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 없고 ‘욕’만 넘친 3년 3개월. 지난 6월 15일로 막을 내린 강성구 사장의 재임기간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압축된다.

지난 93년 3월 18일 취임한 강사장은 비록 5공 시절 보도국장으로 ‘땡전 뉴스’를 이끌었고, 87년 대선을 앞둔 관훈 토론회에서 노태우 후보를 거드는 질문을 하기도 해 비판의 여지가 없진 않았지만 강한 리더쉽과 청렴성의 소유자이자 MBC 공채 출신의 첫사장이라는 점에서 MBC 안팍의 기대를 받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그 역시 취임사에서 “혁신적 사고와 혁신적 실천을 바탕으로 ‘제2의 창사’를 하겠다”며 MBC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그의 포부는 취임한 지 나흘 뒤 개최된 지방사 주주총회에서부터 의심받기 시작했다. 강 사장이 학력변조 혐의자, 비리로 인한 정직 경력자 등 비리 혐의가 현저한 사람들을 일부 지방사 사장으로 추천, 임명되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정실인사 시비’로 의심받기 시작한 강사장의 개혁의지는 재임기간 내내 하강곡선을 그렸다. 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불공정 방송 시비, 경영능력 부재론으로 이어졌다. 이같은 시비는 지난해 7월 전격적으로 단행된 보도이사 경질 사건이 계기가 돼 강사장 퇴임론으로 불거졌다.

강 사장의 노골적이다시피 한 ‘권력 눈치보기’가 노조와 사원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쳤던 것이다. 당시 지방자치제 선거에서 패한 여권내부에서 방송책임론이 대두되자, 강사장은 MBC가 독자적으로 실시한 출구 조사의 불법성을 명분으로 보도이사(현 편일평 전무) 경질이라는 전형적인 ‘권력눈치보기 인사’를 단행했다는 것이 노조 측의 분석이다.

이 사건 이후에도 PD 수첩 불방 사건, 최문순 노조 위원장 정직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강사장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는 점에서 퇴임 주장은 잠시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3월 방송문화진흥회의 사장 선임 이사회를 앞두고 강사장 연임설이 나돌자 강사장에 대해 전면적으로 문제가 제기됐다.

강사장에게 최악의 점수를 안겨준 사례는 이밖에도 많다. 94년 1월까지만 해도 월 평균 16%대의 시청률을 나타내 4개 공중파 채널 가운데 1위를 고수하던 MBC가 강사장 취임 이후 계속 하락하더니 급기야 96년 1월에는 11.9%로 최하위를 기록하게 됐다는 점도 뼈아픈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박홍총장 주사파 발언 일방보도, 인천북구청 세금횡령 사건 축소,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 생방송 지연 및 축소 보도 등 일련의 불공정 보도행위로 MBC 간판 보도 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도 몰락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같은 사태가 전적으로 강사장 혼자만의 책임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MBC의 최고책임자라는 점에서 그에 합당한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는 게 사원들의 일반적 지적이다.

이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방문진 이사회에서 강사장의 연임을 결정하자 노조는 지난 3월 파업을 단행했고, 이 과정에서 강사장의 사생활을 둘러싼 추문까지 심판대에 오르기에 이르렀다. 공인으로서의 생명이 끝장났던 셈이다.

그러나 강 사장은 물러나지 않았다. 노조와 방문진이 합의를 통해 명예롭게 자진사퇴할 수 기회를 제공했으나 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끝내 부하직원이자 후배기자인 최문순 1차 비대위 위원장을 MBC에서 쫓아내는 ‘업무’를 마지막으로 15일 MBC에서의 마지막 퇴근을 했다. 그의 손에 해고 당한 최문순 전 비대위 위원장은 “그 양반이나 나나 개인적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의 희생물이다”며 강사장의 퇴임을 안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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