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강사도 코로나19 영향을 직격으로 받은 대표 취약군이었다. 열에 넷이 실직을 해봤고 여덟은 휴업을 경험했으며 절반 이상 소득이 감소했다. 그러나 대부분 휴업수당, 실업급여는 받지 못했다. 명목상 자유계약자(프리랜서 등)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어서다.

직장갑질119와 공공상생연대기금은 지난달 20~24일 동안 학원강사 500명을 대상(95% 신뢰수준, 표본오차 ±4.4%)으로 지난 2월 코로나19 전국 확산 이후 노동환경 변화와 업무 종속성, 근로조건 등을 설문했다. 여론조사 기관 엠브레인퍼브릭이 의뢰받아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온라인 조사로 진행했다.

▲출처=직장갑질119
▲출처=직장갑질119

응답자 27%가 지난 10개월 간 실직을 해봤다고 답했다. 지난 9월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실직 경험율 15.1%보다 1.8배 높다. 소득이 감소한 응답자는 54.2%에 달했다. 지난 9월 직장인 조사 결과인 34.0%보다 1.6배 높다.

고용 불안을 경험한 비율은 여성이 남성보다 높았다. 여성 응답자 중 29.6%가 실직을 경험했고 남성은 19.0%였다. 휴직·휴업 비율도 여성이 남성보다 눈에 띄게 높았다. 응답자의 78.8%가 ‘있다’고 답했는데 여성은 83.1%가, 남성은 65.3%가 휴업을 해봤다고 답했다. 17.8% 포인트 차다.

▲출처=직장갑질119
▲출처=직장갑질119
▲출처=직장갑질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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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업 경험 응답자 중 31.2%만 휴업수당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이 또한 여성(28.3%)이 남성(43.0%)보다 적은 비율을 보였다. 왜 받지 못했느냐는 질문엔 ‘5인 미만 사업장이어서’(30.6%), ‘학원에서 학원강사는 지급대상이 아니라고 해서’(26.6%),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서’(25.5%) 등의 순으로 답했다.

소득이 감소(응답자 54.2%)한 이유는 대부분 ‘노동시간이 줄거나’(36.9%), ‘담당한 수업의 학생들이 줄어서’(35.8%)였다. 반면 480명이 실업급여를 받아본 적 없다고 답했는데 55.4%는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았다’고 이유를 밝혔다.

직장갑질119는 “학원은 근로기준법에 따른 휴업수당을 지급하지 않았고, 실직한 강사들은 고용보험에 가입해 있지 않아 실업급여도 받지 못했다. 이들에게 정부 코로나19 대책인 휴업수당, 실업급여, 고용유지지원금, 특별고용안정지원금은 그림의 떡이었다”며 “코로나19의 가장 큰 피해자인 학원강사는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정부에게 버림받았다”고 밝혔다.

‘무늬만 자유계약자’ 사용자에 입증 책임 전환해야

학원은 왜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을까. 대다수 학원강사는 근로계약이 아닌 업무 위탁 계약서 등을 체결하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된다. 4대 보험 가입율도 턱없이 낮다. 응답자의 35.0%만 4대 보험에 가입했다. 51.2%는 ‘가입돼 있지 않고 사업소득세를 공제한다’고 답했다. 13.8%는 가입·공제 모두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실질적 노동환경을 보면 이들은 학원에 종속된 정도가 높다. 응답자의 67.2%가 ‘수업시간과 상관없이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답했다. ‘출퇴근 시간 조정, 결근, 조퇴, 휴가사용 등을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응답자는 89.6%나 됐다. ‘수업시간을 변경하려면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응답율도 86.0%였다.

▲출처=직장갑질119
▲출처=직장갑질119
▲출처=직장갑질119
▲출처=직장갑질119

수업 외 맡은 업무도 다양하다. 학부모 및 학생 면담(76.0%), 수업일지 작성 및 업무보고(66.6%), 학원 전화응대 업무(43.4%) 등이다. 응답자 41.8%는 학원 청소도 겸했고 행정업무를 한다는 비율도 33.2%나 됐다.

그러나 열에 셋만 추가 근무수당을 받았다. 학원에서 보충수업이나 추가근무를 지시할 때 추가 수당을 받는다는 답은 31.4%밖에 되지 않았다. 응답자 500명 중 월 소득 150만원~300만원 미만이 56.6%로 가장 높았고, 150만원 미만도 21.6%나 됐다.

직장갑질119 권두섭 변호사는 “학원강사가 학원의 통상적 업무인 강의 업무를 하고 있는 것처럼, 프리랜서 등 특수고용 노동자가 그 사용자의 통상적 업무에 관한 일을 하고 있다면, 지시와 통제의 외형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노동자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권 변호사는 방법 중 하나로 ‘입증 책임 전환’을 들었다. 현재 학원강사들은 퇴직금이나 실업급여 등을 받으려 고용노동청을 찾아가도 진정이 각하되기 부지기수다. 고용노동부는 진정인(노동자)에게 노동자성 입증 책임을 부과하고, 그 판단 기준도 매우 엄격하게 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용자에게 입증책임을 부과하고 고용노동부가 판단 지침만 새롭게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대법원 Dynamex 판결이 예다. 한 물류업체 플랫폼 노동자인 배송기사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판례다. 대법원은 “보수를 목적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자는 근로자로 추정되며 사용자가 ‘ABC 검증 요건’을 ‘모두’ 입증해야만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다”고 입증 책임을 사용자에 돌렸다.

‘ABC 요건’ 내용은 3가지다. △사용자의 통제와 지시로부터 자유로울 것 △하는 일이 사용자의 통상 업무가 아닐 것 △사용자와 같은 분야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별개의 영업·직업을 소유한 자일 것 등이다. 3번째 기준은 여러 학원에서 강사로 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경쟁 업체를 소유했다는 의미다.

직장갑질119 윤지영 변호사는 “(이처럼) 사용자에게 근로자와 독립계약자의 구별에 관한 무거운 입증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학원강사 설문조사 결과 이들은 위 ABC 검증 요건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명백한 노동자이고, 근로기준법과 4대보험이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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