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스태프 노동자성 분석을 중점 과제로 뒀던 고용노동부 ‘방송스태프 자율점검 지원사업 최종 보고서’를 두고 현장 스태프들 사이에서 비판이 나온다. 2년 전 고용노동부의 드라마 스태프 노동자성 인정 후 조사가 이뤄지면서 현장의 기대감을 모았으나, 보고서가 피상적인 실태 정리에 그치고 노동자성 판단도 유보했다는 지적이다.
 
양이원영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2020년 업종별 자율점검 지원사업 방송스태프 최종보고서’를 보면 사업을 위탁받은 공인노무사회는 지난해 4월부터 온라인으로 스태프 512명을 설문조사하고, 17명 스태프와 FGI(초점집단면접)를 진행해 12월 분석 결과를 고용노동부에 보고했다. 자율점검 지원사업은 특정 업종의 근로기준법 준수를 점검하고 개선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고용노동부가 입찰을 통해 위탁 기관을 선정한다. 지난해엔 방송스태프, 방송 막내작가, ICT(정보통신업) 등 3개 업종의 점검이 추진됐다. 소요 예산은 3억원 가량이다. 

핵심 과제 중 하나가 방송스태프와 막내작가의 노동자성 분석이다. 발주 당시 방송스태프·작가 등의 직군 단체는 사용자 단체·정부와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협의체를 꾸려 논의 중이었다. ‘노동자성 인정’도 쟁점이었으나 협의체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특히 막내작가 경우 ‘이 사업 분석 결과를 기다려보자’며 논의가 미뤄졌다. 이들의 노동자성 주장은 2019년 4개 드라마 제작 현장을 근로감독한 고용노동부가 감독급 스태프를 제외한 스태프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면서 계속 거세졌다. 이 과정에서 방송스태프·막내작가 업종 점검 사업이 발주되면서 현장의 기대를 모은 것. 

▲자료사진. ⓒpixabay.
▲자료사진. ⓒpixabay.
▲2020년 업종별 자율점검 지원사업 방송스태프 최종보고서 중.
▲2020년 업종별 자율점검 지원사업 방송스태프 최종보고서 중 설문조사 참여 스태프 분류.

 

그러나 조사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비판이 우선 나왔다. 방송스태프는 연출, 제작, 촬영, 조명, 동시녹음, 장비, 미술 분야, 데이터매니저, CG, DI(색보정)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한다. 설문조사 응답자는 대부분 연출(PD)·조연출(AD)·작가 등 3개 직종에 쏠렸다. 설문조사 참여 512명 중 493명으로 96%를 차지한다. 반면 미술 분야 응답자는 0명이고 편집·자막, 후반작업(CG·DI 등), 조명 등 다른 분야 응답자도 1~2명에 그쳤다. 

심층 면접자 17명도 설문조사 규모에 비해 인원이 부족했고 직종도 적었다는 평가다. 17명은 연출(4명), 조연출(3명), 예능 작가(3명), 교양 작가(4명), 촬영감독·종합편집감독·헤어메이크업 분야 각 1명으로 이뤄졌다. 자문단으로 참여한 희망연대노조 측은 “(심층 면접자가) 극소수에 불과해 설문조사 응답수 512명을 대표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PD·AD 직종은 노동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은 높지만 근로계약서 작성 비율은 낮은 실태가 드러났다. 보고서는 설문 조사 결과 “PD 근로자성 인정 지표(보고서 자체 개발 지표)가 전반적으로 70% 이상인데 근로계약서 작성 비율은 제작사 소속의 책임급 PD가 37%, 중간급 PD가 27%였다”고 결론 냈다. 방송사 소속 비정규직 PD의 경우도 “업무 관리 감독, 업무 장소 결정, 작업 도구 제공, 업무 지시 등을 방송사가 한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으나 근로계약서 작성 응답율은 책임급 PD 16%, 중간급 PD 37%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다만 노동자성 분석이 통계 정리에 그쳐 형식적 평가에 머물렀다는 비판도 나왔다. 작가의 경우 “업무 내용을 제작사나 방송사 PD가 정해 구체적으로 지시하면 사용자가 업무 내용을 정한다고 볼 수 있으나, 대등한 관계에서 협력하고 업무 내용을 협의해서 정하면 사용자가 업무 내용을 정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부분이다. 원론적인 비교는 PD·작가 노동자성 분석 대목에서 두드러졌다. 작가들 사이에선 “일반 회사 직원도 구체적인 업무 내용은 독립적으로 정한다”며 “능력을 상관에게 입증하려고 의견을 내는 게 어떻게 노동자가 아닌 이유가 되느냐”라는 반발이 나왔다. 

