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중소기업을 담당해온 한국경제신문 이치구부장(45)은 요즘 IMF체제하에서 부도나는 회사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하루 80~1백개 회사가 부도나는데 그중 아는 사람들도 여럿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번주만해도 부도난 중소기업사장 4명이 다녀갔다.

‘하꼬방’ 시절부터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옆에서 보아온 사장들이 소주 마시며 울다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허탈하고 서럽기까지 하다. 더욱이 부도원인이 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인한 일시적인 자금난 때문이어서 더 그렇다.

무엇보다 이부장은 현정권이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대단한 것을 해준 것처럼 얘기할 때면 화가난다. 정부재정에서 중소기업분야 지원비는 겨우 4%, 일본의 10%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세금감면을 30가지나 해준다지만 이것도 총액한도라는 것이 있어서 실상은 겉보기하곤 영 다르다. 또 중소기업 공장 한개 지으려면 57개 관련법 중 아무리 피해나가도 최소한 3개법은 걸리게 마련이다.

그만큼 지원은 없고 제재만 심하다는 얘기다. 20년동안 이부장이 모은 중소기업대표이사 명함이 3천7백장에 이르지만, 이중 30%이상이 휴지조각이 됐다는 사실만봐도 현정부가 중소기업을 위해서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부장이 중소기업과 인연을 맺게 된것은 78년, 수습기자 꼬리표를 갓 떼고 중소기업중앙회 출입기자가 되면서 부터다. 대학시절부터 노동, 인권 등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이부장은 중소기업 담당을 자청했고, 당시만해도 기피부서였던 중소기업은 별 어려움 없이 이부장의 몫이 됐다.

중소기업은 지금까지도 기자들에겐 소위 물좋은(?) 출입처는 아니다. 물론 예년에 비해 인식이 많이 달라졌지만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 광고 등 신문에서 차지하는 대기업의 비중 때문에 중소기업은 지면에서도 찬밥신세가 되기 일쑤다.

또 무엇보다 취재하기가 힘들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숫자는 제조업 기준으로 13만 5천개. 대기업에 비하면 홍보마인드(?)도 형편없는, 그것도 대부분 시외에 공장을 두고 있는 중소기업을 맨발로 일일히 쫓아 다니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이부장은 중소기업을 찾아 시외로 나가지 않으면 오히려 답답함을 느낀다고 한다.

중소기업과 관련해 그가 낸 책만도 벌써 여러권이다. <전략이 있어야 기업이 산다>, <40인의 사장들>, <손바닥 한국경제> 등등. 올해만해도 20년동안 취재현장에서 만났던 수많은 중소기업사장 가운데 어려운 여건을 딛고 탄탄한 기업을 일으킨 중소기업사장들의 경험담을 담은 <중소기업인>, 사업선정부터 자금대출, 구매요령에 이르기까지 창업에 필요한 정보가 자세히 수록된 중소기업창업가이드 등 2권의 책을 냈다.

이부장은 이외에도 숭실대에서 ‘중소기업창업론’을 강의하고 있으며 생산성본부, 경영기술지도사회 등에서 창업 특강을 맡고 있다. 또 지난해에는 1년간 MBC라디오에서 ‘이치구의 기업현장 리포트’를 담당했으며, 얼마전까지 MBC TV ‘이치구의 창업정보’를 맡을 정도로 중소기업에 관한 그의 명성은 자자하다.

그러나 이부장이 20년 동안 줄곧 기자로서 중소기업과 연을 맺어왔던 것은 아니다. 이부장은 80년 언론자유를 외치다 당시 현대경제 수습8기 전원과 함께 해직됐고, 곧바로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87년 한경에 재입사하기전까지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금융자금 실태조사 및 창업지원법 제정에 관여한 7년간의 경험은 그를 중소기업전문기자로 만드는데 큰 몫을 하기도 했다.

“언론인으로서 중소기업육성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는 보람으로 살아왔다”는 이치구부장. 그의 보람이 결실을 맺을 때 우리 경제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란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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