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애플 아이폰7의 발표회. 온통 “혁신은 없었다”는 기사뿐이었다. 스펙을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혈육이 아닌 동성애자가 이어받은 그 기업. 후계자는 제품발표회를 직접 진행했다. 자신들이 투자한 쇼 프로 ‘카풀 카라오케’를 오프닝으로 삼아 직접 노래도 불렀다. 팀쿡의 노래가 카풀 카라오케의 아델편이나 미셸 오바마편보다 재미 있을리야 없겠지만, 대기업 CEO의 망가지려는 모습은 신선했다. 적어도 스티브 잡스의 쇼맨쉽이 지닌 의미를 어떻게든 되살리려는 듯한 노력이 엿보여 애틋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어서 일본의 대표 콘텐츠 캐릭터 마리오가 리우 올림픽에 이어 다시금 깜짝 소개되었다. 꽤 긴 시간을 할애하며 아이폰에 마리오가 출시하게 됨을 알리는데, 직접 등단한 이는 마리오의 아버지인 미야모토 시게루. 젤다, 동킹콩 등 히트작을 만들며 전자오락계의 스티븐 스필버그로 일컬어지는 이. 프랑스에서는 훈장까지 받는 등 전세계적 사랑을 받은 그는 이미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아직 현역이었다.

이미 스마트폰에서는 흔해져 버린 달리기 게임. 왜 시간을 들여 소개하나 싶었지만, 오히려 객석은 웃음과 박수로 가득 찼다. 그들은 무엇이 원조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리오는 닌텐도의 대표작으로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만약 닌텐도 플랫폼 이외로 우리가 진출한다면 닌텐도는 더는 닌텐도가 아닐 것”이라며 닌텐도 사장이 직접 호언장담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닌텐도라도 달리진 모바일 세상에서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나 보다.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넘은 일이지만, 닌텐도 패미컴은 8비트 애플 II와 똑같은 6502라는 CPU를 썼었다. 당시 일반적이던 Z80 등을 채택하지 않은 점은 이 둘의 이단아적 성격에 공통점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비슷하게 고집 있던 두 업체는 각자의 왕국을 구축하며 지금까지 만날 일이 없었다.

닌텐도 게임은 닌텐도 하드웨어에서만 하는 것이라는 고집스러운 공식, 또는 비즈니스 모델은 포켓몬 고의 출시와 함께 자연스럽게 걷히고 있었지만, 그래도 애플 이벤트의 깜짝 등장은 모두에게 놀라웠던 것.

성공한 캐릭터와 콘텐츠는 특별대우를 받는다. 한 나라의 총리가 다음 올림픽 개최국의 색깔을 표현하기 위해 마리오를 뒤집어쓰고, 애플은 자신들의 플랫폼의 외연이 넓어졌음을 자랑하기 위해 마리오를 우선 초대한다.

하나의 히트작은 어찌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프렌차이즈가 되고 그것이 세계관을 만들고 다시 왕국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다른 고집이 필요하다.

중진이 되어서도 멈추지 않고 실무를 한다. 자신의 시대에 집착하지 않고 지금의 소비자를 읽으려 애쓴다. 그리고 그렇게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도 자신의 작품을 다시 내놓는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무엇무엇의 아버지가 된다.

한류와 창조경제가 당장이라도 한국을 구원할 듯 떠받들지만, 한국에 가장 부족한 부분은 국가주의도 ‘명텐도’와 같은 기획도 아닌 실무 현장의 장인이다. 히트 상품은 어쩌다 나오지만 그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스토리가 보이지 않는다.

대표이사 대행까지 올라간 지금의 미야모토 시게루도 한 때는 대기업 닌텐도에 입사한 보통 청년이었다. 이런 긴 호흡의 롤모델 이야기는 혁신될 수도 진흥될 수도 없는 일이다. 수치적 스펙이나 신기능은 쥐어짜서 만들 수 있어도, 작품이 나오는 토양과 문화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 어느 시절에는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경제적 보상을 가져다줄 시장이 없었거나, 밑에서 차린 밥상에 숟가락 얹는 일이 편해 보였거나, 좀비가 된 핑계는 많다. 모두 이런 상태면 밥 차리는 냄새가 나면 상은 제대로 차려야 한다며 숟가락을 들고 오는 이들만 많아진다.

삼성, 현대차, LG, SK 등 16개 주요 그룹은 문화강국 허브 구축을 하겠다며 재단법인 미르에 수백억의 출연금을 조성했다. 신한류 확산으로 코리아 프리미엄을 달성한다는 주장인데, 그렇게 관변 단체 하나 만들어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쯤 기업이 더 잘 알고 있지만, 주주 이익보다 권력과 관의 눈치를 보는 경제구조에서는 잘도 모금된다.

오늘 저녁에도 아마 잡스를 키우자며 왜 노벨상은 또 안나오냐며 그러니까 혁신을 하자며 어딘가에선 훈시가 이어질 것이다. 한국이 G20중 GDP 대비 R&D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면 사회에 만연한 비합리성이 만들어내는 비용을 누군가 대신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애플의 이벤트. 이번에도 역시 혁신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스펙과 혁신 타령에 빠진 우리에게, 혁신 없어 보이는 제품도 스토리와 콘텐츠로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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