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남산송신소 앤지니어 이상필(42)씨의 근무처는 서울 도심한복판에 위치한 남산이다. 남산송신타워 안에는 각 방송사 송신소 외에도 한국통신, 정보통신 그외 각종 기관들의 중계소들이 다 모여있다. RF(고주파전류) 베테랑 엔지니어들이 왕창 모여 있는 셈이다.

6월14일. 이씨는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잠실 집에서 남산타워에 차를 타고 이르는 유일한 통로인 국립극장을 거쳐 송신소에 이른 시각은 9시30분경. 일요일, 공휴일에 관계없이 3일에 한번씩 24시간 근무를 해야 하는 이씨는 이제 내일 아침 10시가 돼서야 퇴근을 하게 된다.

81년 KBS에 입사한 이후 TV송신소에서만 올해로 16년째인 이씨는 교대근무 생활을 16년한 셈이다. 작년에 남산송신소로 오기전에 부산 영도송신소에서 6년, 관악산송신소에서 8년을 보냈다. 이같이 산 속에 위치한 송신소에서 교대근무를 오래하다보니 사람들이 많은 곳은 이제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9시30분. 이씨는 전날 24시간 근무를 하고 퇴근을 하는 근무조로부터 전날 일어난 일과 기계 이상여부 등에 대한 인수인계를 받았다. 어제는 1TV 예비송신기의 진공관 교체를 했기 때문에 오늘 방송 안 나가는 시간을 이용해 계속적으로 운하시험을 해야 한다고 한다.

10시경 간부회의를 하고 나온 정관영 차장도 △1TV예비기 운하시험 △발전기 부하시험 △마이크로웨이브 S-TL 점검 등 오늘 할일을 지시했다. 정차장은 특히 ‘우기를 대비해서 각 접점부근의 발열체크를 하라’는 김성현소장의 중점 지시사항이 있었다고 전한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온도와 습도가 올라가면 기계가 늘어나기도 하고 고장 빈도도 증가하기 때문에 온도체크는 가장 중요한 작업중에 하나다. 온도가 올라가 있을 경우 즉각적으로 냉각팬을 돌려 온도를 낮춰주고 제습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보통 기계점검은 오전방송이 끝나는 12시 이후에 이루어진다. 발전기 부하시험이나 마이크로웨이브 S-TL 점검 등은 방송시간 중에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1TV예비기 운하시험 등 많은 기계점검이 방송 중에는 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방송시간이 연장되면서 기계점검을 위한 시간이 실제로 12시부터 4시(5시부터 오후방송이 시작되나 1시간전부터 시험방송이 나가야 한다)까지 4시간 정도로 줄었다. 또 방송시간외 중계방송이 많아져 급하게 기계점검이 필요할 경우 점심을 걸러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앞으로 종일방송이 된다면 송신소 근무자들은 한밤중에 정비를 해야 하고 24시간 모니터를 해야만 할 것이다.

이제 오전 방송이 계속되는 12시까지는 주로 각 채널들에 대한 모니터를 한다. 남산송신소에서 송출하는 KBS TV1, 2, 교육방송(교육방송 송출은 KBS가 전담하고 있다)등 TV채널 3개와 KBS FM 라디오2개 채널을 모니터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한꺼번에 5개 채널을 동시에 틀어놓고 오디오 송출과 비디오 송출에 이상이 없는가를 항상 주시해야 하는 것이다. 오전 방송 송출은 별 탈없이 지나갔다.

12시. 점심은 보통 송신소내 식당에서 해결한다. 식사도중 어디선가 ‘삐’하는 소리가 들린다. 한바퀴 둘러보고 온 동료직원 한명이 그 소리가 밖의 공사장에서 나는 소리라고 금방 알려온다. 이같이 송신소 근무자들은 일반 사람들보다 소리에 괴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무조건 ‘소리’가 나면 끝까지 추적해서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알아내야 안심이 되는 것이다. 작은 기계이상이라도 방송에 커다란 차질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또 TV방송사고가 나면 시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하며 굉장히 불안해 하기 때문에 24시간 긴장을 풀어 놓을 수가 없다.

오늘 점심시간의 화제는 자연스레 ‘소리’로 모아졌다. 함께 식사를 하던 이근우부장은 병원에 갈 때마다 난청이 심해졌다는 진단을 받는다고 했다. 고음난청이란다. 오랜 송신소 근무 탓이다. 송신소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각 방송에서 나오는 소리들과 기계 돌아가는 소리 등 시끄러운 곳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난청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1시. 이제 서둘러 기계점검에 들어가야 한다. 오늘은 2TV에서 3시부터 ‘전국남녀 볼링대회’, 1TV에서 3시20분부터 ‘전국 영어 웅변대회’ 중계방송이 있다. 보통 일주일 전에 팩스로 들어오는 편성표를 보고 송신소에서도 방송준비를 한다. 서울에서의 대부분 중계는 남산송신소에서 맡고 있으며 중계가 잘 안되는 지역에 따라 관악산 송신소에서 맡고 있다.

