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탐사

“절에 들 때까지, 삶의 뜨겁고 끈적거리는 욕망을 / 그렇듯 끈질기게 그대들 발길에 채이며 걸리적 거리는 것이다.”(표충사 가는 길, 엄원태). “한때나마 부끄러운 영혼들을 의탁하며 / 몸숨길 수 있었던 은신처.”(운주사 가는 길, 임동확).

절은 단순히 특정종교의 사원으로서의 의미를 넘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있길래 시인들은 절에 들어서면서 그토록 많은 생각에 젖는 것일까. 그 절로 가는 길을 불교텔레비전(채널 32) ‘한국의 명찰’(방영시간 월요일 오전 11시 10분) 팀의 카메라가 같이 한다.

‘한국의 명찰’은 전국에 있는 고유명찰을 찾아 창건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대하 다큐멘터리다. 이 프로그램은 신라시대 이후 우리 역사의 한 부분에서 흥망성쇠를 같이했던 많은 사찰의 사연과 유적을 찾아본다는 의도에서 기획됐다. 95년 3월 2일 월정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50여개 사찰의 유래와 역사,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50분에 걸쳐서 차분하게 내보낸다.

이 프로그램은 현존하는 유물, 유적의 면면을 소개하고 성대했던 과거의 영화를 되새긴다. 또 그곳의 지리, 역사적 의미와 사찰에 있는 각종 유·무형 문화재에 관한 자세한 해설은 민족문화 교육에 도움을 준다. 또한 이 프로그램은 사찰 전경을 항공촬영하여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절의 전경은 물론이고, 자연경관과의 조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방송내용에 관한 고증은 주로 고승들의 증언을 토대로 하며 동국대 불교연구소의 도움을 받았다.
17일 지리산 쌍계사에 이어 24일에 찾아가는 곳은 설악산 신흥사다. 신라시대 혜능스님이 호랑이의 인도에 따라 자리를 정했다는 쌍계사편에서는 늦봄이면 철쭉이 흐드러지는 지리산 세석계곡 말미에 자리한 이곳에 녹아내리는 불교의 선심을 맘껏 보여주었다.

24일 찾아가는 설악산 신흥사는 조계종 13본사다. 전란의 중앙에 위치해 있어 항상 화를 피하기 어려웠던 이 절의 역사 자체가 시청자들에게 시간의 무게를 전해줄 것이다.

‘한국의 명찰’은 단순히 불교의식의 공간으로서의 장소가 아닌 우리문화의 현장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연출자인 김양 PD는 “단순히 불교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프로그램이 아닌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고향같은 느낌을 줄 수 있는 산사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명찰’은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유홍준 저)의 영상판인 셈이다. 만약 “아는 만큼 보고, 본 만큼 느낀다”는 말이 옳다면 ‘한국의 명찰’을 보는 것은 전국의 사찰은 물론이고 우리문화를 아는 지름길로 찾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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