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란 선택된 사람들을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했다. 사전적으로 엘리트는 다양한 사회 분야에서 뛰어난 역량을 인정받거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엘리트는 ‘선택받지 못한 자’, ‘대중’을 지도한다는 뜻이 포함돼 있어 상당히 위험한 말이기도 하다. 이 해묵은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은 지난 8일자 조선일보의 “경찰대 출신·원자력 학계… 엘리트면 모두 적폐인가?”란 기사 때문이다. “엘리트주의가 사라진다”는 부제까지 달린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어제의 엘리트가 오늘의 적폐”라며, 수십 년 동안 키워진 원자력 엘리트를 무조건 적폐 대상으로 보지 말라고 주장한다.

엘리트주의를 청산해야 한다는 기사는 많이 봤지만, 이처럼 정반대 기사는 좀 낯설다. 하지만 사석에서 이와 비슷한 불만을 토로하는 원자력계 인사들을 많이 봤다. 사실 현재 원자력계 주류를 이루는 이들은 엘리트로 키워진 이들이다. 원자력공학과(원자핵공학과)는 서울대에서도 학력고사 최상위권 학과였다. 한수원으로 나눠지기 전 한국전력은 그 때나 지금이나 대학생이 취업을 원하는 최상위권 공기업이었다. 한국전력이 만든 수도공고는 등록금 면제, 전원 기숙사로 웬만한 인문계 고등학교 부럽지 않은 명문 고등학교였다. 수도공고 출신은 모두 한국전력에 취직했고, 지금도 한국전력과 한수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당시 핵발전소 건설과 운영은 대표적인 국책사업이었고,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특혜를 통해 일이 진행됐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현재 국민에게 핵발전소는 더 이상의 영광스런 과거와 거리가 멀다. 이와 같은 변화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다. 탈핵운동가만의 노력도 아니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나 경주 지진 같은 외적 요인도 있었지만, 수많은 원자력계 인사가 구속된 한수원 납품비리와 부실공사, 사고 은폐 같은 게 더 큰 역할을 했다. 지금도 영광 3,4호기에선 건설 당시 격납건물 콘크리트 부실시공 사실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부실과 비리가 밝혀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 조선일보 2018년 9월10일자 B3면
▲ 조선일보 2018년 9월10일자 B3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민의식에 쌓인 엘리트가 아니라, 원칙을 지키며 묵묵히 일하는 진정한 전문가들이다. 과거 영광에 묶여 전폭적 지원과 특권만을 요구한다면 국민은 더욱 원자력계와 멀어질 것이다. 조선일보 기사에서 한 원자력계 교수는 그간 비리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하고 자정노력을 해왔다”고 말했다.

안타깝지만 나는 그간 핵산업계나 원자력 관련 학회가 국민에게 머리 숙이고 사과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오히려 “괜찮다”,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변명이나 “핵발전소 건설하라”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발언만 들었다. 심지어 부실공사로 최근 핵발전소 가동률이 떨어진 것이 탈원전 정책 탓이라며, 자신들 과오에 반성은커녕 정부 탓만 계속하고 있기도 하다. 

▲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과거의 영광만 부르짖는 엘리트 집단은 없어져야 할 적폐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 전문가다. 자신의 이해관계와 상반되더라도 국민의 안전과 이익을 먼저 고민하는 진정한 전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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