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기업에 산업재해 책임을 묻고 사회적 참사 피해자까지 보호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연내 제정하라고 산재 유가족들이 11일 국회 앞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제정 약속을 하고 이를 위한 국회 의석수까지 충분한 더불어민주당이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와 정의당, 민주노총은 이날 오전 11시 국회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이 죽어 가는데 국회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며 남은 임시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12월 임시국회 기간은 이달 10일부터 내년 1월10일까지다. 

태안화력발전소 산재사망자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과 CJENM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이 단식에 돌입했다.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총력을 집중했던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도 단식을 시작했다. 

앞서 이태의 전국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과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 위원장은 지난 7일부터 5일째 국회 정문 앞에서 단식 노숙농성 중이다.

▲11일 기자회견 후 국회 입구 앞 농성장에 앉아 단식농성을 시작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왼쪽),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운데),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사진=손가영 기자.
▲11일 기자회견 후 국회 입구 앞 농성장에 앉아 단식농성을 시작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왼쪽),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운데),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사진=손가영 기자.

이용관 이사장은 “일하러 갔다가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계속되는 죽음을 보며 계속 고통 받지 않기 위해, 저희도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한다”며 단식 이유를 밝혔다. 

이 이사장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기업은 책임지려 하지 않기 때문에 유가족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런 참극이 하루에 6~7명씩 수십 년간 지속됐는데 정부와 국회는 방치해왔다”며 “정기국회(지난 9일 종료)에서 수많은 법안이 통과됐으나 저희가 제출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지난 10일은 고 김용균씨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 사망한 지 2주기였다. 김미숙 이사장은 “용균이로 인해 만들어진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계속되는 죽음을 막지 못하고 있다”며 “세상은 변한 게 없다. 매일 같이 용균이처럼 끼어서 죽고, 태규처럼 떨어져 죽고, 불에 타서 수십 명씩 죽고, 질식해서 죽고, 감전돼서 죽고, 과로로 죽고,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화학약품에 중독돼서 죽는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정부와 국회가 안전을 책임져 사람들을 살려달라고 국회에서 7일부터 노숙농성을 했고, 의원들에게 법 좀 만들어달라고 허리 숙여 간절히 얘기도 했다”며 “그런데 아직 논의도 안하고 있다니 너무나 애가 타고 답답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건설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한 고 김태규씨의 유족과 마이스터고 현장 실습 중 사망한 고 김동준 군의 유족도 함께 했다. 김태규씨 누나 김도현씨는 “법이 통과될 때까지 태규를 보러 가지 않겠다. 꼭 통과시켜달라”고 국회에 요구했다. 김동준군의 어머니 강석경씨도 “내 새끼는 못 지켰지만, 더 이상 저희 같은 아픔 속에 고통 속에 절망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고 했다. 

▲11일 기자회견 후 설치된 국회의사당 앞 단식농성장. 사진=손가영 기자.
▲11일 기자회견 후 설치된 국회의사당 앞 단식농성장. 사진=손가영 기자.

정부·여당에 “의석, 국민 지지 충분한데 왜 안 하냐” 

운동본부는 지난 9월22일 국민동의 청원 방식으로 10만인 동의를 받아 국회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을 제출했다. 원청 책임자 등 기업 최고 책임자 처벌 조항을 포함해 다단계 하청 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를 보호하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 같은 사회적 참사의 원인 제공자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조항 등이 포함됐다. 공무원의 부실한 관리·감독에 책임을 묻는 조항도 있다. 

이와 관련 2017년 있었던 스텔라데이지호 피해자 유족 허경주씨는 “스텔라데이지호는 폐선하려던 일본 유조선을 중국에서 개조해 화물선으로 운항하다 침몰했다. 개조허가도 국가가 해줬고, 안전검사도 국가가 제대로 했어야 했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 공무원은 철밥통이라는 인식을 깨고 잘못된 업무처리에 제대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와 정의당, 민주노총은 11일 오전 11시 국회 본관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와 정의당, 민주노총은 11일 오전 11시 국회 본관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법은 지난 9일 끝난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비판이 거세지자 지난 10일부터 더불어민주당 고위 관계자들은 내년 1월10일까지 열리는 1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밝혔으나 운동본부는 말만 듣고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에 묻는다”며 “법 필요성에 설명이 더 필요한가? 의석이 더 필요한가? 국민들 지지가 더 필요한가? 야당 반대 때문에 안 되는가? 도대체 왜 안 하냐, 왜 못합니까?”라 물었다. 

심 의원은 이어 “재계 일부를 빼면 대한민국 국론이 이렇게 단결된 적이 어디 있느냐”며 “모든 당들이 관련 법안도 다 냈다. 이게 이번 임시국회 밖으로 내쳐진다면, 문재인 정부는 노동 존중 사회란 팻말을 떼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국회에서 거의 모든 것 할 수 있는 (180석 의석의) 민주당은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을 보여야 할 때”라며 “정의당은 절박한 마음으로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 이 법을 올해 안에 제정하기 위해 김용균·이한빛 부모님과 함께 단식농성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김미숙·이용관 이사장과 이상진 부위원장,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이 끝난 후 국회의사당 현관에 설치된 농성장에서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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