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중앙일보는 좀 겸연쩍었던 모양이다. 다른 신문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의 개혁과제를 제시하고 있을 때 두 신문은 ‘차분한’ 보도태도를 보였다. 대선기간 중 칼럼 등을 통해 반DJP연합을 부르짖었던 전력을 갖고 있는 두 신문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보도태도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 신문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이것만이 아니다. 적잖이 우려하는 흔적이 배어나온다. 바로 개혁에 대한 우려이다. 아니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거부감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조선일보 20일자의 ‘류근일칼럼.’ 다른 칼럼들이 갖가지 개혁요구를 늘어놓을 때 ‘류근일칼럼’은 유독 ‘삐딱한’ 논조를 펼쳤다. <성공하는 문민대통령>이란 제목이 붙은 ‘류근일칼럼’은 실패한 문민대통령 김영삼 씨를 김대중 당선자에게 투영시켰다. 그리곤 김영삼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요구를 내놓았다.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너무 좋아하지 말 것, 과거의 반대자들에게 의연히 대처할 것, 정의 독점의식에 빠지지 말 것, 그리고 국내 행정에 깊숙이 개입하지 말 것 등이 ‘류근일칼럼’이 내놓은 ‘충고’이다.

얼핏봐선 당연한 지적 같지만 그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몇 귀절이 이런 평가를 주저케 한다.

“‘저 ×는 나쁜 ×입니다. 저 ×를 죽이십시오’하는 측근들의 빗발치는 상소를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도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닐 것 같다.”

“개혁은 미움으로 하면 안되는 것인데…나도 살고 너도 사는 ‘윈윈’ 개혁이라는 게 분명히 있을 것이다.”

“김대중 당선자에게 특히 당부하고 싶은 말은 ‘진보 콤플렉스’를 느끼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개혁할 것은 개혁하고 보수할 것은 보수하는 것이지 거기에 무슨 금기가 있는가.”

이 대목에서 드러나는 ‘류근일칼럼’의 의중은 개혁기피증 또는 개혁 콤플렉스이다. 김영삼대통령이 행한 보복적 차원의 사정개혁의 부작용을 김당선자에게 투영시킴으로써 개혁의 부작용을 부각시키고 이를 통해 김당선자의 개혁 행보에 ‘울타리’를 치고자 하는 것이다.

‘류근일칼럼’은 왜 이런 주장을 내놓은 것인가. 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내가 이럴 줄 정말 몰랐지? 신문이 왜 이러는 거냐. 공보처장관은 뭘 하나’하는데만 일일이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면 그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류근일칼럼’은 신문사 간섭, 또는 언론 통제 가능성을 미리 차단코자 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대선기간 내내 반DJ 태도를 보여온 조선일보의 전력에 대한 우려가 깔려있는 것이다. 중앙일보의 19일자 해설기사 <보수존중…급격한 변화 없을 듯>도 ‘류근일칼럼’과 마찬가지로 개혁과는 어긋난 논조를 보였다.

<보수존중…>은 김당선자의 정책노선을 이렇게 진단했다. “김대중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보수노선을 표방했다. 이전의 그와는 다른 기조였다. 그래서 보수세력 일부와 그를 반대하던 충청권 유권자들이 지지를 보냈고, 때문에 당선됐다. 따라서 급격한 변화는 없을 듯하다. 아마도 그는 기득권 세력과 타협하려 할 것이다.”

<보수존중…>은 여기에 김당선자의 몇가지 ‘취약점’을 덧붙인다. IMF라는 국가적 위기상황, 소수·연합세력 등 새정부의 발목을 잡는 ‘취약점’들을 열거하면서 <보수존중…>을 다시 확인한다. “김대중정권은 상당히 조심스런 행보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지만 <보수존중…>은 몇가지 사실을 간과했다. IMF라는 국가적 위기상황 돌파를 위해서는 “기득권 세력의 협조” 이전에 기득권 세력의 중핵이자 IMF위기상황을 몰고 온 주범, 재벌에 대한 개혁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또 새정부의 개혁 청사진은 국민회의·자민련간의 정책 합의에 의해 이미 마련돼 있다는 점, 따라서 개혁의 강도와 폭이 조율될 수는 있을 지언정 연합정권이 보수를 존중하는 정책기조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수존중…>은 간과했거나 애써 무시했다.

중앙·조선의 ‘개혁기피증’은 사설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중앙과 조선은 각각 19, 20일자 사설을 통해 김당선자에게 바라는 바를 적시했지만 개혁 요구는 경제부문, 그것도 IMF 위기상황 극복을 위한 대처에 초점을 맞췄다.

중앙은 외국의 불신 해소를 위해 “바로 미국행 비행기를 타라”고 요구하는 한편 경제구조조정을 위한 각종 개혁입법 등을 차질없이 해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앙일보가 여기서 지목한 개혁입법은 금융개혁 관련입법과 실명제 대체입법·국채발행에 따른 동의안, 구조조정을 위한 특별법 등이었을 뿐 경제개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재벌 개혁 등에 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선일보도 마찬가지. 정부 개혁에 대해 언급하긴 했으나 한줄 걸치는 정도였고 나머지는 IMF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금융개혁과 기업경영 개혁에 초점을 맞추었다.

조선일보는 오히려 사회 안정과 경제 회복 이전까지는 “일체의 대북 이니시어티브를 시도하지 않기 바란다”고 요구, 대다수 국민이 새정부 개혁과제의 우선 순위로 꼽았던 남북관계 개선에 제동을 거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또 새 정부를 득표율 40%의 ‘소수정부’로 규정하고 이로 인해 빚어질 수 있는 사회적 불안상태와 관망적 태도를 일소하기 위해 사회 대통합에 나설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개혁의 선결조건인 ‘갈라내기’를 사전 봉쇄함으로써 개혁의 예봉을 무디게 하려는 의도라고 풀이되는 대목이다.
대선기간 중 반DJ의 선두에 섰던 두 신문이 이제 반개혁의 선봉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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