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대북특사단과 만찬에서 스스로 자신을 ‘땅딸보’라고 지칭하는 농담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라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동아일보는 9일자 신문에서 “김정은은 특사단과의 만찬에서 스스로를 ‘땅딸보’라고 칭하며 농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김정은에게 ‘나는 그를 땅딸보(short and fat)라 부르지 않았다’고 표현한 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을 또 ‘꼬마 로켓맨’ ‘미치광이(mad man)’라고 한 바 있다”고 보도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만찬에서 오간 가벼운 이야기는 참석했던 다섯분 특사만 알고 있다”며 동아일보 보도 내용은 오보라고 반박했다. 또한 “어렵게 만들어진 한반도 긴장완화 분위기를 해치는 보도를 삼가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동아일보 보도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

대북특사단은 지난 5일과 6일 김정은 위원장을 접견하고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한 6개항 언론발표문을 도출해냈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대화 의지를 확인하는 등 큰 성과를 남겼다. 실제 9일 단장인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예방하고 김정은 위원장 메시지를 전달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밝히면서 북미정상회담 성사를 눈 앞에 두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 북측 인사 방남부터 시작해 특사단 방북, 그리고 북미대화 조율까지 순탄하게 진행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우리 정부가 주도한 평화외교의 성과로 인정하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

그런데 국내 상황이 녹록치 않다. 대북특사단이 돌아와 지난 6일 저녁 언론발표문 6개항을 발표했지만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 파문으로 빛이 바랐다. 이어 7일에도 문재인 대통령과 정당 대표 회동 전 사전환담 대화에서 홍준표 대표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행 폭로 배후설을 농담조로 얘기하면서 파장이 일었다. 이날 청와대는 특사단 파견으로 얻은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를 열려고 했지만 홍준표 대표가 돌출 발언을 내놓고 문재인 대통령과 언쟁을 벌이는 모습까지 연출하면서 진땀을 빼야 했다. 결국 7일에도 특사단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를 갖지 못했다. 정작 특사단이 가지고 온 ‘열매’는 무르익었는데 딸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그리고 8일 사흘 만에 청와대는 특사단의 김정은 위원장 접견 뒷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통해 이번 특사단의 성과를 알리려고 했다. 속전속결로 6개항이 도출된 과정, 접견 스케치 모습과 만찬에서 나온 음식 등이 주제로 올랐다.

이런 가운데 문제가 된 동아일보 보도와 관련된 내용이 나왔다.

“김정은 위원장이 국내 언론이나 해외 언론을 통해서 보도된 자신에 대한 평가나 알려진 이미지 등에 아주 잘 알고 있다. 그에 대한 평가나 이미지에 대해서 무겁지 않은 농담을 섞어서 여유있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가 특사단과의 만찬에서 김 위원장이 농담을 했다고 전한 것은 가벼운 얘기를 주고 받을 정도로 남북관계의 훈풍이 불고 있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 위원장도 미디어의 평가를 예의주시할 정도로 남북관계나 북미관계에 있어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의 말에 기자들은 구체적인 농담의 소재를 캐물었다.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지칭하는 별칭을 언급하면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에 청와대 관계자는 “(무겁지 않은 농담이라는 말이)이게 제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했지만 언론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농담인가’라며 질문을 재차 던졌고, 이 관계자는 “특사단 관계자만이 아는 내용”이라고 선을 그었다.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김 위원장의 농담 얘기를 꺼냈지만 언론의 관심은 김정은 위원장의 ‘워딩’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었는지에 쏠렸다.

▲ 지난 5일 노동당 본부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접견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 지난 5일 노동당 본부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접견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이런 가운데 동아일보는 김 위원장이 스스로 자신을 ‘땅딸보’라고 지칭했다고 확정해 보도한 것이다.

청와대 입장에서 보면 특사단의 뒷얘기를 통해 6개항 언론발표문이 도출하기까지 배경 설명을 돕고, 성과를 알리려 했지만 의도치 않게 농담의 소재만 부각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김의겸 대변인이 밝힌 것처럼 실제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을 ‘땅딸보’를 지칭하는 농담을 했는 지는 만찬에 참석한 5명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사실 여부도 불확실하다. 청와대가 동아일보 보도에 발끈한 이유다.

이날 언론들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북미대화를 설득할 내용으로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석방 문제가 포함돼 있는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졌다. 이에 청와대 관계자는 “여러분들은 왜 스끼다시(곁들이)에 관심이 많나. 본체는 한반도 비핵화 아니냐”고 이례적으로 반문하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만큼 미묘하기 때문에 그렇다. 미묘하고 조심스럽고, 지금 불면 날아갈새라, 쥐면 터질 것 같고, 그런 조심스런 분위기”라며 출처가 불확실한 내용의 보도에 대해 신중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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