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저녁 9시경 퇴근 후 늦은 저녁식사중 통신사 후배 기자로부터 ‘안산에서 세월호 유가족들 백여명 영정 들고 버스로 KBS 항의방문 출발, 이후 청와대 방문’ 문자를 받았다. 숟가락을 놓고 카메라를 후다닥 챙겨 택시를 잡아 타고 여의도로 향했다. 늦을까봐 초조했지만 KBS 본관앞에 도착했을 때 아직 유가족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벌써 본관앞을 빈틈없이 줄지어 막아선 경찰버스와 수많은 경찰들이 눈에 들어왔다.

밤 10시 15분경 버스 다섯 대가 KBS 본관앞에 도착했고 “세월호 사고는 3백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건 아니”라는 취지의 김시곤 KBS 보도국장 발언에 분노한 유가족들은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막아서는 경찰들을 향해 거세게 항의하며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 밤 10시 15분경 세월호 유가족들이 영정사진을 들고 버스에서 내려 서울 여의도 .KBS 본관앞으로 모이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시곤은 나와라! 대화를 하려고 온거다! 경찰은 비켜라! 이렇게 빨리 막아서는 것처럼 애들을 구했으면 다 살려겠다!” 한시간 반 동안 대치하다가 11시 40분경 유가족대표와 법률대리인 13명이 본관으로 들어갔지만 길환영 사장과 김시곤 국장은 만나지 못했다. 2시간 넘게 진행된 대화가 KBS의 사과 거부로 결론나자 유가족들은 새벽 2시 30분경 다시 버스에 올라 청와대로 향했다.

광화문 앞에서 버스가 경찰에 막히자 유가족들은 담요를 둘러 쓴 채 영정을 들고 대통령을 만나 얘기하고 싶다며 청와대로 행진했다.

   
▲ 광화문 앞에서 버스가 경찰에 막히자 세월호 유가족들은 영정사진을 들고 걸어서 청와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경찰은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이들을 완강하게 막아섰고 유가족들은 진도 팽목항과 실내체육관에서처럼 모포를 둘러 쓴 채 아스팔트 길위에서 어버이날 밤을 꼬박 뜬 눈으로 지새워야했다. 9일 오후 2시 김시곤 보도국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의사를 밝히며 길환영 사장도 퇴진해야 한다고 돌발 선언을 한지 두 시간여 후에 길 사장은 전날밤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로 청와대앞의 유가족들을 찾아가 사과했고 유가족들은 안산으로 돌아갔다.


   
▲ 지난 9일 오후 2시 김시곤 KBS 보도국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의사를 밝힌 후 기자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 9일 오후 3시 20분경 길환영 KBS사장(오른쪽)이 청와대 인근에 모여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 나와 사과하고 있다.
사진=강성원 기자 sejouri@
 
10일 오후 2시 서울 홍대앞과 명동에서는 용혜인 학생이 최초 제안해 시작된 세월호 희생자 추모 ‘가만히 있으라’ 4차 침묵행진이 안산 정부합동분향소까지 이어졌다. 같은 시각 동아일보, 조선일보, KBS 앞에서는 디자이너 4인과 동참한 시민 70여명이 검은티셔츠를 입고 세월호 참사 보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일부 언론을 규탄하는 ‘기레기는 필요없다. 유족 앞에 사죄하라.’ 퍼포먼스를 펼쳐졌다. 저녁 6시 안산문화공원에서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2만여명의 시민이 모여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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