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가까이 미세먼지로 뿌옇던 하늘은 쾌청해지고 봄 기운이 만연한 3일 오전. 경기도 수원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정문에서 삼성반도체 노동자였던 고 황유미 씨를 비롯한 반도체, 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들을 위한 합동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이 열렸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회원들과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조합원, 삼성전자서비스노조 조합원, 삼성 직업병 피해자 가족 등 30여 명이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도중에도 독극물, 유독물질 표시를 한 황산, 질산, 과산화수소, 액화산소 등과 이름을 외우기도 힘든 위험 화학물질들을 실은 거대한 탱크로리들이 5분이 멀다하고 공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추모주간 취지발언을 통해 “지난 2007년 3월 6일 자신의 딸을 억울하게 백혈병으로 잃어야만 했던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의 사연을 듣고 그해 11월 20일에 대책위원회인 지금의 ‘반올림’이 이곳 기흥공장 정문에서 발족했다”며 7년 전을 회고했다.

   
▲ 삼성반도체 노동자 고 이윤정씨의 남편 정희수씨(오른쪽)와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3일 오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정문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3일 오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앞에서 열린 '고 황유미 7주기 추모 및 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합동추모 기자회견.
이치열 기자 truth710@
 
   
▲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중에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정문을 통해 각종 유독성 물질을 실은 탱크로리들이 수차례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노무사는 ‘이 투쟁을 시작하고 나서 여섯 번의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을 맞은 지금 영화 <또 하나의 약속>과 <탐욕의 제국>이 많이 알려진 사회적 분위기도 있고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만들어 함께 투쟁하고 있기에 예년과 마음가짐이 사뭇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삼성은 직업병 피해자를 은폐해 왔지만 지난 7년 동안 반올림에 제보된 백혈병, 뇌종양, 희귀질환 피해자 규모는 계속 늘어 총 243명에 달하고 삼성 계열사만 193명이며 그 중 73명이 사망했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삼성이 생산효율이라는 가치 아래서 안전과 생명에 대한 문제는 쉽게 무시해 왔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을 수 있었고 그것이 삼성에 맞서 싸우는 이유'라고 말했다. 삼성 외 업체 사망노동자 19명을 포함해 총 92명의 억울한 넋을 달래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고 황유미 씨의 7주기를 맞아, 살아남은 사람들이 결의를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추모주간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이자 삼성과 교섭중인 반올림교섭단 대표인 황상기 씨는 '2007년 당시 삼성 사람들은 반도체 공장에서 병이 걸리는 것은 개인적인 질병이라고 하며 자기네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여러번 언론을 통해 이야기했다. 7년이 지나가는데도 지금도 똑같은 얘기만 하고 있다'고 삼성을 규탄했다.

그는 '사회여론이 너무 뜨거워 어쩔 수 없이 교섭 자리에 나온 삼성 사람들과 두번째 만났을 때 일이다. 삼성전자에서 죽어나간 노동자가 너무 많으니까 그들에 대한 예의의 표시로 묵념을 하고 시작하자고 했더니 "묵념하려면 집에서 하고 오지 왜 여기서 하느냐? 나가서 당신들끼리 하고 와라"고 말했다. 동물의 왕국(TV 프로그램) 보면 짐승도 자기 동료가 죽으면 그 옆에서 며칠 씩 머물다가 그 자리를 떠난다. 이게 사람의 탈을 쓰고 할 말인가? 유미가 다 죽어갈 무렵에 삼성반도체 사람들은 나를 뿌리치려고 협박, 공갈하고 한 번도 유미에 대해서 물어본 적 없다. 독극물 쓰는 것도 맞다. 노동부에서 삼성반도체 공장에 공기중에 벤젠, 포름알데히드, 비소 등 검출됐다고 얘기했다. 2007년 9월 1일 맨 처음 역학조사 때 오후 1-2시 쯤 삼성반도체 안전관리팀장이 10억을 줄테니 사회단체사람들 만나지 말고 삼성 비판하지 말라고 했다. 또 2012년 말로 기억하는데 반도체 공장 사람이 집에 찾아와서 보상해 줄테니 삼성 비판하지 말라고 했다. 녹음 기록도 있다. 이것이 돈으로 회유하는 것 아니고 뭐냐? 그런데도 삼성은 돈으로 회유한 적 없다고 한다'고 삼성을 규탄했다. 

황상기 씨는 '지금이라도 삼성은 피해자 가족과 성실하게 대화에 임하고, 노동3권을 보장하고, 노동자와 소통해서 다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해서 국민과 노동자들로부터 사랑받는 기업으로 태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은 차량으로 수원시 영통구청 인근의 삼성전자 중앙문으로 이동해 점심을 먹으러 나오는 삼성전자 직원들을 대상으로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서명’을 받고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탐욕의 제국> 홍보물을 배포했다. 삼성 직원들은 홍보물을 받아가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서명에 동참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현장을 지나던 몇몇 시민들은 일부러 찾아와 홍보물을 받아가기도 했다. 

   
▲ 점심을 먹으러 나온 삼성전자 직원들이 삼성반도체에서 숨진 노동자들의 영정사진 옆을 지나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삼성반도체 노동자 고 이윤정씨의 남편 정희수씨(오른쪽)와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삼성전자 중앙문앞 인도 가로수에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포스터를 붙이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 수원 영통구 삼성전자 중앙문을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가는 삼성 직원들이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포스터를 지나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점심을 먹으러 가는 삼성 직원들을 향해 황상기 씨가 마이크를 집어 들고 호소했다. 

"이제는 삼성 노동자가 직접 나서서 노동권 보호해 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그 노동권이 여러분을 지키고 자녀와 동료를 지키고 회사를 아름답게 할 것입니다. 자기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합니다. 지금이라도 이 말을 들었으면 오늘부터라도 나서야 합니다. 노동자가 직접 나서면 안 될 일이 없습니다. 삼성 이건희 이재용에게 얘기하십시오. 우리 노동현장은 잘못된 거라고 노동자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얘기하십시오. 그리고 영화 <또 하나의 약속>과 <탐욕의 제국>을 같이 보시는 것도 이 세상을 같이 바꾸자는 노력을 함께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6일까지 이어지는 추모주간 행사 일정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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