여줬던 일부 언론의 보도태도 등이 언론개혁 움직임에 불을 붙였다는 분석도 있다. 사회개혁과 정치개혁도 언론개혁 없이는 이뤄지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언론인권센터는 탄핵기각 직후 성명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과 지난 4·15총선을 통해 집권여당이 된 열린우리당은 이번 탄핵 기각 결정을 계기로 총선공약이기도 한 민주언론 실현을 위한 언론개혁과 국민의 알권리 확보를 위한 제도 개혁을 조속히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도 14일 성명을 통해 “언론개혁 없이는 정치개혁과 사회개혁 대한민국의 정상성 회복은 불가능하다”며 “늦어도 오는9월 정기국회 이전에 (가칭) 신문법 제정안, 언론피해구제법 제정안, 방송법 개정안 등 언론개혁 법안을 성안해 국회의원들의 서명을 받아 의원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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