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공약검증보도가 ‘성의 표시’차원에서 끝나고 말았다. 경향신문의 ‘각당 공약 긴급 점검’, 동아일보의 ‘대선후보 공약검증’, 국민일보 ‘대선공약 허와실’, 중앙일보 ‘15대 대선 공약점검’, 조선일보 ‘대선공약 집중조명’, 한겨레 ‘97대선 주요공약 분석’, 문화일보 ‘대선후보 정책진단’ 한국일보 ‘한국일보사·한국시민단체협의회 대선공약 공동분석’ 등 각 신문들이 12월초를 전후로 공약검증 시리즈를 잇달아 내보냈으나 평가는 ‘외화내빈’으로 모아졌다. 일부 신문의 보도가 IMF충격파에 혼란상을 보이는가 하면 아이템 선정을 둘러싸고 편파성 시비에 휘말리는 등 잡음을 낳았기 때문이다. 15일까지 이루어진 신문의 공약검증 보도를 ‘검증’한다.

공약검증에 가장 적극적인 신문은 한겨레. 한겨레 신문은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 공약검증 보도를 하고 있다. 특히 동아일보, 조선일보가 각 정당의 공약에 대해 적극적인 평가를 내리지 않고 검증작업을 전문가에게 일임하는 데 반해 한겨레는 전문가 평가와 함께 기자의 적극적인 평가도 내리고 있다. 공약검증란과는 별도로 경제부기자 2인을 정치부로 특파해 일상적인 공약검증을 행하도록 하기도 해 공약검증에서 단연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현장의 목소리를 따로 편집, 해당 공약과 관련한 국민의 요구가 무엇인지 보여줌으로써 공약의 핵심 검증 사안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려 했다.

11월 19일부터 가장 먼저 정책검증 시리즈에 돌입한 동아일보는 기획의 짜임새가 돋보인다는 평을 받고 있다.

동아일보는 3당후보 공약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따로 편집해 정책을 일목요연하게 비교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다른 신문사들이 정책비교에서 대부분 무시하고 있는 ‘국민승리 21’측의 사안별 핵심 공약을 짧게나마 보도, 독자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있다.

그러나 공약의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한 점은 흠으로 지적되고 있다. ‘IMF 시대 농촌발전’의 경우 본기사에서는 농촌정책의 가장 큰 현안인 ‘농가부채 경감문제’에 대해 “주요 3당은 농가부채에서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해 놓고서도 전문가 진단에서는 이를 빠뜨렸다.

조선일보는 지난 10일부터 ‘대선공약 집중조명’이란 시리즈를 통해 각당의 대선공약을 검증하고 있으나 특정 정당을 겨냥한 ‘아이템 뽑기’로 편파적이라는 지적을 사고 있다.

조선일보는 각당의 대표적인 공약을 하나씩 뽑아 이에 대한 해당 정당의 설명과 다른 당의 평가, 그리고 전문가 의견을 싣고 있다. 한나라당의 경우 ‘사병 복무 단축’(10일)을, 국민회의는 ‘IMF재협상 발언’(11일)을 아이템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공약의 경우 유권자들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선심성 공약인데 반해 국민회의 공약은 최근 대선정국의 주요 쟁점으로 국민회의에 적지않은 타격을 가하는 아이템이다. 조선일보의 이같은 아이템 선정에 대해 언론계에서는 선정 기준이 모호할 뿐 아니라 특정 정당을 편들거나 흠집내려는 의도도 다분히 엿보인다고 지적하고 있다.

중앙일보의 ‘15대 대선 공약점검’은 전문기자 한 명을 활용, IMF협상 타결일인 3일 ‘3당 고용정책’을 시발점으로 4일 ‘재벌정책’ 5일 ‘IMF 충격에 대한 입장’ 등 IMF 충격에 따른 경제파장에 대한 기획을 잇따라 내놓아 순발력과 집중력을 과시했다. 다만 전문기자의 분석기사 하나만을 게재함으로써 읽히는 편집이 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은 ‘생색내기’에 그쳤다는 지적을 받았다. 3당의 공약 검증을 하루(11월 24일)에 4개지면에 걸쳐 털어버린 한국일보는 시민단체들과 공동으로 공약검증 작업을 해 전문성과 집중성을 함께 갖춘 기획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1회성 기획에 그쳐 아쉬움이 남았다.

경향도 4일부터 상중하로 나눠 ‘각당 공약 긴급점검’을 내보냈으나 단 3회로 공약을 검증하는 것은 무리여서 ‘성의 표시’에 그쳤다는 지적을 샀다.

