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복(56)은 기자다. 경향신문 소속인 그는 30년 동안 국내외 언론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강산이 세번 바뀔’ 그 시간은 그를 기록자에서 역사 증언자로 단련시켰다. 또 그에게 단발성 사건 속에 숨어 있는 실체적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선사했다. 그 안목은 기자의 현장 감각과 역사 지식의 산물이다. 그는 취재 현장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사람을 만났고, 만나고 있고, 앞으로도 만날 것이다. 또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조각 자료들을 모으는 노력을 30년 동안 계속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원 기자는 특히 한국 근현대사에서 권력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제거돼야 했던 억울한 사람들에게 매달렸다. 그 한을 풀어주고 싶었다. 25년 동안 민족일보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활동한 그는 가해자인 권력자의 시각으로만 기억되는 역사는 실체적 진실을 담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그가 써내려간 대표적인 책들이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평전>과 <사랑할 때와 죽을 때-한중 항일 혁명가 김찬·도개손의 부부평전>이다. 그는 한국 근현대사에 김찬과 도개손 부부의 사랑이야기와 그들 부부의 항일 투쟁사 및 박정희 권력자에 의해 사형을 당한 신문 발행인 조용수의 삶을 한국 근대사에 복귀시켰다. 특히 ‘변절 독립운동가’로 잘못 알려진 김찬은 반드시 재평가돼야 할 인물이라고 강조한다.

자유언론실천재단은 최근 원희복 기자가 <르포 히스토리아> 책을 펴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시 종로구 필동 재단 사무실에게 그를 만났다.

▲ 원희복 ‘르포 히스토리아’ 저자
우리의 민낯_‘원효로1가’엔 기념비가 없다

- ‘르포 히스토리아’는 어떤 책인가?

이 책은 시사주간지 <주간 경향>에 ‘광복 70주년 현대사 르포/서대문형무소에서 진도 팽목항까지’라는 제목으로 1년간 연재한 내용을 묶은 것이다. 권력자 갑의 역사가 아닌 일반인 을의 시선에서 근현대사 70년을 한번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1945년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장소’ 40곳을 선정, 르포기사를 쓴 것이다. 역사적 현장에 가서 과거를 되살피고, 지금의 상황을 정확히 들여다보자는 취지에서 기획했다.

르포의 첫 발걸음을 서대문형무소로 내디뎠다. 1945년 8월 16일 국민이 진정한 해방의 감격을 느낀 것은 서대문형무소가 열리면서 시작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마지막 방문지는 진도 팽목항이었다. 각각의 현장이 주는 영감이 약간씩 다르지만 팽목항에 도착하니 회의감이 들었다. 우리 현대사의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린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해방후 지금까지 죽자 사자 달려온 것이 바로 이 꼴을 보기위해서인가 하는 참담함이 밀려왔다. 왜 그럴까? 딱 한 단어가 떠올랐다. ‘망각.’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지속적으로 잊고 살아온 게으름의 마지막 도착지가 팽목항이었다. 사실 세월호 참사도 망각에서 비롯됐다.

기업의 탐욕과 행정기관의 야합으로 비롯된 1995년 삼풍백화점 사고, 1993년 서해 페리호 참사, 2010년 천안함 침몰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덮어버리고 잊어버린 폐해가 세월호에서 되풀이되었다고 본다. 역사의 망각이 빚어낸 잘못이다. 다시 말하면, <르포 히스토리아>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버린 대한민국의 민낯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피해자인 을의 역사도 쓰고 싶었다”

- 책의 내용 중에 기억에 남는 장소를 꼽아 주신다면?

역사 기록이 그렇듯 우리의 현대사 역시 대부분 승리자(갑)의 기록이거나 승리자의 ‘만행’으로 인한 처참한 피해자의 기록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갑의 만행에 반발한 항쟁 기록이다. 이번 현대사 르포를 기획하면서 될 수 있으면 이러한 갑의 역사를 피하려 했다. 자발적이고, 피해자인 을(乙)의 역사도 쓰고 싶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서울 ‘원효로1가’이다. 이 길은 육군특무대장 김창룡 소장이 사살된 곳이다. 김창룡은 일제 강점기 우리 독립운동가를 잡아 고문하던 악질 관동군 헌병이었다. 해방후 이승만 독재에 반대하는 정적을 제거하는 데 앞장섰다. 그를 사살한 사람이 허태영 대령이었다. 허태영은 ‘눈에는 눈’의 방식으로 가해자를 응징한 첫번째 인물이다. 허태영은 재판 내내 “정치군인, 친일군인을 처단한 것은 명예로운 행동이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사형 집행장에서 “애국가를 부르자, 우리는 떳떳한 일을 했다”라며 죽었다. 정치·친일군인의 문제는 이후에도 계속 문제가 되고 있다.

이어진 두 번의 군사 쿠데타가 그렇고, 지금 벌어지는 건국절 논란도 근원은 거기다. 그만큼 우리 현대사에서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갔어야 할’ 사안이었다. 그것을 통쾌하게 이뤄낸 곳이 바로 원효로1가였던 것이다. 정치·친일 군인을 처음으로 처단한 그 자리에는 아무런 역사의 기념비도 없었다. 이번 책에서 그곳을 의미있게 재조명했다.

이외에도 정의구현사제단이 출범한 ‘원주의 원동성당’ 과 6.25 민간인 집단학살 장소 중 하나인 ‘고양 금정굴’ 등이 있다. 특히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곳으로는 민주화 이후 국가기관의 대통령선거 개입 사건인 ‘역삼동 오피스텔 607호’와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헌법재판소’를 꼽고 싶다. 국가 폭력의 부당함과 잔인함을 우리가 또 망각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을 찾는 기자가 논란을 두려워해서야”

- 글의 진중함이 배어난다. 기자는 무엇을 먹고 사나?

글은 사람들과 사회 구성원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단이다. 특히 기자는 질문을 직업으로 삼는다.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해 계속 질문을 해도 된다고 사회에서 공인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6하 원칙(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에 기반해 파편적 사실들에서 정보를 모으고 또 모은다. 기자들은 사람들에게 직접 질문을 통해 정보를 듣거나 책 등의 매체들을 통해 간접 자료에서도 정보를 뽑아낸다. 기자는 이렇게 쌓인 조각 정보들을 하나로 잘 연결할 수 있어야만 소모성 기자가 아닌 지식인 기자가 될 수 있다.

글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야 하므로 항상 공부를 해야 한다. 사안별로 나만의 시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기자는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자는 논란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기자는 사회 구성원들이 다양한 눈으로 사회를 볼 수 있도록 걸러진 정보를 꾸준히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기자는 사실을 바탕으로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진실을 찾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기자는 망각 속에 갇혀 있는 역사의 피해자들을 끄집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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