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노조의 최근 분위기는 비장하다. ‘위기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경영진의 감원·감봉 공세가 거세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에 제동을 걸지 못한다면 언론 노조는 심각한 위기국면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절박감마저 배어나온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 구랍 17일 ‘고용안정대책위원회’를 구성, 본격 대응 채비에 나선 것도 이런 사정에 연유한다. 위기의 일차적 책임이 경영진의 부실·방만경영에 있는데도 이는 덮어둔 채 그 책임을 사원에게 전가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경영진의 공세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열을 가다듬은 것이다.

고용안정대책위원회 신학림위원장(한국일보 노조 위원장)의 위기 진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IMF체제가 언론사의 경영 위기를 가속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IMF가 아니더라도 언론사의 경영 위기는 피할 수 없었다”는 게 신위원장의 진단이었다.

-최근의 위기상황이 어디에 연유한다고 보는가.

“재벌을 등에 업은 신문들이 시장 교란작전을 벌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부수 확장을 위해 선풍기, 위성수신안테나와 같은 경품을 지급하고 부수 확장수당으로 1부 5만원씩 지급한 게 바로 재벌언론들이다. 재벌언론들이 무한출혈경쟁을 일삼는 상태에서 다른 신문들도 생존을 위해 이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과정에서 한계상황에 도달한 것이고 때마침 IMF한파를 맞음으로써 위기상황이 가중된 것이다.”

-언론사 경영진은 위기 타개책으로 감원·감봉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다. 대응책은 무엇인가.

“경영진의 자기 희생이 전제되지 않은 고통분담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소유와 경영구조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개인 또는 회사 명의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매각하고 해외에 은닉한 재산이 있다면 이 또한 반환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경영합리화를 이루어야 한다. 아울러 종업원지주제·노조의 경영참가 도입 등을 통해 경영의 투명성과 민주성이 보장돼야 한다. 이런 조치들을 선행하지 않은 감원·감봉은 일방적 책임전가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현재의 상태에 비춰보면 상당히 공세적인 대응책인 것 같다. 과연 관철시킬 수 있겠는가.

“위기는 곧 기회이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이번이 재벌·족벌소유구조를 개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본다. 상황이 극심해질수록 노동자의 마음은 가벼워진다. 가진 건 몸뚱아리 뿐으로 잃을 게 없기 때문이다. 반면 경영진은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배수진을 치는 각오로 대응한다면 결코 패배할 수 없는 싸움이다.”

-새정부의 언론정책도 언론개혁의 성패를 가름하는 주요인이 될 것으로 보이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현재로선 뭐라고 말할 수 없다. ‘뚜껑’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공정거래위의 기능 강화를 역설한 점으로 미뤄볼 때 언론사간의 무한경쟁은 상당히 제어될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질적 경쟁을 펼칠 수 있는 조건이 조성돼 언론사의 ‘색깔 찾기’가 보다 용이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언론노조의 대응력은 결국 조합원의 결집 정도에 달려있다. 그러나 조합원 사이에는 불안감과 생존 욕구가 짙게 깔려있다. 오히려 전열 정비에 해가 되는 것 아닌가.

“한국일보 노조의 경우 구랍 26일 열린 대의원회에 전원이 참석해 끝까지 싸우자고 결의했다. 다른 노조도 이런 결의를 이끌어 낼 것이라고 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노동자는 잃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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