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안기부는 숙명적으로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 안기부의 고유업무인 국가안보 활동이 집권세력의 성격에 따라서 ‘정권안보’로 변질될 가능성을 언제나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설이 아니라 현실이다. 언론이 안기부에 대해 사회적 견제장치로서 ‘감시’역할을 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충청일보는 전 안기부 간부 출신인 안병섭씨의 사장 부임을 둘러싸고 진통을 겪고 있다. 숙명적으로 긴장관계여야 하고 또 견제대상인 안기부 출신이 언론사 사장으로 온데 따른 파문이다. 국민들에게 안기부는 아직도 여전히 권부의 상징이다. 과거 언론에 대해 이런저런 통제를 했고 또 현재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게 안기부에 대한 국민들의 대체적 인상이다. 그런 비정상적 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는 정황과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안기부 출신 언론사 사장’에 국민들과 언론이 당혹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충청일보 사태와 관련, 언론과 안기부와의 현재의 관계와 달라져야 할 미래를 조명해본다.

언론과 안기부 하면 의례 통제와 감시라는 단어가 떠올려진다. 지난해 대구가스폭발 참사때는 방송의 축소보도에 안기부가 개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 3월에는 청와대 이원종 정무수석 주재로 안기부, 경찰청, 공보처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언론홍보를 위한 홍보조정대책회의가 존재한다는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정치부 기자들은 김영삼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씨의 정치개입설이 언론에 집중적으로 보도됐을때 안기부가 직접 언론로비의 첨병으로 나섰다고 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 월간지의 ‘안기부 생산성’ 문제를 거론한 특집기사가 보도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언론대책팀 ‘건재’

안기부 언론대책팀도 여전히 활동중이다. ‘보도조정’이라는 이름의 언론사에 대한 영향력 행사도 계속되고 있다. 언론내부에서 발생한 주요사건의 고비마다 ‘기관원’들이 단골로 등장한다.

안기부의 이같은 모습은 충청일보 사태에서 드러나듯 ‘안기부 출신’에 대한 언론인들의 거부감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는 과거와도 연결된다. 안기부의 ‘전력’은 언론에 대해 늘 ‘가해자’였다.

74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들의 언론자유 수호 운동 과정에서 안기부의 전신인 중앙정보부 요원들은 기자들을 직접 만나 사표를 내라고 종용하는 등 공작의 전위대로 나섰다고 당시 관련기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6월항쟁의 여진이 남아있던 87년 10월 안기부는 김대중씨(현 국민회의 총재) 납치사건에 대한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증언기사를 문제삼아 ‘신동아’와 ‘월간조선’의 제작을 중단시켜 언론계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대학시절 학생운동 핵심으로 활동했던 한 언론사 간부는 안기부가 80년대 초반 이른바 운동권 출신의 언론계 진입을 막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모언론사의 경우는 안기부가 일부 기자들의 운동권 전력을 조사한 내용을 경영진에 전달하고 이들에 대해 ‘특별대책’을 요청한 것이 문제가 된 적도 있다.

이 모든 사례는 안기부와 언론의 관계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존재해왔고 지금도 그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안기부가 여전히 언론사 취재영역의 사각지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94년 8월 언론은 일부 대학교수가 북한의 장학금을 받아 수사중이라는 안기부 관계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보도했다. 이는 당시 박홍 서강대총장의 “북한 장학금 받은 교수있다”는 발언과도 연결돼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켰으나 곧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이를 보도한 거의 모든 언론사가 정정보도를 냈다.

“확인취재 원천봉쇄”

대규모 공안사건과 관련, 안기부가 언론에 하는 서비스는 검찰 기자실을 통해 보도자료를 돌리는 것이 고작이다. 서울지검에 출입하는 한 기자는 “수사를 진행한 부서가 어디인지 담당자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보도자료만 베끼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예 취재 자체를 체념하는 언론사 분위기도 문제지만 언론의 확인취재를 원천봉쇄하는 안기부에도 할 말이 많다”고 밝혔다. 안기부가 언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들어 안기부는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취재의 사각지대라는 비판과 관련, 공보관제도 신설했다.

기자들의 평가는 아직 유보적이다. “약간 나아졌다”는게 대체적인 반응이다. 민감한 사안이나 사건성 기사에 대해 확인하고 입장을 듣는 정도에 만족한다는 것이다. 업무상 안기부와 접촉이 상대적으로 많은 한 북한부기자는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확인요청을 하면 보안사항이라며 확인을 해 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솔직히 공보관제 신설등이 ‘겉치레용’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고 말했다. 안기부의 변화가 아직 형식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기자들의 체감지수다.

기자들의 이같은 인식은 안기부가 언론에 대해 뭔가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뿌리깊은 불신
에서 비롯되고 있다. 언론 대책반의 존재 등 안기부와 언론과의 비정상적 관계를 상징하는 구조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도 불신을 키우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충청일보 기자들의 안기부 출신 사장에 대한 거센 거부 움직임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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