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어통역기관 ‘손말이음센터’(한국정보화진흥원 산하) 중계사 11명이 새해부터 일자리를 잃었다. 전체 전환절차 응시 직원의 약 40%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이 3차에 걸친 '무기계약직 시험'을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탈락했다. 면접만 2차례였고 1차는 통역 전문성과 직접 관련 없는 시험이었다. 5년차, 8년차, 11년차 장기근속자들이 우수수 해고됐다.

2#. 전국(인천 제외) 공항 소방대원도 같은 상황이다. 250명 중 89명(35.6%)이 탈락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15년 일한 한국공항공사 용역노동자들이다. “공항에서 국민 안전을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다. 누구를 위한 시험이냐? 재직자를 내보내는 일자리 창출이냐?” 한 소방대원이 지난 28일 한국공항공사를 규탄하는 청와대 청원을 올렸다.

▲ 자료사진. ⓒpixabay.
▲ 자료사진. ⓒpixabay.

공공기관들이 정규직화 과정에서 기존 인력 배려없는 자체 평가를 일방 강행함에 따라 파견·용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일자리를 잃고 있다. 현장에선 “정규직화 취지에 따라 현 근로자의 전환을 원칙으로 하는 정부 가이드라인에 정면 위배된다”는 비난이 거세다.

황소라 공공운수노조 손말이음센터 지회장은 평가 과정도 지나치게 일방적이었다 밝혔다. 1차 시험 안내는 지난 12월19일 시험 시작일 직전인 18일 통보됐다. 3차 최종 면접은 1월1일 정규직 전환 마감을 5일 앞둔 12월27일 이뤄졌고 결과는 28일 문자로 개별통보됐다.

평가기준도 무성의했다. 손말이음센터는 언어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전화 통화를 돕는 수어 통역서비스 기관이다. 그런데 ‘공통역량평가’인 1차 시험은 타자속도만 봤다. 300을 넘긴 타수 실적을 캡쳐해 보내야했다. 400 이상 기록을 관리자가 확인했으나 제대로 캡쳐를 못한 직원도 탈락했다. 이들은 2·3차 면접 기준을 아직도 모른다.

8년차 직원 황 지회장은 해고 통보를 받은 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표창 수상자로 선정됐다. 12월28일 오전 9시 ‘센터 발전에 큰 공헌을 세웠다’며 수상 사실을 문자로 받은 후, 오후 5시 해고 문자를 받았다.

▲ KT새노조 손말이음센터지회(공공운수노조 산하)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한국정보화진흥원 정규직화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말이음센터지회
▲ KT새노조 손말이음센터지회(공공운수노조 산하)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한국정보화진흥원 정규직화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말이음센터지회
▲ 한 한국공항공사 소방대원이 지난달 28일 공사의 정규직화를 비판하는 청와대 청원글을 올렸다.
▲ 한 한국공항공사 소방대원이 지난달 28일 공사의 정규직화를 비판하는 청와대 청원글을 올렸다.

마땅한 구제 절차도 없다. 한국공항공사는 지난 7월 ‘공개채용’에 합의해준 소방대원 비정규직에 세부안은 추후 논의하자고 했다. 논의는 없었고, 강행된 채용안에 구제절차는 없었다. 대원들은 일을 하면서 23일 간 NCS(국가직무능력표준), 인적성검사 시험 공부를 했다. 울산공항 소방대 24명 중 14명(58.3%), 여수공항은 26명 중 13명(50%), 제주공항은 48명 중 21명(43.8%)이 떨어졌다.

기관은 공정성을 이유로 들지만 방식은 열려있다. 인천공항공사가 예다. 인천공항 소방대원 214명은 3급 이상에 한해 제한 경쟁채용을 거치고 그 이하는 직접고용으로 승계된다. ‘제한 경쟁’은 탈락자에 대한 구제절차가 있단 뜻이다. 비정규직 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는 경쟁에서 탈락해도 추후 설립될 자회사로 고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합의를 이뤘다.

차이는 비정규직 노동 가치에 대한 인식이다. 한재영 인천공항지역지부 대변인은 “그동안 간접고용의 열악한 조건에도 문제없이 직무를 수행해온 비정규직 노동자가 탈락자 없이 고용승계 되는 게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의 원칙”이라며 “인천공항처럼 해고자를 막는 대안이 분명 있음에도 한국공항공사, 손말이음센터 등은 정부 정책 취지에 역행하는 정규직화를 한다”고 지적했다.

황소라 지회장도 “지난 13년간 손말이음센터 운영을 본다면 중계사들은 자제평가를 거칠 필요가 없었고, 평가과정도 불투명한데다 중계사에게 맞지 않는 테스트를 했다”며 “십수년 공공기관이 저지른 외주화 잘못은 생각 않고 ‘니가 부족해서’란 말만 하며 책임을 비정규직에 전가한다”고 말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이와 관련 지난달 31일 해명자료를 내 “이슈가 됐던 채용비리를 예방하기 위해 모든 분야에 3단계의 전형 절차를 뒀고 수화통역사 또한 역량평가, 전문가 평가, 임직원 면접 등을 통해 최대한 객관적인 전형이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한국정보화진흥원 무기계약직 합격률은 △수어중계사 62.1%(응시 29명 중 18명) △행정직 39.2%(28명 중 11명) △전산직 47.8%(23명 중 1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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