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 22일 유튜브 이봉규TV에 출연해 지난해 총선이 ‘부정선거’라는 사회자 발언에 “결정적인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증거는 선관위나 정부가 가지고 있다”며 “조사를 들어가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야당에서도 극단적인 일부의 주장을 ‘새정치’를 말하던 안 대표가 받은 것이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와 단일화 여론조사를 염두에 두고 다급해진 안 대표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행보였다. 

10년전인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는 ‘안철수 현상’의 주인공이 됐다. 당시 지지율은 50%가 넘었다. 박원순 변호사에게 후보자리를 양보하고 ‘안철수 대안론’이 힘을 받으며 대권주자가 됐다. 문재인 후보 측과 단일화 협상이 대선 한달 앞인 2012년 11월까지 이어지자 안 후보가 간을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고, 결국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안 대표가 말하는 ‘새정치’는 사실 제3지대의 다른 말로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 거대 양당을 기성 낡은 정치로 표현하며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말하지만 ‘안철수의 새정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다만 안철수의 행보는 역설적으로 제3지대론이 얼마나 허망한지 보여준다. 

그는 2014년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고 당시 제1야당 공동대표로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을 지휘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며 리더십에 타격을 입었고, 결국 이듬해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했다. 국민의당 창당과 20대 총선에서 호남 28석 중 23석을 얻으며 ‘호남 자민련’으로 자리매김한 건 다시 안철수에게 제3지대론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었다.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사진=채널A 유튜브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사진=채널A 유튜브

그러나 박근혜 탄핵 직후 치른 대선에서도 그는 거대양당에 밀려 3위를 기록했고,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거대양당에 밀려 3위를 기록했다. 이번에도 안 대표는 초반에 월등한 우위를 보였다. 지난달 초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 관련 여론조사를 보면 안철수>나경원>오세훈 순이었고, 언론에선 안철수를 1강, 나경원·오세훈을 2중으로 표기했다. 

보수야권은 정권심판론으로 이번 선거를 대비했다. 제대로 된 정책선거의 경험이 없기도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바로 내년 차기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 정권과 대립구도 전략이 필요했다. 다수 언론이 수차례 내년 대선의 전초전이란 식의 보도를 이어가고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제1야당에게 힘이 집중됐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넘어 LH사태로 국민적 공분이 실제 정권에 대한 심판이 필요하다는 여론으로 바뀐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안 후보의 조직력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간 전략은 성공했다. 그는 오 후보의 단일화 승리 당일 “내 할 일의 90%를 했다”며 결국 현재 선거구도에서 제3지대가 아닌 제1야당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재차 강조했다. 위기시 제1야당 리더십을 맡아온 김 위원장과 제1야당과 연대하며 제3지대를 추구해온 안 대표의 명암이 갈린 날이다. 

국민의당으로 가능하다던 안 대표의 국민의힘 합당 발언, 보수 유튜버 방송에 출연해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킨 발언 등을 보면 안 대표도 막판에 제1야당 지지층에게 지나치게 구애한 모양새를 보였다. 국민의힘 지지층에게도 어필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그의 선거전략을 이해는 하지만 안 대표의 막판 행보를 본 유권자들은 ‘그럴거면 제1야당 후보를 지지할 수밖에 없구나’란 판단을 하게 했다. 안 대표가 단일화 협상을 하루빨리 끝내지 못한 점도 패배의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인 안철수의 이번 실패는 역시 제3지대에 존재하지만 국민의힘과 연대해야 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향후 행보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2012년 50%가 넘는 지지를 받던 대권주자였던 안철수는 최근 세 번의 대선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모두 실패했다. 그 과정에서 제3지대 주자도 제1야당에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이동했다. 한 여권정치인의 ‘불쏘시개’라는 평가가 일면의 진실을 담은 이유다. 

진보언론은 안 대표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했다. 24일 한겨레는 “안철수 ‘제3세력 한계’ 절감…야권 재편과정 재기 노릴 듯”에서 “체급을 낮춰 재도전한 서울시장의 꿈마저 신기루처럼 날아갔다”고 평가했고, 경향신문은 “힘 잃은 제3지대…위기의 안철수”에서 “존재감을 잃은 3석짜리 국민의당 대표가 아닌 국민의힘으로 들어가야 활로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라고 분석했다. 

▲ 24일 조선일보 선거면
▲ 24일 조선일보 선거면

보수언론은 안 대표가 제1야당을 위해 계속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지점을 강조했다. 

이날 동아일보는 “국민의힘 운명, 보선에 달려…‘제3지대 흡수하나, 흡수되나’ 기로”에서 “안 후보가 합당의 전제조건으로 ‘대통합’을 걸고, 윤 전 총장도 제3지대에서 활동을 시작한다면 제3지대와 국민의힘 간 주도권 다툼이 커질 수도 있다”고 우려점을 제시한 뒤 이종훈 정치평론가의 “안 후보와 윤 전 총장의 영입을 포함해 ‘외연 확대’ 전략을 잘 구사해야 국민의힘이 대선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란 발언을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안철수, 선대위원장 맡아 오세훈 지원 유세 나선다”를 선거면 톱기사로 뽑으며 안 대표가 어떻게 오 후보를 도울 수 있는지 자세히 보도했다. 다른 기사에선 “야권에선 ‘경선 초반 압도적인 지지율을 등에 업고도, 뒷심에서 밀렸기 때문에 안 대표가 표방하는 ’극중주의‘도 수정이 불가피하자’는 얘기도 나온다”는 평을 전했다. 

인물이 없다는 한계 속에서도 김 위원장 말대로 “흥행에 노력해준” 안 대표 노력 덕분에 현재로선 국민의힘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국민의힘이나 보수언론이 정치인 윤석열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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