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진 (탄소중립)위원장님 잠깐 나와 보세요.” “왕년에 기후운동했다면서요. 얘기 좀 합시다.” “거짓 기후위기 대응, 민주주의 기만, 탄중위 해체”

‘탄소중립 시민회의’ 시민단이 온라인으로 출범식에 참가한 7일 오후, 출범식 현장인 서울 페럼타워에선 피켓시위가 한창이었다. 청년 너다섯명이 손글씨를 쓴 피켓을 들고 1시간 동안 섰다. “정부가 사회를 기만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정부 기후위기 대응은 허구, 이날 꾸려진 ‘시민회의’는 민주주의의 기만이라는 요지다.

청년 손솔씨는 “화가 나서” 나왔다. 지난 6일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대통령 직속)가 발표한 ‘탄소 중립 시나리오 초안’ 3개 모두 속 빈 강정이라는 것이다. “화석연료 발전 중단과 기업의 책임 규명, 지금 당장 추진해도 모자란 과제를 눈앞에 두고도 전문가들은 미적댔다”고 주장했다. 3개 중 1개 안에만 화석연료 발전 전면 중단 내용이 담겼다. 이마저 추정 결과만 있을 뿐 언제,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로드맵은 보이지 않았다.

▲7일 서울 페럼타워 '탄소중립 시민회의' 출범식 현장에서 기후정의 활동가 등이 피켓시위를 하는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7일 서울 페럼타워 '탄소중립 시민회의' 출범식 현장에서 기후정의 활동가 등이 피켓시위를 하는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이런 상황에서 탄중위는 바로 다음 날 공론화 기구인 ‘탄소중립 시민회의’(시민회의)를 출범시켰다. 토론·숙의를 거친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정책 결정의 민주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들은 정부가 추후 ‘시민 의견을 들은 결과’라며 정책 결정 책임을 나눌 ‘구실’로 봤다. 구성 절차와 방식도 민주적이라 할 수 없었다. 탄중위 회의·운영 내용부터 비공개였다. 이들이 “탄중위 해체”까지 요구하는 이유다.

“시나리오 초안, 부족해도 너무 부족”

탄중위는 탄소중립과 관련된 모든 정책·계획을 수립하고 이행사항을 점검하는 대통령 직속 기구다. 18개 중앙행정기관장, 업계·시민사회 대표 등 총 97명 위원으로 구성됐다. 시민회의는 탄중위가 의사 결정에 ‘숙의민주주의’를 도입하고자 꾸렸다. 오는 10월 정부가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년 기준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정하는데 ‘국민을 대표해’ 의견을 낼 기구다.

이들 눈에 탄중위는 ‘무책임하게 직진하는 기차’다. 종착지가 완연한 탄소 중립도 아니라고 본다. 지난 6일 시나리오 초안 내용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발표한 3개 안 중 1·2안은 ‘탄소 중립 시나리오’에 포함시키기 어려웠다. 화석연료 발전을 유지하며 친환경차 전환율도 낮은 점 등 2050년에도 여전히 탄소를 배출하는 안이었다.

▲7일 서울 페럼타워 '탄소중립 시민회의' 출범식 현장에서 기후정의 활동가 등이 피켓시위를 하는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7일 서울 페럼타워 '탄소중립 시민회의' 출범식 현장에서 기후정의 활동가 등이 피켓시위를 하는 모습. 사진=손가영 기자.

 

가장 진일보한 3안도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한재각 기후정의활동가는 “2049년까지 탄소를 배출하다가 2050년에 ‘짠’하고 배출량 0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냐”라고 꼬집었다. 탄소 감축은 2050년에 임박해서 줄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IPCC과 국제기구 등이 2030년까지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정하는 이유다. 그런데 탄중위 시나리오엔 중간 목표, 로드맵이 설정돼있지 않다. 2050년 시점 배출 감소 목표치만 집계됐다. “탄소 중립을 위한 기구가 가장 중요한 것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것.

그런데 이 중간 목표치는 아무도 모른다. 환경부, 국회 모두 답을 회피해왔다. 정부가 지난해 유엔기후변화협약사무국(UNFCCC)에 낸 ‘2017년 대비 온실가스 24.4% 감축’ 계획이 발표된전부다. 이 계획은 감축량이 불충분해 “기후 악당”이란 국제적 비난을 샀다. IPCC는 최소 2010년 대비 최소 45%를 감축하라고 권고했고, 한국 기후정의운동 진영은 최소 50% 감축을 요구한다. 한 활동가는 “정부는 국회 탓, 국회는 정부 탓을 하고 탄중위까지 정부·국회에 판단을 미루는 핑퐁게임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현실 유지’다. ‘기후재난을 막기 위한 과제’를 고민하지 않고 ‘현재 체제에서 가능한 대안인지’를 우선한다는 비판이다. 한 활동가는 지난 6일 시나리오 초안 발표 때 윤순진 탄중위원장의 답을 예로 들었다. 1·2안에 민간 화석연료 발전소가 존속된 이유로 “합법적 절차를 밟아서 한 것이기에 다양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보상, 사업자 의향 등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손솔씨는 “이런 의견을 내려고 탄중위가 꾸려진걸까”라며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기업 책임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도 말했다.

