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으로부터 보고받은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8일 발표했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각종 증거가 누락되고 지연 제출된 배경에 국가정보원의 의도적 은폐행위가 있었다고 의심할만하며, 검사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지위와 상황에 있었으나 적정한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지 않아 공익의 대표자로서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해야 할 검사의 의무를 방기했다. 검사가 증거조작 사실을 알면서 묵인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에 검찰의 잘못이 있다며 △유우성 및 유가려에 대한 검찰총장의 진정성 있는 사과 △국정원 대공수사 및 탈북민 조사과정에서 인권침해 방지 방안 마련 등을 권고했다. 하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할 곳은 검찰만이 아니다. 9일자 종합일간지에서 검찰과거사위원회 발표내용을 전한 곳은 경향신문과 한겨레뿐이었다. 수년 전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몰았던 보수신문은 침묵했다. 여기서는 특히 동아일보의 침묵에 주목해본다.

유우성씨와 국가정보원. ⓒ연합뉴스
유우성씨와 국가정보원. ⓒ연합뉴스
동아일보 인터뷰에 수고비 줬던 국정원

“김아무개 여인에게 지급된 돈은 법무부에서 1800만원, 국정원이 200만원 지급한 겁니다. 200만원은 동아일보 인터뷰 하면서 (김 여인에게) 수고비로 준 것 같습니다.”(윤웅걸 서울중앙지검 2차장)

“신문 인터뷰를 했는데, 국정원에서 왜 수고비를 지급하죠?”(서울중앙지검 출입기자)

“그건 저도 알 수가….”(윤웅걸 2차장)

2014년 11월17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관계자와 출입기자들 사이에 오간 대화 내용이다.

동아일보는 2014년 2월24일자에서 유씨를 간첩이라고 단정적으로 지칭한 최초 신고자 김미영(가명)씨의 주장을 담은 “유씨 아버지가 ‘아들 北보위부 일 한다’ 말해”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동아일보는 탈북자 김씨를 유씨 사건의 최초 신고자라 소개하며 “(유씨의) 아버지가 어느 날 아들이 회령시 보위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김씨 발언을 보도했다. 1심 형사재판에서 유씨가 간첩혐의 무죄를 선고받은 뒤 등장한 보도였기 때문에 파장은 컸다. 당시 검찰과 국정원은 유씨의 간첩혐의 공소 사실을 유지하기 어려웠지만 김씨의 증언이 언론에 등장하자 국면전환의 기회를 얻었다.

당시 김씨 인터뷰에는 국정원이 개입되어 있었다. 김씨의 전 남편 A씨는 법정에서 김씨가 유우성씨에게 불리한 허위 증언을 했고 국정원으로부터 수천만 원의 돈을 받았다고 주장했으며 국정원이 동아일보와의 인터뷰까지 주선했다고 폭로했다. 앞서 김씨는 2013년 3월14일 검찰에 출석해 “유진룡(유우성 아버지)이 아파트 근처에서 ‘아들이 회령시 보위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국정원은 김씨에게 ‘유씨가 보위부에서 일했다’는 법정 증언을 하기 직전인 2013년 6월 800만원을 입금했고, 김씨가 증인으로 출석한 후 그해 7월 또다시 1000만원을 지급했다.

