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씨는 ‘6·29선언’에서 언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언론자유의 창달을 위해 관련 제도와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아무리 그 의도가 좋다 해도 언론인 대부분의 비판의 표적이 되어 온 ‘언론기본법’은 시급히 대폭 개정되거나 폐지하여 다른 법률로 대체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방주재기자를 부활시키고 프레스카드제를 폐지하며, 지면의 증면 등 언론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여야 합니다. 정부는 언론을 장악할 수도 없고, 장악하려고 시도하여도 아니됩니다. 언론을 심판할 수 있는 것은 독립된 사법부와 개개인의 국민임을 다시 한번 상기합니다.”

이러한 6·29선언의 내용은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상당 부분 실행에 옮겨졌다. ‘보도지침’이 사라지고 언론기본법이 개정됐으며, 신문의 창·복간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방송구조가 바뀌었다. 그러나, 정부의 언론장악과 언론장악 시도가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정보의 유통을 통제하던 보도지침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정보유통에 대한 통제는 여전히 지속됐다.

홍보정책실에서 매체조정활동계획에 따라 언론사간부들을 접촉하여 작성한 언론인개별접촉보고서, 노태우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방송지침인 ‘향후 시국대책 방송안’, ‘북한 및 공산권국가에 대한 보도요강’ 등이 ‘보도지침’의 맥을 잇는 정보통제문건들이다. 또한 기관원에 의한 언론사찰 역시 계속됐다.

5공화국의 언론악법인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대체입법으로서 ‘방송법’과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그러나 두 법은 언론기본법의 독소조항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특히 정기간행물의 정폐간을 명할 수 있는 문공부장관의 권한을 규정한 언론기본법 제24조는 다소 완화된 형태이기는 하나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12조로 연속됐다.

한편, 6공화국에서는 새로운 상업방송인 서울방송의 설립인가를 비롯해 교육방송의 분리, 교통방송의 설립, 불교방송의 설립인가 등으로 방송구조의 개편이 이루어졌다. 불과 10년 전에 상업방송의 폐해를 명분으로 공영화됐던 방송이 다시 공민영 이원체제로 개편된 것이다. 이러한 방송구조의 개편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활성화된 KBS, MBC 등의 방송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즉, KBS를 분리하고 경량화함으로써 분리통치를 실시하고, 새로운 상업방송의 설립으로 ‘자사이기주의’를 부추겨 방송민주화운동을 무마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1980년의 방송통폐합이 그러했듯이 6공화국의 방송구조개편도 방송통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구조개편에 지나지 않는다.

6공화국에서는 신문산업에도 커다란 변화가 발생한다. 5공화국 하에서는 서울신문의 ‘스포츠 서울’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일간지의 창간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6공화국에 들어서면서 신문의 창복간 붐이 일어난다. 이 신문들은 대개 독점자본에 의해 소유·운영되는 것들이었다. 말하자면 신문에 대해서는 ‘국가에 의한 통제’로부터 ‘자본에 의한 통제’로 이행하는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이에 따라 신문에 대해서는 차츰 상대적 자율성을 부여해 갔다. 신문은 이제 정권 전체에 총체적으로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정파와 선택적인 친화를 하게 된다. 그리하여 소위 킹메이커가 되기도 하는 등 여론에 미치는 영향력을 키워가게 된다.

특히 6공화국 언론산업구조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독점자본의 언론소유현상을 들 수 있다. 독점자본의 언론계진출을 장려하면서 기존의 언론독점구조를 온존시키고자 한 것이 6공화국 언론정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직접적인 통제보다는 독점자본의 언론소유를 장려하여 독점자본을 통한 언론통제를 꾀하고, 새로운 매체의 출현을 장려하여 언론경쟁을 부추김으로써 한편으로는 자사이기주의를 통해 언론민주화운동에 제동을 걸고, 다른 한편으로는 광고주로서의 독점자본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며, 기존 언론자본의 독점적 구조를 온존시키는 것이 6공화국 언론정책의 대강(大綱)이다.

이러한 것은 언론사 간의 자율경쟁과 기존의 언론독점구조의 온존이라는 이율배반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다.

언론사간의 경쟁을 부추긴 것은 1987년의 6월항쟁으로 활성화된 언론민주화운동에 대한 대책으로 구상된 것이었다. 즉, 편집권 내에서의 수구세력과 민주언론세력 간의 잠재화된 갈등이라는 언론내의 분위기를 잘 이용한 것이 ‘언론자율경쟁’의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내적 갈등’은 ‘언론사별 경쟁체제’ 아래서 곧 무력화됐다.

6공의 이른바 언론자율화 정책은 불과 3년만인 1990년에 5공화국 때와 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과점적 신문시장 질서를 재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단지 5공때와 달라진 점은 5공화국정권의 경우 1980년 언론통폐합조치 이후 중앙지에 대해서는 카르텔체제를 통해, 지방지에 대해서는 ‘1도1사원칙’을 통해 각각 독과점적 지위를 보장하는 강권적인 신문산업 통제방식을 취했으나, 6공화국은 자본의 직접적인 언론지배와 경쟁체제 도입에 의한 광고의 지배력 강화를 통한 간접적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6공화국에서는 몇몇 외형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언론정책의 기조는 그대로 유지·관철됐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신문에 대한 상대적 자율성 부과와 자본을 통한 통제, 방송에 대한 통제의 강화 등은 다음 정권에도 이어지는 6공화국 언론정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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