먼저 방송시작 전에 끝내야 하는 ‘1TV예비기 운하시험’을 끝낼 생각이다. 이 예비기는 노후기계이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운용이 가능하도록 점검을 해 보는 것이다. 안테나와 송신기와의 연결이 제대로 안됐는지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하나하나 조정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이런 기계점검은 때로는 굉장히 위험하다. 자칫 잘못해서 고압전류에 손을 대는 경우도 있다. 요즘에는 기계들이 많이 좋아졌지만 예전에는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다. 때로는 쥐들이 따뜻한(?) 기계속에 들어가 ‘탁’하는 소리와 함께 터지는 경우도 생긴다.

2시. 1TV시험방송을 내보내려면 예비기 운하시험은 일단 여기서 마무리 지어야한다. 적어도 방송시간 1시간30분전에는 진공관 히팅(가열)을 시켜놓고 1시간 전부터 시험전파를 쏘아야 하기 때문이다. 2TV송신기의 경우는 진공관 방식이 아니라 반도체 방식이기 때문에 히팅작업 없이 곧바로 시험전파를 쏠 수 있다.

방송 노후 장비들도 이제 많이 신 장비로 교체돼 2FM 송신기 등 디지탈 방식도 많이 도입됐다. 방송장비의 디지탈화에 맞춰 엔지니어들에 대한 디지탈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

발전기 부하시험은 보통 일주일에 한번은 해줘야 한다. 정전이 됐을 경우 즉각 발전기가 돌아야 하는데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이상이 없는가 점검해 보는 것이다. 발전기를 돌리는 작업의 가장 큰 고충은 귀가 멍멍할 정도의 굉음을 참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송신소 근무자들이 청각을 상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방송은 큰 차질없이 잘 나가고 있다. 나머지 오늘 점검할 일들을 대충 마무리 짓고 송신기 일지도 작성했다. 식당에서 아주머니가 차려놓은 저녁으로 또 한끼를 떼웠다. 일근자들이 오후 7시경 퇴근하고 나니까 교대근무조 3명만이 남았다. 새벽 3시30분부터 새벽 근무를 하기 위해서는 일찌감치 눈을 붙여야 한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야경은 정말 일품이다.

새벽 3시30분. 습관적으로 눈이 떠졌다. 2FM의 ‘3시와 5시사이’를 크게 틀어 놓는다. 2FM이 종일방송을 시작하면서 졸음을 쫓기위해 크게 틀어놓고 듣기 시작했는데 이제 이 방송의 고정 팬이 됐다. 4시30분 ‘따르르르르-’ 알람이 울렸다.

혼자서 밤 근무를 하다보면 졸음이 오기 십상이라 1TV송신기 히팅 시간에 맞춰 알람이 맞춰져 있다. 히팅을 시켜놓고 방송1시간 전에 시험전파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제 어슴프레 날이 밝아온다.

아침 9시가 되자 다음 근무조들이 출근을 한다. 우기에 대비에 전력시설을 점검해야 한다고 말하고 간단하게 인수인계를 마쳤다. 토요일이라 종일방송을 하기 때문에 특별히 기계정비를 해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차창문을 열어 놓고 남산의 상쾌한 아침공기를 맡으며 퇴근하는 것도 그렇게 나쁘진 않다.


송신소 엔지니어에 대해 알고싶은 것들

방송사-가정연결 전파 관리, “작은 실수도 대형사고”

방송사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각 가정에 전달되기 위해서는 송신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송신체계에 아주 미비한 착오라도 생기면 엄청난 방송사고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우선 각 방송사에서는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VTR에 저장해서 방송사의 마이크로웨이브 접시안테나를 통해 남산송신소와 관악산송신소로 직접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남산송신소와 관악산송신소는 같은 마이크로웨이브 안테나로 그 신호를 받는다.

그리고 각 가정에서 수신할 수 있는 형태로 신호를 변조해 출력을 50KW까지 증폭시키고 전파를 쏘게되면 각 가정에서는 각 가정에 설치된 안테나를 통해 이 전파를 받아 방송국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보게되는 것이다.

또 남산송신소와 관악산송신소에서는 각 지역에 있는 송신소와 중계소에 전파를 보내 난시청지역이나 이 두지역에서 보내는 전파가 도달하지 않는 지역에서도 방송을 시청할 수 있도록 해준다.

현재 전국에 있는 TV 송·중계소의 숫자는 KBS가 32개, MBC가 31개, SBS가 2개다. 그러나 이 송·중계소 이외에도 간이TVR(무인 중계소)를 두고 있어 난시청지역을 최소화하고 있다. 간이TVR의 숫자는 KBS가 824개, MBC가 165개, SBS가 8개다.

수도권 전 지역을 커버하는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하는 남산송신소의 경우는 KBS가 TV1,2 2개채널과 교육방송, FM1,2 2개채널 등 5개 채널을 송출하고 있으며 MBC가 TV1개채널과 FM 1개 채널 등 2개채널을, SBS가 TV1개채널만을 송출하고 있다. 그리고 각각 KBS와 MBC가 타워 3층에, SBS와 종교채널이 타워4층에 송신소를 두고 있으며 KBS에 16명, MBC에 12명, SBS에 19명의 근무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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