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화교 유우성씨가 간첩이라는 허위 자백을 유도했던 국정원으로부터 폭행·협박을 당한 피해자가 “고문이 고통스러워 자살 시도까지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수사관들이 원하는 진술이 나오지 않을 때마다 자신을 때렸고, 안에서 열 수 없는 독방에 갇혀 카메라로 감시도 당했다고 밝혔다.

피해자 유가려씨는 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송승훈 재판장) 심리로 열린 국정원 수사관 직권남용 사건 재판에서 4시간 가량 증인 신문을 받았다. 가려씨는 우성씨 동생으로 2012년 11월부터 2013년 4월까지 6개월 간 국정원 수사를 받으며 합동신문센터에 감금돼있었다.

기소된 유아무개씨와 박아무개씨는 직권(조사권)을 남용해 가려씨에게 진술을 강요한 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산다. 관련해 과거 법정에서 “가려씨를 때리거나 협박한 적 없다”고 밝혀 위증으로도 기소됐다.

가려씨는 2013년 합신센터를 나온 직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이들의 가혹행위로 허위 자백했다고 밝혔다. 오빠인 우성씨가 ‘여러 차례 북한에 밀입북했고 간첩행위를 했다’는 허위 진술이다. 2013년 2월 우성씨가 간첩으로 기소된 당시의 핵심 증거다.

폭행은 2012년 11월5일 가려씨의 합신센터 입소 직후 시작됐다. 가려씨는 검찰 주신문에서 “처음에 화교가 아니라고 부인하니 여자 수사관(박씨)은 책상에 있던 두꺼운 문건을 쥐고 내 머리를 쳤다. 폭행하면서 ‘질긴 년’, ‘정신 바짝 차리게 해주겠다’고 역정냈다. 발로 차고 머리채 잡아서 벽에다 찧고, 손바닥을 너무 때려서 수사관 손이 새빨갛게 돼 ‘손바닥이 아프다’는 말까지 했다”고 밝혔다.

이어 “남자 수사관(유씨)도 나보고 질긴 년이라고 하면서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고, 발로 차고 뺨도 때렸다. 수십 번 그렇게 했다. 두 사람한테 맞으니 너무 힘들어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바닥에 주저 앉았다”며 “그런데 주저 앉지도 못하게 일어나라고 했다. 머리채를 잡아서 일으켜 세웠다”고 증언했다.

가려씨가 반사적으로 주먹질을 피하니 ‘벽 모서리’에 몰려 맞았다고 했다. 가려씨는 “한 번씩 때리면 몸을 피하게 되니 마지막엔 벽 모서리에 서게 했고 거기서 맞았다”며 “‘너 똑바로 서’ ‘고개들어’ ‘눈 마주 쳐’ ‘너 제대로 얘기안해?’ ‘혼나볼래?’ 이런 말을 매우 자주 들었다. 수사관들은 손에 플라스틱 물병을 쥐고 머리를 계속 때렸다”고 말했다.

▲국정원 직원 가혹행위 및 허위진술 강요·협박 피해자인 유가려씨가 9월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 시작 전 기자들을 만났다. 사진=손가영 기자.
▲국정원 직원 가혹행위 피해자인 유가려씨가 9월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 시작 전 기자들을 만났다. 사진=손가영 기자.

 

“'진술번복죄'가 간첩죄보다 크다” 협박

피해가 트라우마로 남은 가려씨는 증언 도중 울음이 북받쳐 몇 번씩 소리 내어 울었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3~4 분씩 쉬었다가 증언을 이어나갔다. 가려씨는 가혹행위가 고통스러워 당시 자살까지 기도했다고 증언했다.

“조사를 너무 힘들게 받아서 하루에도 열댓 번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날은 너무 힘들고 지쳐서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었다. 여자 수사관이 내 방에 들어와 수사받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오늘 조사하지 말자고, 하루 안 하면 안 되냐고 사정했다. 수사관은 무조건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또 사정했지만 안된다고 끌려나갔다. 조사실에선 (우성씨가 간첩이라는) 똑같은 조사를 계속하고, 한 거 또 하고, 또 하고… 조사실에서 ‘머리 박아서 죽어버릴까’ 그날 생각했다.”