실제 한국은 기업의 탄소배출 책임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최근 미국에선 크리스 밴홀런 메릴랜드주 상원의원의 법안 초안이 화제가 됐다. 기후위기 대응 비용을 위해 지구온난화 오염원을 가장 많이 배출한 소수에 세금을 걷자는 취지로, 재무부와 환경보호국이 2000~2019년 중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회사를 파악해 배출량에 따라 벌금을 매기는 내용이다. 10년간 500조원 창출이 예상되며, 이는 재생에너지 연구·개발이나 재난을 겪은 지역사회 복구에 쓸 계획이다.

‘SF적인’ 기술낙관주의도 지적됐다. 탄중위 3개안 모두 2050년 ‘탄소 포집 활용·저장(CCUS)’ 기술이 산업·에너지 등에서 배출된 탄소를 과반 넘게 상쇄한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한 활동가는 “탄소 포집 실효성, 에너지 효율성, 비용 등의 부정적 문제는 이미 여러 연구로 나타나 상용화된 기술도 아니다. 포집된 탄소를 어디에, 어떻게 오래 안정적으로 저장할 지도 문제”라며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산업계 이해관계가 있으니,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잡아 내면서 이를 유지하려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7일 오후 서울 페럼타워에서 열린 탄소중립시민회의 출범식 현장.
▲7일 오후 서울 페럼타워에서 열린 탄소중립시민회의 출범식 현장.

 

“‘전문가 밀실 논의’ 가만 둘 거냐”

“무작위로 뽑힌 시민 500명은 누구를 대변하는가?” 시민회의는 비민주성이 논란이다. 참여 시민단은 인구학적 조건에 따라 만 15세 이상 시민 500명이 무작위로 선출됐다. 이들은 8월엔 탄소 중립 이슈를 공부하고, 9월 11~12일 시민 대토론회를 가진 뒤 온라인 설문조사에 참여한다. 탄중위는 이를 반영해 각계 의견을 종합한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한다.

기후정의포럼, 멸종저항서울,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등 3개 단체는 6일 “시민회의는 구성과 운영 계획을 사전에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 없이, 일방으로 추진됐다”며 “시민참여 과정을 이렇게 졸속으로 진행할 수는 없다. 이것은 시민참여도 민주주의도 아니”라고 비판했다. 특히 “기후재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노동자, 농민, 빈민, 주민들은 탄소중립시민회의에 참여할 수 없다”며 “민주주의의 주체인 시민은 통계학적인 무작위 추출을 통해서 뽑힌, 인구학적으로 해체되고 원자화된 개인이 아니”라고도 밝혔다.

김선철 멸종저항서울 활동가는 같은 이유로 피켓에 “민주주의 기만·파괴” “탄중위 해체·전면 재구성” 등의 문구를 썼다. 그는 “탄중위가 낸 3개 안 중 1개만 탄소중립 시나리오인데, 모든 안에 구체적 로드맵이 없다.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 같은) 기후위기에 가장 시급한 결정은 빼고, 정부가 만든 보수적이고 추상적인 시나리오에 한해 토론하고 제한된 의견을 내게 된다”며 “또 전문가들이 교육을 시킬 텐데, 산업계·경제계를 대변하는 목소리가 많을 것이다. 이런 과정이 민주적인가”라고 비판했다.

멸종저항서울 등은 탄중위 운영 방식 또한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해왔다. 이들은 “안건과 논의 결과가 공개되지 않는데, 2050 탄소중립시나리오와 2030 온실가스감축목표 같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책이 왜 밀실에서 논의되느냐”라며 “문재인 정부의 기후위기 대책 마련은 탄중위를 형식적으로 꾸려놓고, 사실상 사회적 논의를 가로막고 있어 지극히 비민주적”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시민회의 결론과 탄중위 권고안을 검토한 뒤 오는 10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할 예정이다. 기후정의 활동가들은 “기후위기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노동자, 농민, 빈민, 주민들이 논의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도록 탄중위를 재구성하고 운영을 민주화하고, 논의 안건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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