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언론재단이 수여하는 삼성언론상은 1996년 만들어져 매년 수상작을 선정하고 있다. 언론에 의해 견제 받아야 할 기업이 왜 언론상을 만들어 시상하고, 언론들은 왜 또 수상을 자랑스러워하는지 일반 상식에선 이해하긴 어렵지만, 그럼에도 종종 상을 받을만 한 수상작들이 눈에 띄긴 했다.

특히 지난해가 그랬다. ‘대기업 돈 288억 걷은 K스포츠 재단 이사장은 최순실 단골마사지 센터장’ 기사로 최순실의 이름을 세상 밖으로 꺼낸 이후, 국정농단과 관련된 보도를 이어간 한겨레와, 태블릿PC를 찾아내 전 대통령 박근혜씨와 최순실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냄으로서 촛불혁명의 시금석을 마련한 JTBC가 상을 받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 매체는 이후 삼성의 광고 축소 위기를 맞았다. 미디어오늘이 지난해 9월 보도한 ‘한겨레 삼성광고, 경향신문 절반 수준으로 추락’ 기사에 따르면 한겨레는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넉 달간, 불과 11건의 광고만 수주했다. 조선일보가 6월 한 달 간 받은 광고가 14건이었을 때다. JTBC에도 삼성 광고가 끊어진지 오래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뒤 석방되고 있다.ⓒ민중의소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은 뒤 석방되고 있다.ⓒ민중의소리
두 매체는 삼성에서 상을 줬건 말건,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그가 가진 권력을 견제했고, 항소심 재판 결과를 타 언론이 쌍수 들고 환영할 때, 판결문을 분석하며 비판했다. 이러니 삼성 입장에선 ‘괜히 줬다’란 생각이 들었을까? 올해 주진우 시사IN 기자가 ‘장충기 문자’ 기사와 ‘안종범 업무수첩’ 보도를 삼성언론상에 출품했지만 탈락했다.

‘장충기 문자’는 언론과 삼성의 결탁, 그 맨살을 드러낸 특종보도였다. 언론 뿐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이 어떻게 삼성의 영향력 아래 있는지도 고스란히 보여줬다. 안종범 업무수첩은 ‘국정농단실록’이라 불릴 만큼 탄핵의 결정적 근거가 됐다. 시사IN은 이 수첩을 전권 입수해 내용을 보도했다.

하지만 삼성언론상은 이를 외면했다. 희대의 특종을 누른 출품작은 채널A의 ‘청년일자리 기획 시리즈’, 매일경제의 ‘4차 산업혁명 듣보잡(job) 시대’, EBS의 ‘대학입시의 진실’ 등 이었다. 물론 이런 기획들이 의미가 없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기획들이 삼성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내용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런 의미에서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삼성언론상 논평비평상을 받은 조선일보 박정훈 논설위원이다. 논평비평상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적절한 대안까지 제시한 훌륭한 칼럼”을 대상으로 시상한다. 그렇다면 삼성언론재단은 박정훈 논설위원의 어떤 칼럼에서, 어떤 사회적 문제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을 느꼈을까?

2017년 12월29일자. 조선일보.
2017년 12월29일자. 조선일보.
눈에 띄는 칼럼은 많았다. 지난해 12월29일, 박정훈 논설위원은 ‘이 거대한 자해극을 언제까지 계속할 건가’라는 칼럼을 썼다. 그는 이 칼럼에서 “올해 대한민국을 특정 짓는 키워드는 ‘자해’”라며 본인이 꼽은 ‘정부의 자해극’ 몇 가지를 소개했다. 그리고 이 중에는 삼성과 관련된 대목이 있다.

“삼성전자가 회삿돈 60조원을 주주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주주 친화’를 명분으로 걸었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이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 일가 지분은 약 20%다. 이 정도로는 경영권을 공격받을 때 확실한 방어가 힘들다. 최순실 스캔들 이후 국민연금의 ‘백기사’ 역할도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정부 역시 우호적이지 않다. 청와대까지 나서 이재용 부회장을 감옥에 보내려 했다. 기댈 곳 없어진 이 부회장은 외국인 주주의 환심을 사는 전략을 택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주주 환원 정책이다. 주주에게 60조원을 돌려주면 절반 이상이 외국인에게 간다. 이 돈을 미래 투자에 쓴다면 국가 경제에도 큰 이익일 것이다. 그것을 사실상 막은 것이 정부다. 정부의 반(反)기업 행보가 외국인 주주들 배만 부르게 했다.”

2017년 11월17일자. 조선일보.
2017년 11월17일자. 조선일보.
그리고 아래는 지난해 11월17일자 칼럼 ‘반도체 호황은 거저 오지 않는다’의 한 대목이다.

“이 정권이 삼성 총수를 잡아넣으려 애썼다는 것 역시 비밀이 아니다. 이재용 부회장 재판 와중에 캐비닛 문건을 공개한 것이 청와대다. 카메라 불러 TV 생중계까지 하며 요란 떨었다. 이 부회장에게 5년형이 선고되자 여당 대표는 ‘솜방망이 처벌’이라 비난했다. 그랬던 정부·여당이 삼성전자가 이룬 성과엔 군말 없이 올라타고 있다. 기업 때리는 정권이 기업 덕을 보려 하고 있다.”

2017년 8월24일자. 조선일보.
2017년 8월24일자. 조선일보.
마지막으로 지난해 8월24일자. 이때는 이재용 부회장 1심 선고를 하루 앞둔 때였다. 이날 박정훈 논설위원은 ‘제발 법만으로 해달라는 세기의 재판’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냈다. 이 칼럼에서 박정훈 논설위원은 이렇게 주장한다.

“이재용 재판을 둘러싼 불특정 다중(多衆)의 압박은 심각한 지경이다. 이 부회장의 첫 번째 구속영장을 기각한 판사는 격렬한 인신공격에 시달렸다. ‘삼성 장학생’이며 ‘부역자’라는 문자 폭탄이 쏟아졌다.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사도 다수의 공격에 휩싸였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부가 심리적 압박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거짓말이다.”

“이번 재판은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다. 선고 결과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물론 삼성전자 경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외신과 해외 전문가들은 유죄판결이 나올 경우 삼성의 대외 이미지에 타격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전 세계 비즈니스 리더들과의 개인적 친분을 바탕으로 활동해온 이 부회장의 글로벌 경영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재판 외적 요소들이 선고에 영향을 미쳐선 안된다.”

삼성언론상에 빛나는 조선일보 박정훈 논설위원은 이 같은 칼럼을 쏟아냈다. 그에게 이재용 부회장은 각종 편법을 동원해 자산을 불려도, e삼성 사업에 실패하고 계열사들에게 그 부담을 떠넘겼어도, 자신의 후대 승계 과정에서 국민연금에 큰 손해를 입혔어도 “경영권을 공격받을 때 방어하기 힘든” 가엾은 경영자 정도일 뿐이다. 국민연금은 단지 이재용 부회장의 “백기사”일 뿐이다.

이런 박 위원이 삼성언론상을 받았다. 그 상금은 팀당 2000만원 수준이라고 삼성언론재단은 공고하고 있다. 삼성언론재단은 박정훈 논설위원에 대해 “시장경제와 원칙을 강조하는 칼럼을 통해 사회 선진화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그가 사회 선진화에 기여한 것은 뭔가? 적폐청산을 기업 탄압으로 몰아 붙여 이재용의 석방에 기여한 것일까?

삼성언론재단은 올해 사회를 뒤흔든 대특종을 버리고 삼성 권력에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논설위원에게 상장을 줬다. 언론이 이재용 부회장 석방에 환호성을 지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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