이밖에 문화일보·세계일보는 각각 2, 5일부터 분야별 공약을 점검했으나 각당 공약을 ‘소개’하는 데 치우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민일보는 동아일보와 더불어 다른 언론사보다 빨리 대선공약 검증시리즈 ‘대선공약의 허와실’을 시작했으나 IMF구제금융으로 인해 일부 공약검증이 빗나가는 ‘불운’을 맛보기도 했다. ‘고용안정책’(11월 28일)과 같이 IMF체제로 검증 잣대가 바뀌어야 하는 사안을 그대로 내보냈기 때문.

물론 이는 현재 모든 공약검증 보도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민일보 김성진 정치부장은 “3당의 공약들이 IMF구제금융 이전에 내놓은 것들인데다 그후에도 각 정당에서 이를 수정해 내놓을 처지에 있지 못해 공약검증 그 자체가 난관에 봉착해 있다”고 토로했다.

한편, 공약검증보도를 했던 기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은 공약검증 보도의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점. 대선을 정책대결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공약검증 보도를 읽힐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일보의 한 기자는 편집의 문제를 제기했다. “가뜩이나 가독성이 떨어지는 데 3당 모두 ‘빌’공자 공약이라거나 ‘속빈 강정’ 이라는 등 3당 공약이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식으로 제목을 뽑아 놓으면 누군들 읽고 싶어 하겠느냐”며 3당의 공약차를 드러내는 제목뽑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상당수 신문의 공약검증 항목이 편중돼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수십 항목에 이르는 부문별 공약을 일일히 점검할 수 없는 현실적 조건에다가 시의성 있는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한다하더라도 IMF에만 초점을 맞춰 경제중심으로 공약검증을 국한하는 것은 부문별 유권자의 알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방송사

신문들이 잇따라 ‘공약검증’ 시리즈를 보도하고 있는 반면 방송뉴스에선 ‘공약’ 관련 기사조차 쉽게 찾아보기가 힘든 형편이다.

유일하게 KBS가 지난 11월 27일 보도제작프로그램 ‘목요리포트’와 9시 뉴스를 통해 공약검증보도를 내보내 겨우 체면치례를 했을 뿐이다. KBS뉴스는 지난 11월 17일 ‘유권자에게 바란다’를 시작으로 ‘기업살리기 처방’ ‘금융위기 해법’ ‘사교육비 대책은’ ‘첨단 산업 육성책’ ‘대량실업 막겠다’ 등 3당 대선후보의 공약검증 시리즈를 내보냈다. 그러나 KBS뉴스의 공약검증 시리즈도 12일까지 5가지 공약을 보도하는데 그치고 있는데다 이마저 각당의 공약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치고 전문가 의견조차 구체성이 없어 공약검증 보도로서는 ‘함량미달’이라는 지적을 사고 있다.

MBC는 11월 25일부터 각부서 차장급 기자로 구성된 공약검증 팀을 가동, 1주일에 한번씩 그 주에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들을 집중 분석하는 코너를 마련키로 발표하는 등 가장 부산하게 움직였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검증 시리즈를 전혀 진행하지 못하고 있어 변죽만 울렸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MBC에서 눈에 띨만한 공약검증 보도는 IMF지원에 대한 각 후보들의 입장 차이를 개념화해 선거감시연대회의로 부터 호평을 받았던 지난달 19일자 ‘경제처방 따로따로’였을 뿐이다.

SBS는 대선공약 검증팀도 꾸리지 않았으며, 공약 관련 보도 역시 화면에서 찾아보기 힘들어 방송 3사 가운데 가장 소홀한 태도를 보였다.

이같은 방송의 취약한 대선공약 검증 보도에 대해 MBC 대선공약 검증팀의 관계자는 “방송뉴스의 시간적 제약으로 신문들처럼 심층적으로 공약을 검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며 “뉴스가 아니라 시간이 충분한 보도제작 프로그램에서 다룰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방송뉴스들의 공약검증 보도 ‘부실’이나 ‘외면’이 ‘시간제약’이라는 해명으로는 납득되지 않는다는 게 언론계의 지적이다.

각당 대선후보들의 동정이나 정치 공방은 신문사 못지않게 상당시간을 할애 보도하면서도 ‘공약검증’에는 충분한 보도시간을 할애할 수 없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그간 보여준 방송 뉴스들의 ‘시청률’ 집착증에 연유한다고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