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프로그램의 간접광고가 부쩍 심해지고 있다. 간접광고 위반사례가 급증하고 있고 그 표현정도에 있어서도 프로그램인지 광고인지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노골적이다. 방송위원회 심의를 의식해 기술적으로 ‘눈가림’을 하는 것은 점잖은 편에 속한다. 방송위원회 이영미 TV부장은 “주의나 경고정도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사과방송 등의 법정제재가 들어가면 그때서야 조심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방송위의 프로그램 제재 현황을 보면 분명하게 나타난다. 94년 54건이던 간접광고 제재건수는 95년 137건으로 무려 2.5배가 늘어났다. 연예·오락부문의 경우 간접광고가 다른 제재사유에 비해 81건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 다음 제재사유인 ‘어린이 청소년에게 비교육적인 내용’이 31건인 것에 비하면 3배 가까운 건수다. 보도·교양 부문 간접광고는 56건으로 제재사유중 두번째를 차지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의 제재건수는 63건(사과방송 5건, 경고 17건. 주의 41건)으로 이 추세라면 지난해보다 늘어날 것이 확실시된다.

그 표현정도도 심각하다. 한 시청자단체 모니터 관계자는 간접광고 실태를 문의하자 “말이 필요없다. 문제된 프로그램을 한 번만 보면 얼마나 심각한지가 금방 느껴진다”고 대답할 정도였다.

‘돈주는 쪽’ 주문 높아져

방송 프로그램의 간접광고가 이처럼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우선 ‘돈을 주는’ 기업쪽의 요구가 높아진 것을 꼽을 수 있다. 기업들은 협찬 형태로 프로그램에 제작비를 지원하거나 경품, 촬영장소 등을 제공한다. 이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프로그램중에 상호를 비춰달라” “회사 이름을 자막으로 처리해달라” “사장을 출연시켜라” 등 요구는 끝이 없다.

최근에는 협찬 규모가 억대로 늘어나면서 더욱 심각해졌다. 특히 기업이 일반 광고형태보다 이같은 간접광고가 효과가 훨씬 크다는 것에 눈을 뜨면서 요구수준이 훨씬 높아졌다고 방송관계자들은 전했다.
KBS의 한 프로듀서는 “심의 때문에 안된다고 거부하면 이미 ‘선을 넘어선’ 다른 프로그램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해달라고 한다”며 “제작비등 상당한 도움을 받은 입장에서 요구를 거절하는게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어느 프로그램이 심의를 위반해서 제재를 받으면 그것이 ‘정화’로 연결되는게 아니라 다른 프로그램도 그 정도의 ‘성의’를 보여야 하는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악순환의 고리는 이렇게 형성된다.

실제로 협찬단계에서 제작진과 기업쪽이 묵계를 하는 것은 이미 관행화돼 있다. 심의를 위반하는 ‘불법’을 저지르기로 합의한 상태에서 프로그램 제작에 들어가는 것이다. 얼마전 협찬사인 대한항공에 대한 지나친 홍보로 문제가 됐던 KBS ‘열린 음악회’의 경우 협찬과정에서 회장 출연 등 대한항공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방식에 관해 제작진이 “사전 협의가 있었다”고 방송위쪽에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이 광고효과를 위해 “이런 프로그램을 제작하면 돈을 대겠다”는 주문을 하기도 한다. 기업이 프로그램 기획과 편성까지 하는 것이다. 방송사 협찬을 대행하고 있는 한 협찬대행사 책임자는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이를 인정했다.

간접광고와 관련,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63조는 “방송은 특정상품이나 기업, 영업장소 또는 공연내용 등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거나 의도적으로 부각시켜 광고효과를 주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KBS, MBC, SBS가 합의한 ‘텔레비전 협찬 고지방송 기준’에도 프로그램 협찬의 경우 ‘공익성 대형 기획프로그램의 제작비 협찬에 한하여 허용’하고 고지방송은 ‘프로그램 종료시 종료자막으로 협찬주명만 밝힐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그램 제작자, 협찬대행사, 심의 관계자 어느쪽도 이것이 지켜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고 있다. 방송사의 경우 스스로 만든 규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양식’보다 ‘구조’가 문제

방송사도 협찬및 그것을 프로그램에 표현하는 방법에 관해 편성실 등에 심의위원회를 두고 심의를 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지극히 ‘형식적’으로 운영돼 정화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는 방송사가 협찬을 ‘수입원’으로 잡고 있는데서 비롯된다. 예외적으로 제작비가 모자라는 프로그램에 한해 협찬을 받는게 아니라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협찬을 받는 것이다.

그 규모도 제작비 일부가 아니라 제작비를 훨씬 초과하는 액수를 받는다. 수십억원이 소요되는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협찬을 통해 제작비를 충당키로 하고 제작에 들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대형 프로그램은 대체로 이 경우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외주제작의 경우 방송사가 계약 조건으로 협찬사를 물어올 것을 요구하는게 관행으로 정착됐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심의가 될 리가 없다. 한 방송사 실무 관계자는 “경영과도 연결되는 문제여서 어려움이 많다”며 간접적으로 방송사 자체심의의 ‘부실’을 인정했다.

물론 정보와 광고와의 분명한 경계를 긋기 어렵다는 제작상의 어려움도 있다. 화제가 된 책 저자를 불러 대담을 하면서 책 내용을 소개한 것을 간접광고로 볼 수도 있고 정보제공으로 볼 수 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간접광고 정도가 심해 방송위로부터 제재를 받은 대부분의 프로그램의 경우 간접광고 대상기업이나 인물이 협찬이나 제작진과의 연줄, 또는 연예인 등 ‘동업자’로 연결돼 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숨어있는 것이다. ‘제작진의 양식’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 양식과 윤리의식을 가진 프로듀서들을 그렇게 몰고가는 기업과 방송사의 뒷거래가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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