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지침이 5공화국 언론통제의 대표적 상징이라면 6공화국 언론통제의 상징은 문공부 홍보정책실의 ‘언론인 개별접촉’ 활동이었다. 홍보정책실의 언론인 개별접촉 활동은 88년 12월 한겨레신문과 기자협회보를 통해 ‘언론인 개별접촉 보고서’가 폭로됨으로써 그 실상이 세간에 알려지게 됐다.

이 보고서는 홍보정책실에서 매체조정활동 계획에 따라 언론사별로 접촉대상자를 선정, 홍보정책관이 요식업소 등에서 개별접촉해 보도협조요청 사항을 알리고 해당언론사의 주요동정을 전해듣고는 이 내용을 월별로 작성해 대외비로 보관해오던 것이다.

기자협회보 88년 12월16일자 머릿기사에 따르면 이 보고서가 햇빛을 보게 된 경위는 이렇다. 이 보고서는 88년 10월 국정감사 기간 중 문공위 소속 의원들이 보도지침 자료를 찾기 위해 문공부 지하창고를 뒤지다 최초로 발견됐다.

그러나 이 사본을 건네받은 야당의원들은 한동안 이 자료가 언론계에 미칠 파문을 우려해 공개를 보류했었다. 그러다 언론청문회가 진행되면서 야당의원들이 질의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언론계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이 자료의 내용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이 자료는 언론계의 공공연한 비밀처럼 돌아다녔으나 공개 후유증을 염려하는 시각들 때문에 전면공개를 꺼려왔다.

이런 가운데 한겨레신문이 88년 12월13일자를 통해 그 실상을 공개하기 시작했고 뒤이어 기자협회보가 12월16일자, 23일자 두 차례에 걸쳐 그 전문을 게재, 보도했다. 공개된 보고서의 작성시기는 87년 대통령선거 직전인 11월3일부터 총선직후인 88년 4월29일까지였다.

이 보고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우선 이 보고서에 명시된 언론계 접촉대상자 중에 언론계 중진인사들이 상당수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빈번한 접촉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에 나타난 내용도 언론사의 동정에서부터 노조와 소장기자들의 움직임, 사설, 논조의 흐름까지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접촉 대상은 이사, 논설위원, 편집국장 및 편집간부에서부터 평기자 노조간부까지 광범위했다. 지방사의 경우 주필이하 편집국장, 각부 데스크들이 한꺼번에 만찬에 초대되기도 했다. 또 당시 신생언론사인 국민일보, 한겨레신문 간부에 대해서 88년 3월부터 개별접촉을 해왔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특히 대선 시기엔 관훈토론회의 패널리스트들에 대한 질의내용 조정과 노태우 후보에 대한 인기 부각이 집중 거론됐다.

한편 이 보고서가 공개되자 언론계는 상당한 충격에 휩싸였다. 경향신문노조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대자보를 붙였으며 모든 언론사의 소장 기자들도 여기에 동참했다. 공보처 공보협력관들과 접촉한 언론인들의 윤리문제가 심각히 제기되기도 했다. 이런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당시 이정배 공보실장과 5명의 공보협력관이 사표를 제출했고 이들에 대한 감사도 실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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