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 제도 적용과 함께 24시간 교대제로 운영되는 방송국 주조정실을 둘러싸고 혼란이 늘고 있다. 대표 교대제 직종인 MD(Master Director·방송운행책임자)의 노동시간을 근본적으로 단축하지 않고 다른 직종의 직원을 대체 인력으로 투입해 ‘노동시간 단축 취지에 맞느냐’는 불만이 나온다. 

서울을 제외한 전국 9개 민영방송사의 MD 업무는 ‘4인 2교대’ 형태가 지배적이다. ‘주야비휴’로 불리는 4조 2교대 근무제를 4명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보통 첫 날은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고(주간), 다음 날엔 저녁 6시 출근해 그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일한 뒤 퇴근하고(야간 및 비번), 셋째 날엔 쉬는 구조(휴무)가 4일 터울로 돌아간다. 

4인 2교대의 맹점은 휴가다. 인원이 4명 밖에 없으니 외부 인력이 투입되지 않는 한 휴가를 반납할 수밖에 없다. ‘내가 휴가를 내고 쉬면 다른 MD가 대신 근무를 서고, 그의 휴가엔 내가 대신 근무를 하는 방식’이다. 결국 총 휴가 일수는 줄지만 대신 추가 근무 수당을 받는다. 

이 경우 MD는 한 주 노동시간이 52시간을 넘을 수 있다. 다른 MD가 휴가를 2일 이상 내 대체 근무를 서줘야 할 때다. 지난 1일부터 직원이 5인 이상인 모든 사업장에 ‘주 52시간’ 정책이 적용됐다. 결국 인력 확충이 필요한 상황이다. 

▲ MD가 일하는 주조정실 자료사진.
▲ MD가 일하는 주조정실 자료사진.

현장에선 당장 각 사의 대응을 두고 ‘땜질처방’이라는 지적부터 ‘노노갈등을 유발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청주방송을 제외한 방송사 대부분이 인력 충원 없이 기존 교대제를 유지하거나 일방적으로 대체 근무자를 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을 받은 청주방송은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휴게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MD를 1명 더 충원해 5인 2교대로 운영 중이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광주방송, 대전방송, 제주방송 등이 MD가 아닌 다른 부서 직원을 대체 근무자로 투입하고 있었다. 모두 편성·외주담당 PD 1~2명이 대상이었다. 한 지역 방송사 관계자 A씨는 “편성 업무를 보는 PD가 갑자기 MD를 맡게 됐는데, 인력이 부족하다며 기자가 경영지원팀 일을 봐주는 상황과 같다”며 “1~2명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니 회사 내에서 크게 이슈가 되진 않지만 당사자들은 일방적이라고 반발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대체근무자는 기존 업무에 MD 일이 더해져 업무량이 늘어나고 연차휴가를 원할 때 쓰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대체인력이 적으니 쉬고 싶어도 대체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또 다른 지역 방송사의 B씨는 “업무가 ‘1+1’이라 보면 된다. MD를 대체하면서 내 일도 마감일에 맞춰서 문제없이 해야 한다”며 “통상근무자는 토, 일 쉬는 게 권리인데 이 권리도 깨지고, MD가 장기휴가를 낼 경우 대체 근무도 길게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구조가 지속될 시 직원 간 갈등이 쌓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방송송출 일선의 MD는 방송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아 인사상 불이익도 염려한다. B씨는 “자기 휴가를 내는데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란 말이 주조정실에서 들린다고 한다. 이러면 두 부서의 직원들이 휴가를 쓸 때마다 편할 리가 없는데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라며 “대체근무자 입장에선 업무 혼선과 더불어 직종 정체성에도 혼란이 올 수 있다”고 전했다. 

강원, 전주, 울산 등의 민영방송사는 4인 2교대를 유지하고 있다. 8인이 MD와 TD를 돌아가며 맡는 부산방송도 실질적으로 4인 2교대 체제라고 알려졌다. 한 지역 방송사 관계자 C씨는 “특정 지역 민영방송사는 특정 요일을 지정해 이때에만 MD가 휴가를 쓸 수 있게 한다. 그럼 대체근무자는 자동 그 요일마다 대체 근무를 나가야 한다”며 “휴가를 자유롭게 쓸 권리를 빼앗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C씨는 “4인을 유지하면 필히 어느 한 주엔 ‘주 52시간’ 위반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셈”이라고도 말했다. 

MD의 휴게시간 미준수 문제도 남아 있다. 방송 운행을 관리하는 업무 특성상 휴게 시간이 사실상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연속 15시간 가량 주조정실을 지키는 야간 근무를 두고 방송사와 MD의 입장이 갈린다. 방송사는 휴게 3시간이 포함돼 야간 근무 시간을 11~12시간으로 셈한다. 반면 MD는 재난 발생 등 돌발 변수에 대비해야 하기에 휴게시간은 없고 대기시간만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기존 4인 인력으로 ‘1주 52시간’을 초과하기 더 쉬워진다. 

C씨는 “대체 근무자들로부터 ‘강제 업무 지시’란 불만이 나오지만 위법 여부는 마땅치 않아 노동조합이 나설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동관계법상 직원은 ‘근로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업무’는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예상되는 인사상 불이익으로 지시를 거부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C씨는 “주 52시간제의 실질적 취지를 살리기 위해 인력을 더 뽑아야 한다는 단체 협약을 체결하거나, 당사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소수 직원에게만 일방적으로 업무가 전가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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