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를 출입하는 A기자는 최근 놀랄만한 일을 겪었다. A기자는 점심을 먹기 위해 동료기자들과 함께 청와대 인근 삼청동 소재 한 중국집을 찾았다. 볶음밥과 탕수육을 먹고 나서 계산을 하려는 찰나에 동료 기자가 말했다.

“청와대 출입 중앙기자단 이름으로 장부 달면 돼.”

A기자는 동료기자가 장부에 사인을 하는 것을 지켜봤다. A기자는 ‘이게 무슨 돈으로 먹는 거지’라며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넘어갔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일부 기자들이 ‘관행’처럼 장부를 달고 밥을 먹고 있다. 장부에 기록된 식사 비용 출처도 불명확하다. 청와대는 기자들이 내고 있는 공동취재편의비용으로 쓰고 있다고 했지만 왜 기자들의 개인 식사 비용을 공동취재편의비용에서 충당하는지에 대한 해명도 군색하다.

청와대 인근 중국집 사장 B씨에 따르면 청와대 출입 일부 기자들은 직접 식당을 찾거나 청와대 기자실로 배달을 시켜 식사를 하고 장부에 비용을 기재한다. 그리고 청와대 행정실이 한 달에 한번 식당별로 장부에 적힌 비용을 계산한다. B씨는 “월로 치면 수십만 원 선”이라며 “장부에 이름을 달면 월말에 일괄 계산해서 직접 청와대 행정실로 가면 계산을 해준다”고 말했다.

청와대 인근 또다른 순댓국 식당 사장은 “이전 정부 때 저희도 장부가 있었는데 액수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정권이 바뀌고 나서 관뒀다”며 “청와대 인근 다른 식당들은 장부 장사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집과 같이 장부를 달고 기자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은 청와대 인근에 3곳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장부를 써봤다는 C기자는 “가끔씩 식당을 이용해서 장부에 달아놓긴 했다”며 “과거 관행이 이어져온 것 같은데, 알기로는 매체별로 공동취재편의비용으로 달마다 내는 돈을 가지고 청와대 행정실에서 일괄 계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매체별로 월 5만원의 돈을 내고 있다. 커피 등 음료수, 식수, 신문대금 등이 공동취재편의비용 명목이다. 하지만 공동취재편의비용 명목  중 기자들의 식사 비용으로 쓰일 수 있다고 공지된 바는 없다.

풀 중앙 기자단 임원을 하고 있는 D기자는 “밖에서 장부 달아서 먹고 있다는 얘기는 저도 처음 들었다. 청와대 출입기자 중 그런 비양심적인 사람들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D기자는 “1층 기자실(중앙 풀 기자단)에서 야근이나 휴일 때 배달을 시켜먹고 난 뒤 기자실에서도 장부를 기록해두고는 있다”고 말했다.

D기자는 장부를 달고 시켜먹는 배달 음식의 출처와 관련해선 “그 내용은 잘 모른다. 관례에 맡겨놓은 것”이라며 “자세한 내용은 행정실에 문의해달라”고 말했다.

청와대 쪽 설명도 부족하다. 청와대 춘추관은 이 같은 관행에 대해 기자단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 춘추관에 전달한 공동취재편의비용이 이렇게 쓰이는 것은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에 “식당에서 직접 밥을 먹고 장부를 쓰고 계산하는 것은 처음 듣는 일이다. 기자단과 논의해 그런 일이 있다면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면서도 “월마다 매체가 내는 5만원 비용은 기자단별(풀 중앙, 지방, 신규매체 기자단 등)로 수입을 잡고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신문대금이나 음료와 같은 비용은 공동취재편의비용으로 쓰이고 있는데 일부 기자들의 음식 비용만은 각 기자실마다 수입을 책정해 지출하고 있다는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다.

E기자는 “이런 일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도 한번 장부에 이름 쓰고 밥을 한번 먹어보겠다”며 오랜 관행을 꼬집었다.

F기자는 “편법인 것 같다. 공동취재편의비용으로 쓰인다는데 이런 식으로 돈이 나가는지 몰랐다”며 “일부 기자들의 오랜 관행이 문제인 것 같다. 돈 출처도 문제지만 이런 관행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G기자는 “이전 정권부터 그런 관행이 있는 건 공공연한 내용이었다”면서 “그런데 정권이 교체되고 나서도 이런 관행이 유지되고 있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장면. 사진=KTV 생중계 화면 갈무리.
▲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장면. 사진=KTV 생중계 화면 갈무리.

청와대는 이 같은 관행에 대해 기자단 내부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지만 장부에 쓰여 있는 액수를 계산하는 주체가 청와대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청와대가 굳이 매체별로 공동취재편의비용을 걷어 관리할 필요가 있느냐는 물음이 나올 수 있다. 기자단 내부의 문제라고 한발 뒤로 빼는 모습도 기자 사이 불화만 조장할 뿐이다.

공동취재편의비용에서 쓰이고 있다면 돈을 관리하고 있는 청와대도 오랜 관행에 문제가 없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모든 기자들에게 공지하지 않은 것 자체로 떳떳하지 못한 관행을 눈 감고 지나친 게 아니냐는 지적에도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아주 작은 관행이라 하더라도 개선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기조다. 작은 관행이 쌓이다 보면 적폐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춘추관은 기자들이 걷은 회비의 관리를 대행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장부에 쓰여 있는 액수를 계산하는 주체는 기자단”이라면서 “춘추관이 기자들의 식비를 지불해주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기사 보강 : 16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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