탈북자 A씨는 당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유씨의 아버지와 동거할 때 쫓겨난 것에 대해 자기한테 피해를 줬으니까 한국에서 유씨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고 했고, 유씨가 간첩인지도 모르고 (보위부에서 일했다고) 증언을 만든 것”이라며 “나는 거짓말인 것을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김씨에게 법정에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국정원에서 나를 설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김미영씨는 동아일보 인터뷰를 마치고 ‘법정에서 이미 증언을 한 상황에서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고 말했다. 며칠 후 국정원 직원들이 A씨와 김씨를 충북의 한 식당에서 만나 200만원을 줬다. A씨는 “김씨가 언론사에 요청을 한 적도 없고 국정원이 인터뷰를 다 잡아줬다. 인터뷰 대가가 아니면 국정원이 돈을 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2014년 2월 서울중앙지법에서 민변 김용민 변호사(왼쪽)가 무죄를 선고받은 유우성(가운데)씨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증거가 위조된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4년 2월 서울중앙지법에서 민변 김용민 변호사(왼쪽)가 무죄를 선고받은 유우성(가운데)씨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증거가 위조된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유씨를 변호한 김용민 변호사는 “국가기관이 특정 언론사에 정보를 제공하고 자기네 입장을 보도하도록 하는 것은 정치적 행위”라며 “동아일보 역시 보도의 중립성을 위반했다. 제보를 받은 것이라고 해도 확인 절차를 거치고 보도로 인해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대방에 대한 반론권을 보장해야 하는데 확인 절차도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김미영씨와 접촉한 경위를 묻자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인터뷰 과정을 공개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받아쓰기’ 언론은 간첩조작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있나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은 서울시공무원으로 재직했던 탈북자 유우성씨가 대한민국에 정착한 후 중국과 북한을 드나들며 북한 보위부에 탈북자에 관한 정보를 전달했다는 간첩혐의로 구속 기소된 사건이다. 당시 보수신문은 국가정보원이 원하는 대로 기사를 써냈다.

대검 조사단은 이번 조사에서 검찰이 유우성씨를 기소할 당시 증거로 신청했던 탈북민의 진술서와 관련해 “이 사건에서 국정원 수사에 협조했던 탈북민들은 유우성이 재북 화교로서 경제적 어려움이 없음에도 귀순한 것으로 보아 보위부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는 등의 추측성 진술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설명한 뒤 “이에 더해 한 탈북민이 법정증언의 대가로 국정원으로부터 비공식적인 돈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대검 조사단은 또한 “유우성이 귀순한 이후 북한에서 유우성을 목격했다고 진술한 자들이 국가보안유공자로서 공식적으로 상금을 지급받은 사실이 법무부 자료를 통해 확인됐다”며 “국정원이 비공식적으로 지급하는 돈은 말할 나위도 없고 공식적 절차를 거쳐 지급하는 국가보안유공자 상금의 경우도 심사에서 국정원의 의사가 전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탈북민들로 하여금 수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술하게끔 유도하는 회유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 유우성씨. ⓒ연합뉴스
▲ 유우성씨. ⓒ연합뉴스
이에 따라 대검 조사단은 “탈북민들이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는 현실에서 진술의 대가로 금전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전반적으로 탈북민 진술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결론 냈다.

2017년 재판부는 유우성씨가 동아일보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민사소송과 관련해 동아일보가 유씨에게 정정보도와 함께 1000만 원 손해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인용보도라는 이유만으로 언론사가 언론중재법 등이 정하는 언론의 공적‧사회적 책임으로부터 면제된다고 할 수 없고 형사판결로 간첩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가 선고된 상태임에도 정반대로 원고를 간첩이라고 단정적으로 지칭하거나 간첩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는 김씨의 발언 등을 그대로 보도한 점”을 문제로 꼽았다.

동아일보는 2015년 대법원에서 유 씨가 최종적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이후에도 침묵하다가 2017년 3월6일자 지면에 2014년 2월 기사와 관련 “사실 확인 결과, 유우성이 간첩행위를 하였다는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고, 최종적으로 간첩 혐의에 대하여는 무죄가 확정되었으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라는 정정보도문을 냈다. 정말 짧았다. 

▲ 2017년 3월6일자 동아일보 지면.
▲ 2017년 3월6일자 동아일보 지면.
대검 조사단은 “이 사건 증거조작에 가담한 사람들에게 형법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상 날조죄를 적용해 기소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검증 대신 무비판적으로 받아쓰기만 했던 당시 언론은 간첩조작사건의 날조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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