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공직선거법 및 직권남용 등의 위반 혐의를 모두 무죄 선고한 재판부에 대해 경악할 일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치권은 새누리당을 제외하고 모두 특검을 요구했으며, 시민사회는 곧바로 이날 저녁 촛불집회를 통해 사법부를 규탄할 계획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는 6일 오후 김 전 청장에 대해 “검사의 논증이 단순한 의혹과 추측을 넘어 법관에게 합리적인 의심이 없도록 유죄를 도출하는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며 “검찰이 제출한 증거나 증인들의 증언 등 간접사실로 김 전 청장이 실체를 은폐하고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허위수사발표를 지시했다고 보기엔 부족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권은희 전 수사과장의 증언에 대해서도 “진술의 상당 부분이 다른 증인의 진술과 배치되고 오히려 권 증인의 증언이 객관적 사실관계와 어긋나는 것이 많아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폄훼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야권에서는 성토의 목소리가 쏟아졌으며 한 목소리로 특검을 요구했다. 박광온 민주당 대변인은 6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과거 부끄러운 판결만큼 법과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정치적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진실을 밝히려던 검찰 총수를 찍어내기 하고, 수사팀장을 징계해서 사실상 검찰 수사를 무력화시킨 박근혜 정부의 부단한 옥죄기의 결과”라며 특히 “정권의 수사방해로 검찰이 공소유지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개입의 실체가 명백함에도 김 전 청장에게 면죄부가 주어진 것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홍성규 통합진보당 대변인도 “그동안 깊은 의혹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었던 대한민국 사법부의 수준과 실체가 설마 이 정도였나”라며 “막상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이라고 성토했다. 홍 대변인은 “가장 기본적인 국민의 법감정, 상식마저 무참하게 짓밟고 오직 불의한 권력 앞에서만 충성을 맹세한 사법부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사회의 근간을 지탱하는 ‘법치주의’에 대한 기본 신뢰가 땅바닥에 떨어졌다”고 비판했다.

홍 대변인은 “이제 이 박근혜 독재정권 아래서 누가 감히 ‘정의’를, ‘법 앞의 평등함’을 얘기할 수 있겠나”라며 “평생을 민주화운동에 헌신해 오신 박창신 원로신부를 ‘종북신부’라 조롱하고 공격하면서 오히려 권력의 ‘종북몰이’ 실체가 드러났던 것처럼, 오늘 ‘김용판 무죄’ 선고로 대한민국 사법부의 실체가 그 맨 얼굴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사법부 역시 끝내 국민의 무거운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도 그는 전했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이치열
 
이정미 정의당 대변인도 “대한민국의 정의를 말살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충격적인 판결”이라며 “야당과 시민사회 등이 줄기차게 특검을 요구할 때 사법부의 판단을 지켜보자며 끝끝내 거부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속내가 바로 이것이었던가”라고 반문했다.

이 대변인은 김용판 전 청장의 수사 외압에 대해 “재판 과정에서도 당시 수사관들의 대화 내용 등이 담긴 서울청 증거분석실 내부의 CCTV 녹화 장면 등 수사외압을 입증할만한 증거들이 충분히 제출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사법부의 증거부족 판결은 그 어떤 이유도 명분도 없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국민의 상식과 법리에 정면으로 역행하고 정권의 요구에 끼워맞춘 전형적인 정치판결로, 사법부는 커다란 국민적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개별 국회의원들의 분노도 쏟아졌다. 정세균 국정원특위 위원장(민주당)은 자신의 트위터에 “김용판 같은 자가 어떻게 무죄란 말입니까”라며 “전 국민이 김용판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다 알고 있는데 이런 판결이 말이 됩니까?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썼다. 정 위원장은 “TV토론이 끝난 직후 한 밤중에 서울경찰청이 서둘러 발표한 조사결과가 이미 거짓으로 판명이 났고, 권은희 과장의 증언 또한 모든 국민이 들어 알고 있다”며 “관건부정선거로 당선이 되었으니 박근혜정권은 태생부터 비정상”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정 위원장은 “비정상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이번 판결로 다시 한 번 입증됐다”며 “승자의 법은 김용판을 무죄 판결했으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국민에게 김용판은 죄인”이라고 강도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도 트위터에 “국정원 댓글의 은폐 의사가 없었다(면) 그럼 왜 경찰이 분석결과를 파쇄하느냐”며 “CCTV로 다 밝혀진 사실, 법원이 눈감아도 국민은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경협 민주당 의원도 “채동욱 찍어내고 검찰 장악 완료한 박 정권, 댓글수사팀 해체로 공소유지 의지도 없앴다”며 “김용판무죄는 예정된 수순, 원세훈은 훈장받을듯. 대선특검없이 선거는 해보나마나, 민주주의는 사망했습니다”라고 개탄했다.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이치열
 
송호창 무소속 의원도 “그나마 수사팀까지 다 교체했으니 무죄는 당연한 결과”라며 “대선개입 특검의 필요성은 이번 판결로 명확해졌다”고 평가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정말 미치겠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까”라며 “속병나고 골병드는 대한민국의 정의와 진실이 몸서리치게 서럽습니다. 아, 대한민국!”이라고 썼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도 “너무 충격이커서 한동안 하늘을 바라봤다”며 “대한민국이 죽어가고 있군요. 권은희과장 진술이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재판부, 사법부도 유신사법부로”라고 썼다. 박범계 의원은 “법은 상식과 법감정 위에 있는 것인가”라며 “부끄럽다. 내가 법조인이라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책임론도 나왔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긴급 최고위원회를 방금 했으면 이어서 당연히 의원총회를 열어 오늘 민주당의 행보에 대한 결론을 내야지 왜 내일로 미루느냐”며 “또한 그동안 특검 요구도 왜 더 강하게 못했느냐”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특검에 직을 걸겠다고 대표가 공언했으면 투쟁을 계속했어야 했다”며 “이미 윤석열 팀장이 하차했을 때부터 검찰의 공소유지 의지가 없음이 나타났다면 재판 진행과정을 계속 주시했어야지, 한 번도 논한 적 없다가 무죄 선고 나서야 ‘특검’ 얘기를 하느냐”고 질타했다.

이에 반해 새누리당은 당연한 결과라면서도 표정관리에 나섰다. 강은희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새누리당은 재판부의 판결을 존중하며 당연한 결과로 판단하고 있다”며 “애초부터 무리한 기소였으며 야권에서는 더 이상 이를 정치공세화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트위터에 “김용판 무죄 났다죠”라며 “내 이럴 줄 알았어요. 사필귀정입니다”라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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