▲제작사 소속 PD 및 방송사 소속 비정규직 PD 114명의 응답 기록. 노란색 음영 처리 부분이 방송사 PD 기록이며, 왼쪽부터 제작사 책임급 PD, 방송사 책임급 PD, 제작사 중간급 PD, 방송사 중간급 PD 응답율이다.
▲제작사 소속 PD 및 방송사 소속 비정규직 PD 114명의 응답 기록. 노란색 음영 처리 부분이 방송사 PD 기록이며, 왼쪽부터 제작사 책임급 PD, 방송사 책임급 PD, 제작사 중간급 PD, 방송사 중간급 PD 응답율이다.
▲작가 280명의 근로환경 평가 응답 기록. 노란색 음영 부분은 방송사 소속 비정규직 작가의 응답율. 왼쪽부터 제작사 책임 작가, 방송사 책임 작가, 제작사 중간급 작가, 방송사 중간급 작가, 제작사 보조 작가, 방송사 보조 작가 응답율이다.
▲작가 280명의 근로환경 평가 응답 기록. 노란색 음영 부분은 방송사 소속 비정규직 작가의 응답율. 왼쪽부터 제작사 책임 작가, 방송사 책임 작가, 제작사 중간급 작가, 방송사 중간급 작가, 제작사 보조 작가, 방송사 보조 작가 응답율이다.

 

AD는 노동자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된 반면, 작가는 유보적으로 평가된 부분도 반발을 샀다. AD는 “업무 본질이 PD의 제작 지원이라 종속된 관계에서 업무를 수행한다”며 “(결과물 생산에) 부수적 업무를 맡는 경우가 많아 근로자로 판단할 사실관계가 대다수 징표에서 확인된다”고 분석됐다. 

반면 작가 직군은 대부분 구체적인 계약 내용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는 결론만 담겼다. 희망연대노조 및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등에선 당장 “작가들이 도급계약을 맺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왜 도급계약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고정 기본급을 받지 않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지급 방식은 누가 정하는지’를 살피는 태도가 우선”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업무 조건을 PD와 대등히 협의한다는 대목에선 “방영 날짜·시간을 작가가 정한다면 모를까, 단지 근무일과 휴일을 PD와 상의해 정한다는 게 노동자가 아니라는 근거가 될 수 없다”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이밖에 조사팀은 PD·AD·작가 등이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처한 실태를 확인했다. PD 경우 절반 넘는 응답자가 매주 주 52시간 초과 노동을 하며 가장 바쁠 땐 주 68시간 이상을 일한다고 답했다. PD·작가 직군 응답자의 50~79%가 서면 계약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50~60% 응답자가 업무상 재해를 자기 비용으로 처리한다고 답했다. 세 직군 응답자 대다수가 낮은 보수, 장시간 노동, 고용 불안, 부당해고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작가 280명 중 72%(204명)가 ‘고용 불안이 매우 심각하다’고 답했고 81%(227명)는 4대 보험 미적용이 심각한 문제라고 답했다. 

김기영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장은 “2년 전 고용노동부가 스태프들에 대한 노동자성을 인정한 후였기 때문에 진일보한 결과를 기대했다. 연구자료는 현장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기대감도 높았다”며 “조사 과정에서 근로 실질을 적극적으로 반영해달라는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지부장은 “작가의 노동자성 분석이 가장 형식적으로 이뤄져 노조에서 비판이 많이 나왔다”며 “방송사가 노트북(장비)을 주지 않거나 업무가 지나치게 많은 작가들이 제3자를 고용해 일을 맡기는 관행 등은 기형적으로 운용되는 방송계의 문제점을 입증하는 지표들인데 마치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기준처럼 조사됐기에 고용노동부에 강한 유감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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