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신문사의 총수입중 광고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80%. 그 현실만큼이나 광고인의 역할 역시 크다. <김영근의 광고이야기>는 신문의 광고면을 채우기 위해 이리뛰고 저리뛰는 광고인들의 이야기와 광고에 얽힌 뒷얘기를 재미있고 생생하게 보여 드릴 것입니다.

일간신문의 지면은 기사와 광고로 양분돼 있다. 업계에서는 광고가 주로 신문 지면의 아랫부분을 차지한다고 해서 ‘아랫도리’라고 부른다. 기사는 ‘윗도리’인 셈이다. 지난 87년, 신문 카르텔이 깨지기 전만 해도 아랫도리와 윗도리간의 ‘균형’과 ‘질서’는 어느 정도 존중됐다. 그러나 신생지 창간이 늘어나고 신문사간 살인적 증면경쟁이 불을 뿜자 아랫도리의 ‘고행’은 대책없이 이어지고 있다.

살인적 증면경쟁 ‘아랫도리 고행’으로

전 지면에서 광고면의 확대는 눈에 띄게 늘어나 광고면이 차지하는 비율이 50%가 넘는 것은 이제 예사 일이다.
신년호의 경우에는 더욱 심하다. 광고 비중이 60%에 이르고 있다. 독자에게 기사를 판다기보다는 광고주에게 독자를 팔기위한 신문 제작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일간지들의 광고 전쟁은 신년호로부터 시작된다. 신년호에 거는 각 사의 집착은 대단하다. 기업들의 관례적인 신년 광고집행 물량이 상당할 뿐 아니라 각 사간의 경쟁 심리가 첨예하게 부딪치기 때문이다.
96년 신년호의 증면 경쟁은 지난 95년보다는 덜한 편이다.

재계를 급랭시키고 있는 비자금 파문으로 인한 광고물량의 감소 때문이다. 그러나 신문사 광고국 외근 직원들에게 주는 압박감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기업들이 몸을 도사리기 때문이다.

95년 신년호의 신문사간 광고 싸움은 경쟁의 극치를 달렸다. 단군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94년 광고 시장의 시황이 촉발시킨 ‘전쟁’이었다. 기업들은 호황의 이윤을 세금으로 낼 바에 차라리 신년 광고에 쏟아 부어 언론에게 점수나 따놓자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신년호 발행면수는 특급 비밀

12월 초가 되면 각 신문사의 신년호 발행에 대한 정보가 광고계에 파다하게 나도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95년 신년호 경우는 완전히 달랐다. 전혀 상대사의 정보를 얻을 수 없는 말그대로 오리무중이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신문사에서 신년호 발행면수는 임원급만이 알고 있을 만큼 ‘특급비밀’로 취급되고 있었다.

94년 12월 초가 지나고 12월 중순이 돼도 각 사의 신년호 윤곽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각 사 데스크에 비상이 걸렸다. 외근직원을 닦달하고, 광고주를 흔들어 봤지만 상황파악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는 없었다. 12월 20일이 다가왔다.

윤전기 사정으로 별지 1판을 인쇄해야 할 시기가 되자 광고대행사 주변에서 간헐적으로 정보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신년호 발행 면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물론 신년호에 광고를 게재할 광고주들도 알 수 없긴 마찬가지 였다.

12월 25일, 본판을 제외한 별지 마감일이 코 앞까지 다가왔다. 마지막 원고가 윤전기에 걸리고, 월정 광고주와 신년호 고정 광고주 필름의 목적지와 동향이 알려지면서 대충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A신문사 광고 데스크는 장님 코끼리 만지 듯 정보를 더듬고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신문을 만들자는 것이지 단행본을 만들자는 것인지 도저히 분간이 되질 않았다. C사로 유입된 것으로 확인된 광고필름은 아무리 짜게 잡아도 80∼90개에 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95년 신년호는 100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중앙일간지 신년호에는 약 1천여 광고주들이 참여한다. 새해 아침에 신문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신년인사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년호 참여 광고주들은 매우 불안한 마음으로 신년을 맞는다. 신년 초 10여일간은 좌불안석해야 한다. 광고 외근들의 ‘거칠고 지루한 통과의례’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신년호 광고를 배정 받지못한 신문사의 광고직원들이 몰려와 쏟아붓는 협박은 오히려 애교스럽게 생각될 정도다. 광고담당자는 안중에도 없는 듯, 임원실을 점거하고는 3∼4시간을 ‘죽쳐댄다’. 물론 회사의 고유 업무가 거의 마비되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경쟁사만 광고 준 기업 1년내내 곤욕

경쟁사에만 광고를 줬다가 일년내내 고생하는 광고주들도 흔하게 있다. 모 건설사 홍보팀 H씨의 경우, 멋 모르고 A신문에 신년 축하 광고를 낸 후 B신문에서 달아준 혹을 거의 1년 내내 달고 살아야 했다. B신문에 2∼3개월 전부터 광고예약을 해도 지면을 잡기가 힘들었다.

어렵사리 광고지면을 확보한 경우도 좋은 지면은 배정을 받기 어렸웠고 광고효과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속지면으로 할당을 받아 돈내고 광고하고도 서러움을 톡톡히 받았다. 그같은 세월을 거의 1년 가까이 보낸 후, 대행사 간부의 주선으로 B신문을 방문, 고개가 땅에 닿도록 수십번 머리를 조아리고서야 정상적인 관계를 복원할 수 있었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광고인들이 신년호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매일매일을 승부사로 살아야 하는 광고인의 처지이지만 신년호부터 타사보다 쳐지는 것이 싫다는 오기 발동도 그 이유중에 하나다. 더구나 신년호를 통해 자사 영업 능력이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광고국 외근들로서는 신년호 수주에 남다른 집착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코 앞에 닥친 신년호를 앞 두고 광고인들은 모여 앉으면 한숨이고, 푸념이다. 아, 죄많은 광고쟁이 팔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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