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의 가석방심의위원회 심사를 하루 앞두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석방을 희망하는 언론 보도가 집중됐다. ‘석방될 가능성이 높다’고 기정사실화한 보도부터 ‘석방을 너머 사면이 필요하다’는 재벌 특혜 주장까지 버젓이 기사로 나왔다. 이 부회장 가석방을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에 빗댄 기자도 있었다.

머니투데이 오아무개 선임기자는 “이재용에게 기회를 주자”란 칼럼에서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을 ‘회복적 사법’에 빗대며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 필요성을 주장했다. 백의종군은 중한 죄를 지은 무관에게 관직을 주지 않은 채 전쟁에 참전케 하는 처벌이다. 그 결과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며 이 부회장도 마찬가지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8일 머니투데이 기사.
▲8일 머니투데이 기사.

 

기자는 “이순신에게 전장은 조선의 바다였고, 그의 무기는 병사들과 함께 이끈 거북선과 판옥선이었다”며 “이재용의 전장은 전세계 경제 현장이고 그가 이끄는 배는 삼성이라는 거함이다. 명량해전보다 더 큰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사면이나 가석방은 그런 성과를 내라는 국민의 압력”이라며 “1년간 구치소에 두는 인신구속보다 더한 징벌일 수도 있다”고 적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오는 9일 열릴 법무부 가석방심의위원회 심사 대상에 올랐다. 8·15 광복절 기념일 가석방 규모와 대상자를 심의하는 자리다. 심사위원장은 강성국 법무부 차관이고, 구자현 검찰국장·유병철 교정본부장·윤웅장 범죄예방정책국장이 내부위원으로 참석한다. 외부위원으로는 윤강열 서울고법 부장판사·김용진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홍승희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백용매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조윤오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 등이 있다.

▲8일 관련 기사 내용 및 제목 갈무리 모음.
▲8일 관련 기사 내용 및 제목 갈무리 모음.

 

언론은 2~3일전부터 가석방을 희망하는 취재원을 적극 인용해 보도해왔다. 특별한 사건이 없는데도 보도량이 많아진 요인이다. 가장 빈번히 인용된 취재원은 익명 재계 관계자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해외에서 할 일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거나 "이 부회장 사면을 요구하는 이유는 삼성전자가 글로벌 시장에서 워낙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어 ‘총수의 결단’ 없이는 표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재계 관계자 인터뷰를 인용했다.

재계의 석방 요구와 희망이 다양한 매체에서 반복 보도되면서 여론 형성 효과도 냈다. 경제지를 중심으로 ”재계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가석방 여부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거나 ”재계는 이 부회장의 가석방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고,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에 대한 재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는 식의 문장이 기사 첫 문장으로 동일하게 보도됐다.

아시아투데이는 취업 시장의 낮은 신규 채용률까지 활용했다. ‘삼성 이재용 역할론’ 기획 보도의 “이재용 일할 기회 생겨야 일자리 창출·협력사 성장” 기사다.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침체된 고용시장에서도 꾸준히 나온다”며 “총수가 지휘하는 통 큰 투자가 대규모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지목했다. 무관한 두 요인을 근거 없이 인과관계로 묶은 왜곡이다.

▲8일 아시아투데이 관련 기사 편집해 갈무리.
▲8일 아시아투데이 관련 기사 편집해 갈무리.

 

이 기사는 지난해 신입 직원 상당수가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의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부문에 배치됐다고 알려졌는데 “이 부회장이 삼성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해온 분야”라고 강조했다. 또 “이 부회장이 복귀한다면 그가 평소 강조해온 고용확대 의지를 더 적극적으로 실천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재계 희망사항도 전달했다.

‘무전유죄 유전무죄’인 사법 불공정에 대한 경각심도 없었다. 일부 언론은 가석방을 넘어 아예 이 부회장을 사면해줘야 한다고 동조했다. 글로벌경제신문의 “이재용 부회장에게 족쇄(가석방)보다 돛(특별사면)을 달아주자”란 기자 칼럼이 대표적이다. 기자는 “최근 반도체 패권 경쟁은 날이 갈 수록 심화되고 있어 이 부회장의 '역할론'은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있다”며 “대통령이 재계와 국민의 뜻을 고려해 이 부회장에게 '족쇄'가 될 수도 있는 가석방보다 재기의 '돛'을 올려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익명의 재계 관계자 인용 기사도 대부분 사면론에 쏠렸다. 아예 죄를 탕감해줘 이 부회장에게 경영활동의 자유를 주자는 주장이다. 가석방 상태에서는 취업과 해외 출국 등이 어렵고, 가석방자는 주거지 관할경찰서장의 보호·감독을 받아야 한다는 게 이유다.

이를 전한 보도 대부분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 가능성을 지폈다. “이재용 '운명의 1주일'…경영복귀 관심 집중”, “이재용 삼성 부회장, 경영 복귀 길 열리나”, 이재용 가석방 심사 임박···재계 ‘경영 제약 없도록 사면해야’“, ”재계, 이재용 ‘가석방’ 아닌 ‘사면’ 원하는 이유는“ 등이다.

▲6일 매일경제 29면
▲6일 매일경제 29면

 

이와 관련 삼성그룹 모태인 삼성상회 터가 있었던 대구 성내동 주민들과 관련된 보도는 4일째 연달아 보도됐다. 지난 5일 이 지역 주민자치위원회가 오는 8일 주민 20여명과 함께 이 부회장 특별사면 청원식을 열겠다고 밝힌 후다. 이들이 청원식을 연다는 소식, 청와대에 청원서를 제출하는 계획, 청원식 개최까지, 한 광역시 동 단위 주민자치회 소식이 매일 같이 보도됐다. 청원식이 열린 8일 언론엔 ”대한민국 경제와 국민을 위해 이재용 부회장이 다시 한 번 뛸 기회를 마련해 주세요“라는 주민 발언이 자주 인용됐다.

관련 보도를 감시해온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주식회사에 회사 내부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가 있음에도 총수와 기업을 동일시하는 건 옳지 않다. 실례로 이 부회장이 1차 구속된 2017년 삼성전자 실적은 크게 개선됐었다”고 지적했다. 민언련은 또 “이 부회장은 경영권 부정 승계 의혹으로 1심 재판을 받고 있고,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 첫 재판도 앞뒀다. 여러 측면을 종합해 봤을 때, 이 부회장을 가석방하거나 특별사면할 이유가 없다”며 “우리가 돌이켜봐야 할 것은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여전한 한국 사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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