가려씨는 자해 시도도 했다. “방에 있던 달력은 나중에 수사관이 가져갔다. 이후 직접 만든 달력마저 뺏겨 날짜도 몰랐다. 하루하루 버티던 중 너무 지쳐서 죽는 게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방을 훑어봤다. 24시간 나를 지켜보는 카메라가 있었다. 그 카메라를 매일매일 보는 게 싫었다. 방엔 자해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는데 책상을 보니 시계가 있었다. 카메라를 피해 시계를 들고 화장실로 가 시계를 바닥에 대고 깨고 또 깼다. 한참 시도하는데 수사관이 들어와 제지했다. 그리고 시계를 가져갔다.”

가려씨는 다른 입소자들은 대부분 단체생활을 했음에도 자신은 독방에서 지냈다고 밝혔다. 독방은 외부에서만 열 수 있는 잠금장치가 있어 자유롭게 출입하지 못했다. 방에 있는 전화기로 수사관을 불러야 나갈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이 받아 낸 진술서, 반성문은 15종이 넘는다. 가려씨는 “훨씬 더 많다. 쓰면 고치고, 또 고쳐 진술서를 훨씬 많이 썼고, 말을 다 맞춰 수사관이 검토를 끝낸 것만 공개됐다”고 말했다. 가려씨는 국정원 직원이 “‘진술번복죄’가 간첩죄보다 크다”며 협박했고 “‘내가 진술을 잘해야 오빠 형이 낮아져 같이 살게 해준다’, ‘가족이 네 손에 달렸다. 아빠도 위험해질 수 있다’ 등의 말도 했다”고 밝혔다.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 ⓒ 연합뉴스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 ⓒ 연합뉴스

 

“과거 증언 다 거짓말… 국정원 진실 말한 적은 있나?”

이와 관련 가려씨 측은 수사관들 혐의가 추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2013년 우성씨의 ‘간첩 조작 사건’ 재판에서 위증을 더 일삼았단 점에서다. 피해자 대리인 양승봉 변호사는 “2013년 6월3일 법정 증언 중 거의 모든 사실이 허위였다”며 국정원이 재판 예행연습을 해 위증을 공모했다고 주장했다.

‘거짓말탐지기’가 한 예다. 국정원은 2012년 12월 가려씨를 상대로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했는데 “오빠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와 연관 있다”는 진술은 거짓으로 나타났다. 합신센터 측은 이에 수사국장에게 ‘물증도 없고 가려씨 진술도 수시로 번복된다. 우성씨 강제수사 진행은 무리’라고 건의했지만 수사는 강행됐다.

그러나 수사관들은 “당시 가려씨가 횡설수설해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며 “나는 결과서를 못 봤다”고 반복해서 위증했다. 국가정보원 개혁위원회가 확인해 2017년 11월 발표한 내용이다.

가려씨를 무력화시키려 공개 망신을 준 사건도 있다. 가려씨는 수사관이 자신의 몸에 ‘회령 화교 유가리’라고 붙인 후 센터의 탈북자들이 있는 건물 복도에 강제로 세웠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사관들은 “유가려가 원했다”거나 “자신이 탈북자인 걸 증명하겠다고 데려가 달라고 했다. 끝내 가려고 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국정원이 방송으로 직접 불렀던 동향의 탈북자는 “그 순간 우연히 나타난 자”라고 위증했다.

가려씨에 따르면 두 수사관은 가려씨 자해 시도를 직접 막았음에도 몰랐다고 밝히고 있다. 다음 날 가려씨는 심리상담을 받으라는 수사관 지시를 듣고 상담도 받았다. 이밖에도 피해자 측은 “가려씨로부터 받은 진술서가 무수히 많지만 10번이며 더는 없다고 양을 축소했고, 심야 조사를 많이 했음에도 딱 1번만 심야조사했다며 위증했다”며 총 9가지 위증 사실을 재판부에 밝혔다.

지난 5월 시작한 재판은 지금까지 4차례 진행됐다. 9일은 검찰 측 주신문만 진행됐고 피고인 측 반대신문은 내년 3월19일 열린다. 두 수사관은 지금도 국정원을 다니며 징계도 받지 않았다. 법정에서는 ‘국정원 현직’이라며 신원 보호 지원까지 받는다. 향후 진행될 이들 신문도 전체 비공개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 가려씨는 “관련 기억만 떠올려도 고통스럽고 법정에 올 때마다 안정제를 먹어야 한다”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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