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최고 통치자’인 김정은 위원장은 2017년 후반기 내내 문 대통령의 ‘화해와 평화공존’ 제안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특히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저주에 가까운 설전을 벌였다. 트럼프가 김 위원장을 ‘꼬마 로켓맨’이라고 조롱하면 그는 ‘노망 난 늙은이’라고 받아쳤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해 국회에서 “(북한은) 우리를 시험하지 말라”고 하자 북한의 노동신문은 “늙다리 깡패의 구역질 나는 상통(얼굴)을 죽탕쳐(짓이겨) 버리자”고 했다.
그러나 지난 2월9일 개막되는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졌다. 북한의 적극적 참여와 남한의 파격적 환대로 평창올림픽이 ‘사상 최고의 평화 축제’라는 세계 주요 언론의 평가를 받으면서 73년 동안 굳게 버티고 있는 분단의 장벽이 허물어지는 듯한 느낌까지 주었다. 트럼프 정권은 평창올림픽 기간에 북한을 냉대했다. 그러나 지난 5일 평양을 방문한 문 대통령의 특사단이 김 위원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오는 4월 말에 남북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하면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확인”한 뒤 지난 8일(미국 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북한의 제안(북·미 정상회담)을 전하자 트럼프는 그것을 즉각 수락하며 날짜를 5월 이내로 정하는 데 동의했다.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 등을 하지 않기로 한 것”도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북한과 미국은 올해 춘삼월 들어 정상회담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국제적으로 공언하고 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세계 주요 언론매체들은 이런 결과를 이끌어낸 문 대통령의 외교적 능력을 극찬했다. 1945년 8·15 해방 이래 우리 겨레가 뼈아프게 경험했듯이 한반도의 분단 때문에 빚어지는 모든 문제는 쉽사리 해결될 수가 없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주도한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 운동이 ‘핵보유국’임을 선언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화답을 이끌어내면서 트럼프 대통령까지 동행하게 만드는 결과를 빚어낸 것이다.
오는 4월에 열릴 남북 정상회담과 5월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다루어질 의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것은 ‘북한 체제의 안전 보장’을 전제로 한 비핵화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특사단을 면담한 자리에서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대화의 상대로서 (미국으로부터)진지한 대접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은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를 문서를 통해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된다고 해서 미국이 ‘불가피한 경우’를 명분으로 북한을 군사적으로 위협할 개연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북한이, 그리고 남한과 북한이 전쟁을 하지 않도록 확실한 국제법적 장치를 하려면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할 것이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 총사령관을 일방 당사자로, 조선 인민군 최고사령관과 중국 인민군지원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체결한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은 대한민국을 배제한 협정에 불과하므로 남한과 미국을 일방으로, 북한과 중국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평화협정이 이루어져야 상호 불가침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평화협정은 남한과 북한의 국방비를 최소화하고 경제협력을 강화하며, 북한이 베트남과 쿠바처럼 국제사회로 진출할 기회를 극대화 할 것이다. 이런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세계사의 흐름은 평화와 연대의 방향으로 도도하게 흘러가리라. 그런 역사적 공로를 이유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을 공동으로 수여한다는 결정이 나온다면 세계 여론은 찬성 쪽이 압도적이지 않을까? 이런 기대가 ‘봄날의 꿈’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