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보궐선거를 앞두고 성범죄 이슈가 다시 뜨겁다. 이번 선거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폭력 사건으로 촉발된 것이니 당연한 결과처럼 보인다. 

최근 서울은 부동산정책과 안철수·오세훈 두 후보의 단일화, 부산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나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에 대한 재산문제와 불법사찰 의혹 등이 주요 쟁점이었다. 종종 두 전직 시장의 성폭력 사건으로 재보선 비용으로 세금 800억원이 낭비되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시절 만든 당헌까지 바꿔가며 재보선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후보를 냈다며 여당을 비판하곤 했다. 성범죄 이슈는 주변 이슈에 불과했다. 

‘비극의 탄생’ 발간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은 박 전 시장이 사망하면서 사실관계를 밝히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소권 없음으로 형사사건은 마무리됐고, 현재 경찰에선 고소인에 대한 2차 피해 문제를 기소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 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한 행동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후 관련 이슈는 잠잠했다. 다시 논란이 커진 건 손병관 오마이뉴스 기자가 ‘비극의 탄생’이란 책을 내면서부터다. 

박 전 시장 재직시절 서울시청을 출입하던 손 기자는 “박 시장의 신원(한을 풀어줌)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출판사는 “보신주의로 일관한 진보 언론의 뼈아픈 민낯을 고발한다”며 “박원순 사건을 2020년 최악의 언론 대참사로 명명한다”고 소개했다. 

소위 박 전 시장을 옹호하는 책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을 두 가지로 전개됐다. 왜 선거를 코 앞에 둔 시점에 이 책을 냈느냐, 왜 성범죄 가해자를 옹호하는 책을 냈느냐 등이다. 

▲ 손병관 기자가 쓴 '비극의 탄생'
▲ 손병관 기자가 쓴 '비극의 탄생'

 

이 책이 진실을 밝히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인권위 발표를 신뢰하지 않거나 결국 처음 제기됐던 성추행 의혹은 입증되지 않은 부분이 중요하다고 판단한다. 또한 기자 개인이 인터뷰를 바탕으로 책을 썼을 뿐이고 당사자가 고인이 됐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라는 입장이다. 

피해자 기자회견, 김재련 변호사 비판

지난 17일 박 전 시장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책으로 다시 피해자에 대한 공격이 지속되는데 대한 반박형식이라고 해석됐다. 피해자도 기자회견에서 “그 책이 인권위에서 인정한 사실을 오히려 부정하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민주당이) 피해호소인이라는 명칭으로 피해 사실을 축소·은폐하려 했고 선거캠프에는 제게 상처줬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한쪽에서는 손 기자 책 발간 때문에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봤고, 다른 한쪽에선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지원그룹인 김재련 변호사, 이수정 경기대 교수 등의 이력을 문제 삼았다. 보수야권, 국민의힘과 연관이 있는 인사들이 선거에 영향을 주기 위해 기자회견 일정을 선거를 20여일 앞둔 이 시점에 잡았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피해자를 공격한 게 아니라 피해자와 연대를 빌미로 정치행위를 하는 주변인들을 문제 삼은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피해자 기자회견을 열어 정치공세 한복판으로 밀어넣는 게 진정 피해자를 위한 일이냐는 주장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이러한 주장 역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의 뒤늦은 사과, 3인의 캠프 사퇴

피해자의 기자회견은 이미 전날 공지했다. 기자회견 당일 민주당 지도부 인사들은 부산 보궐선거 주요 이슈인 해운대 엘시티 특혜분양 의혹 관련 일정을 소화했고, 현장에서 피해자 기자회견 관련 기자들 질문에 ‘내용을 모른다’며 답변을 피했다. 

이날 오후 7시40분이 넘어서 신영대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피해자에 대해 사과했다. 다음날인 18일 해당 피해자에게 피해호소인으로 부르자던 고민정 선대위 대변인 등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 있던 3명의 의원이 사과의 뜻을 밝히며 캠프를 떠났다. 이를 두고 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 TV조선 1월1일자 보도 화면 갈무리
▲ TV조선 1월1일자 보도 화면 갈무리

 

한쪽에선 TV조선 보도로 여당에서 피해호소인으로 부르자던 의원이 누구인지 지난 1월 알려졌는데 왜 이제야 사과를 했는지 문제 삼았다. 결국 안철수·오세훈 두 후보의 단일화가 진행되면서 민주당이 다급하니 사과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다른 한쪽에선 왜 피해호소인이라는 말을 이번에 처음 쓴 것도 아니고 언론에서도 미투 운동 이전부터 써오던 단어인데 박 전 시장 사례만 문제 삼는지 비판했다. 이들은 민주당이 선거를 의식해 일관성없는 행동을 해서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박 전 시장 성폭력 관련 보도는 조선일보가 강하게 문제제기하는 사안이다. 조선일보는 피해자 기자회견 다음날인 18일에 이어 19일까지 피해자 기자회견과 여권 일부 인사의 2차 가해, 인권위 직권조사 결과 중 가해사실 내용 등을 상세히 보도했다. 여권 지지층 일각에선 평소 소수자 인권에 큰 관심이 없던 조선일보가 선거를 의식해 박 전 시장을 파렴치한으로 몰고 간다고 판단하고 민주당 쪽에 강경한 대응을 요구하는 모양새다. 

▲ 18일자 조선일보 5면
▲ 18일자 조선일보 5면
▲ 19일자 조선일보 5면
▲ 19일자 조선일보 5면

 

오마이뉴스는 손 기자가 책에서 ‘자신의 발제를 위에서 부당하게 막았다’는 부분 관련해 인사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인사위가 열리고 손 기자 징계 여부에 따라 이번 이슈를 둘러싼 정치공방은 이어질 전망이다. 손 기자가 쓴 ‘비극의 탄생’은 22일 현재 알라딘에서 베스트셀러(종합) 5위, yes24에서 베스트셀러(종합) 13위를 기록하며 흥행 중이다. 

성범죄 방지 대책 사라진 재보선

최근 박 전 시장 성폭력 사건 이슈는 명백하게 정치공세로 소비되고 있다. 가끔 성범죄를 일으키는 구조나 피해자에 대한 지원 논의가 없진 않지만 4월 재보선에서 제대로 다루진 않고 있다. 

민주당은 박영선 후보가 여성임을 강조하며 ‘최초 여성 단체장’ 타이틀을 내세웠다. 여성후보이니 성범죄에선 자유로울 것이라는 전제다. 박 전 시장 성폭력 사건에 대한 솔직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내놓는 정면돌파의 형식으로 보긴 어렵다.

민주당 소속 전직 시장의 성범죄로 재보선이 실시된다는 사실과 선거비용으로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정도의 주장을 반복할 뿐 야당들도 어떠한 방식으로 위력에 의한 성범죄를 막을 것인지에 대한 정책발표는 없다. 국민의힘은 지난 17일 10대 약속을 발표했고 미디어오늘은 국민의당 쪽에 요청해 공약 모음자료(13가지)를 받았다. 권력형 성범죄 방지 대책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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