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8일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장 퇴진 운동 등의 내용이 담긴 더불어민주당 비공개 검토 보고서를 공개한 후 자유한국당은 ‘경악할 수준의 방송장악 문건’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보고서 내용을 보면 이미 정부·여당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내용이거나 KBS·MBC 양 언론노동조합, 언론·시민단체에서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일찍부터 추진·계획했던 일들이다. 민주당이 지난달 말 워크숍 이후 ‘방송장악’을 주도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보기엔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선일보는 이날 ”민주당이 KBS·MBC 등 공영방송을 ‘언론 적폐’로 규정하고 사장과 이사진 퇴진을 위한 촛불 집회 등 시민단체 중심의 범국민적 운동을 추진하자는 내부 문건을 만든 것으로 확인됐다“며 ”해당 문건은 당 전문위원실이 만든 것으로 지난달 25일 민주당 의원 워크숍에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의원들이 공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8일자 5면.
조선일보 8일자 5면.
조선일보가 ‘KBS·MBC 사장 퇴진 로드맵’이라고 규정한 문건에는 △MB 비판 영화인 ‘공범자들’ 단체 관람 △MBC 김장겸, KBS 고대영 사장 발언 즉각 대응 △당 적폐청산위 활동 최우선 과제로 추진 △방송사 구성원 중심의 사장 퇴진 운동 전개 △시민사회단체 퇴진운동 전개, 촛불집회 검토 △야당 측 이사들 퇴출 △감사원 사장 비리 ‘국민감사청구’ △방송통신위원회 활용해 사장 경영 비리 조사 △방송 재허가 통해 문책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측은 “해당 문건은 관련 실무자가 의원과 논의하기 위해 워크숍 준비용으로 만든 것일 뿐”이라며 “워크숍에서도 해당 문건의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고, 당시 큰 쟁점이었던 방송법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중심으로 논의됐다”고 밝혔다.

강훈식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당 지도부에 보고되거나 전달되지도 않은 자료”라며 “더욱이 보도된 내용이 당의 입장도 아니어서 문건의 내용대로 주요 과제를 우리 당이 실행하고 있다는 것은 과장된 억측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강 대변인은 “실무자 개인의 의견인 이번 문건을 무기로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우리 당의 방송 개혁 노력을 ‘방송장악 음모’ 등으로 호도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선일보는 문건 내용 9가지 계획 중 6가지는 이미 완료됐거나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 적폐청산위에서 다루는 언론적폐 청산 과제는 민주당 대선 공약이었고, 영화 ‘공범자들’은 MBC 전·현직 경영진이 영화 상영을 막기 위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했다가 법원에서 기각되자 지난달 17일에야 개봉됐다.

KBS·MBC 구성원들이 사장 퇴진 운동을 전개한 건 현 고대영·김장겸 사장이 취임할 때부터 이미 자발적으로 진행됐으며, 민주당 지도부는 KBS·MBC 구성원들의 ‘공영방송 정상화’ 요구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을 뿐 두 사장의 발언에 ‘즉각 대응’한 적도 없다.

▲ 지난달 25일 저녁에 열린 ‘돌아와요 마봉춘·고봉순(돌마고) 불금파티’에서 언론인들과 시민들이 고대영 KBS 사장, 김장겸 MBC 사장 퇴진을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지난달 25일 저녁에 열린 ‘돌아와요 마봉춘·고봉순(돌마고) 불금파티’에서 언론인들과 시민들이 고대영 KBS 사장, 김장겸 MBC 사장 퇴진을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지난 7월12일 “공영방송 KBS·MBC를 정상화하기 위해 국민이 나서야 한다”며 전국 200여 언론·시민사회단체들이 뜻을 모아 발족한 ‘KBS·MBC 정상화 시민행동’은 매주 금요일 공영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되돌리기 위한 ‘돌마고(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불금파티’를 개최하고 있다. 민주당 등 정당은 들어가 있지도 않다.

공영방송 전·현직 임원에 대한 감사원 감사 청구나 방통위의 관리·감독 권한 행사, 방송사 재허가 심사 역시 지난 정부부터 공영방송 내 비위·위법 행위를 바로잡기 위해 해왔던 절차고, 정치권과 방송사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요구해 왔던 사항이다.

그런데도 국회 과방위 소속 한국당 의원들은 8일 “민주당의 정치공작 전모가 드러났다”며 유의선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가 이날 사의를 표명한 것도 민주당이 추진한 ‘공영방송 이사 퇴출 계획’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유 이사(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지난 2월 사장 면접에서 사장 후보자에게 ‘노조 배제’를 암시하는 질문을 했다는 혐의(부당노동행위·방송법 위반 등)로 지난달 언론노조 MBC본부로부터 고소당했다. 최근엔 이화여대가 모교인 MBC 기자들로부터 ‘졸업생뿐 아니라 재학생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공영방송 이사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는 토론 제안 메일을 받기도 했다.

유 이사는 8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파업이 이 정도 진행되는 데는 나 역시 관리·감독하는 이사로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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