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에서 8년 동안 두 전직 대통령의 말과 글을 다듬었던 강원국 전 청와대 비서관이 최순실씨 대통령 연설문 유출과 관련해 "한마디로 얘기하면 대통령이 보내주지 않으면 간 큰 비서실장 할아버지라도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강 전 비서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 임기 때 연설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했고, 노무현 대통령 때는 연설 비서관으로 재직했다.

두 전직 대통령 재임 시기 연설문을 책임졌던 자리에서 보면 최순실씨의 대통령 연설문 유출은 대통령의 직접 지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것이 강 전 비서관의 주장이다.

강 전 비서관은 2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대통령의 연설이기 때문에 일반 문건 유출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통령에 대한 정면 도전인데 대통령 지시 없이 대통령의 말을 어떤 의미로 사적일 수도 있는 건데 유출을 감행하겠느냐, 지시를 받지 않았겠느냐"라고 이같이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연설문 작성 시스템은 청와대 이지원상에서 연설비서관이 초고를 보고하고 거기에서 대통령이 직접 고치거나, 구두로 불러서 수정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뤄졌다.

중요한 연설문의 경우 청와대 비서실장을 대동해 독회를 하지만 대부분 대통령과 연설비서관이 직접 연설문을 작성하고 수정해 공유할 뿐 비서실장도 연설문을 받아보지 못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 직전 삼부 요인에게 수시간 전 미리 전달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지만 그것 역시 완성본을 가지고 예의상 전달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강 전 비서관은 내부에서 대통령의 연설문에 개입하는 문제도 두 전직 대통령의 경우 철저히 원칙을 지켰다고 설명했다.

강 전 비서관은 "두 대통령은 연설비서관의 일로 시작해서 최종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보호를 해줬다. 자신의 말이기 때문에 자기 선에서 낭독본으로 드리면 중간에 끼어드는 것은 막아줬다"며 "대통령 말에는 누구나 손을 대고 싶어한다. 부처에서 뭐 한 줄 민원이 있으면 예산을 따기 좋은 것이다. 연설비서관이 휘둘리면 대통령의 말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다. 내부라고 할지라도, 수석이라고 하더라도 공식적인 회의에서 발언은 할 수 있지만 연설문에 왈가왈부하고 빼고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만큼 대통령 연설문 작성은 대통령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에 내부에서도 철저하게 대통령과 연설비서관만 공유하는 비밀스런 작업으로 통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윤태영 전 연설기획비서관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문을 썼지만 부속실장으로 옮겨간 이후에는 절대 연설문에 손을 대지 못했다.

강 전 비서관은 "상황이 이런데도 밖으로 연설문을 내돌리고 의견을 구했다고 하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며 "외부에 완성된 연설문을 가지고 의견을 구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사전에 여론이라던지 의견을 두루 구하고 국민들이 어떤 얘기를 듣고 싶어하는지 수렴을 하는데 이번 사건은 (최씨가) 차후에 검사를 했던 것 아니냐"고 말했다.

강 전 비서관은 최종 연설문이 작성되는 시기까지 외부에 노출되는 경우가 없는 것이냐는 질문에 "연설문 작성 과정 중 어떤 내용이 최종본이 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밖으로 절대 나가면 안된다"고 말했다. 청와대 문건을 출력하게 되면 워터 마크가 찍히게 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출력을 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강 전 비서관은 "두 전직 대통령은 연설문을 마무리할 수 있는 역량이 되는 분이었다. 남이 손대는 것에 기대지 않았다. 의견을 구할 필요가 없었다. 준비가 안된 사람이 (외부에) 기웃거리는 것"이라며 "자기 선에서 완성할 수 있는 대통령으로 거기에 수정만 붙이면 되는 것이다. 머릿속에 다 있고 손만 필요했지만 머리가 없는 경우에는 머리를 빌려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경우 (연설문을)내돌리는 것이다. MB 시절 때도 이 사람 저 사람 써보라고 한 것도 자기 생각이 없는 것이다. 한번 (남이 잘 쓴 연설문을)골라보겠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강 전 비서관은 "다른 사람이 국정을 한 것이다.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대통령의 말에 손을 댔다면 국민을 향해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권력이 행사된 것이다. 국정 농단도 아니고 어이가 없는 일"이라고 성토했다.

강 전 비서관은 "조선일보가 밤의 대통령이라고 해서 논조를 통해 간접적으로 조정하고 국정에 개입하고 영향을 미친 것도 문제가 됐는데 이것은 더 심한 것"이라며 "말에 직접 손을 댄 것이다. 정책을 만들고 인사에 개입하는 수준이 아니라 대통령이 된 것이다. 말로 통치하는 것이 대통령"이라고 거듭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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