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자국산 무기 판매와 관련해 한국을 3.5∼4등급 국가로 분류해놓고 있다. 1등급은 이스라엘, 2등급은 영국과 일본, 3등급은 캐나다와 호주 등이다. 3등급 이상으로 분류되면 미국산 무기를 수출할 때 의회 동의와 국무부 수출 승인 등 절차가 오래 걸린다.”

9월5일자 연합뉴스 <미국산 장비 한국 구매 ‘개념적 승인’ 백악관 설명 배경 촉각> 기사의 한 대목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산 군사 장비의 한국 구매 계획을 ‘개념적으로 승인했다’고 발표한 백악관 보도자료가 등장하자 정부와 방산업계 관계자들이 ‘앞으로 미국이 한국에 무기를 팔 때 정부 내 절차를 간소화하겠다는 뜻’이라는 취지의 보도에 등장한 내용이다.

북한 6차 핵실험 이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에서 무기판매 3.5~4등급에 불과한 한국이 미국 무기를 빠르게 구입할 수 있다는 게 연합뉴스 보도의 핵심이었다. 이 보도는 아시아경제와 MBN 등이 받아썼다. 이계성 한국일보 논설실장은 9월6일자 칼럼에서 “미국은 무기 수출 대상 등급을 분류해 놓고 있는데 한국은 3.5~4등급이어서 의회 승인 등 절차가 까다롭다. 전략 무기인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 도입이 지연됐던 게 한 예다”라고 적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이 설정한 대외군사판매(FMS·Foreign Military Sales) 구매국 분류 등급(1~4)이 높은 나라는 무기 및 기술자료 수출승인 면제 및 통제범위나 승인 기간 등에서 혜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의 FMS 구매국 지위는 3.5~4등급이 아니었다. 2008년 10월, 이미 기존 3등급에서 2등급으로 올라갔다. 더욱이 3.5등급이란 기준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 9월5일자 연합뉴스 &lt;미국산 장비 한국 구매 &lsquo;개념적 승인&rsquo; 백악관 설명 배경 촉각&gt; 기사 일부.
▲ 9월5일자 연합뉴스 <미국산 장비 한국 구매 ‘개념적 승인’ 백악관 설명 배경 촉각> 기사 일부.
2009년 정순목 방위사업청 차장이 <정책브리핑>에 기고한 ‘FMS 지위향상과 기대효과’란 제목의 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15일 부시 미국 대통령이 무기수출통제법 개정조항을 포함한 군함이전법에 서명함으로써 한국의 FMS 지위가 NATO+4 수준으로 향상되었다”고 명확히 적어 놨다. 2013년 2월 감사원이 작성한 ‘FMS 방식의 해외무기 구매 실태’란 제목의 감사결과 보고서에서도 “FMS 등급 자체는 이미 2008년 상향조정되었다”고 적혀있다.

FMS는 미국 정부가 품질을 보증해 우방국에 무기를 수출하는 판매제도로 판매 때 철저하게 미 의회의 통제를 받고 있으며, 미국과의 관계에 따라 국가별 등급을 차별화해 놓았다. 미국의 FMS 국가분류에 따르면 나토 회원국인 영국 등 27개국이 1그룹, 나토+5개국이 2그룹에 해당하는데 이 5개국이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이스라엘이다. 3그룹은 非나토 주요 동맹국으로 이집트 요르단 아르헨티나 바레인 필리핀 태국 쿠웨이트 모로코 파키스탄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이 FMS 3등급이던 당시 의회 심의기간은 나토 회원국의 두 배인 30일이었으며 행정검토 기간까지 포함하면 50일까지 소요됐다. 계약행정비는 전체 구매대금의 1.5% 정도였는데 나토국은 0∼0.85%가 부과됐다. 이 때문에 한국은 FMS 지위가 격상되면 수천만 달러를 아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한국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계약행정비로 연평균 780만 달러(약 88억2180만원)를 냈다.

▲ 미군.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게티이미지
▲ 미군.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게티이미지
이 같은 연합뉴스 오보는 디시인사이드 군사갤러리에서 활동하는 한 ‘밀리터리 덕후’에 의해 알려졌다. 미디어오늘과 민주언론시민연합에 이 같은 오보를 제보한 김아무개씨는 “해당 기사를 쓴 연합뉴스 기자와 통화해 근거가 뭐냐고 따져 묻자 2011년 1월12일자 세계일보 기사를 참조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연합뉴스 기자가 언급한 세계일보 기사에도 3.5~4등급이라는 대목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3.5~4등급이란 근거는 어디서 등장한 걸까. 김씨는 해당 기자와 통화했지만 세계일보 기사를 참조했다는 말 빼고는 명확한 해명을 들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전화를 받은 연합뉴스 기자의 대응은 한심하고 졸렬했다. 군사 전문이라는 타이틀을 단 기자도 그렇고 국방위 소속 국회의원조차 그러한데 기자라고 특별히 다를 이유가 없지 않겠나”라며 씁쓸해했다.

김씨는 “애초에 우리나라에서 FMS를 2등급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한 계기는 이스라엘이 3등급에서 2등급으로 바뀐 것 때문”이라고 전했으며 한국일보 논설실장이 예로 든 ‘글로벌 호크 도입 지연’ 배경에 대해선 “글로벌 호크 도입이 지연되었던 것은 미사일 기술통제체제(MTCR)에서 예외규정을 적용받아야 하고 한미 미사일 지침에서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 외 가격 변수도 있었다”고 반박했다.

김씨는 “저는 전략과 무기체계에 관심을 두고 있는 오래된 일개 밀덕”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밀리터리 커뮤니티에서는 한국 언론이 군사 관련 기사에서 오류를 범하는 일에 대해서는 몹시 당연하게 생각한다. 다른 분야에서 오보를 내는 것보다 훨씬 그 빈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디어오늘은 해당 기사를 쓴 연합뉴스 기자에게 3.5~4등급이라고 적은 근거가 무엇인지 이메일로 문의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연합뉴스는 2016년과 2017년 뉴스통신진흥법에 의해 세금으로 구성된 정부구독료 678억 원을 지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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