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우리 언론은 불공정·편파보도의 구태를 벗지 못하고 주요 쟁점마다 권력과 자본의 목소리만을 대변했다는 지적이 높다. 사진은 지난 4·11총선때 종로구 개표 장면(왼쪽)과 12월 민주노총의 안기부법·노동법 개악 반대 결의대회 모습.

96년 언론노련 민실위 보고서에 비친 언론의 모습은 여전히 권력과 자본의 편에 선 편파와 왜곡, 굴절로 기록돼 있다. 문민정부 들어서 조금 주춤했던가 싶던 언론에 대한 권력의 개입과 간섭이 다시 노골화된 반면 이에 대한 언론의 방어는 취약하기 그지 없었다.

사회 전반의 보수화 경향과 경제위기 국면에 편승한 자본의 입김 또한 그 어느 때 보다도 거셌다. 언론노련 민실위는 지난 12월19일 신문·방송 통합 민실위를 갖고 민실위원 방담을 통해 지난 한해 언론의 발자취를 점검해보았다.
△때: 96년 12월 19일 △장소: 프레스센터 18층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사무실


─올 한해 민실위에 비친 언론의 모습은 한마디로 한국언론의 왜곡·편파 재생산 구조가 보통 뿌리깊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재확인해 주고 있지 않나 한데요. 4·11총선, 노동쟁의, 한총련사태, 안기부법및 노동법 개정문제 등 주요 쟁점 사안마다 권력과 자본 편들기가 노골적이었다고 봅니다.

─YS정권 초기 개혁을 외칠 때는 언론 역시 불공정 편파보도의 구태를 조금씩 벗어 던지며 언론 본연의 자세를 찾으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4·11총선을 전후로 언론 보도에 대한 권력의 개입은 다시 노골적으로 나타났습니다.

YS개혁의 문제점이 노출되면서 권력은 언론의 감시 기능이 무척 부담스러워진 것 같고 그것이 언론에 대한 노골적 개입 혹은 사법적 제재등의 방법으로 나타난 게 아닌가 합니다. 특히 개혁의 실패로 95년 지자체 선거에서 참패를 당하자 언론을 이대로 내버려둬선 안된다는 위기의식을 갖게된 듯합니다.

언론에 대한 재벌 영향력 커져

─권력과 자본편들기는 아마 경제위기 보도 및 노동법 관련 보도에서 가장 두드러졌습니다. 경제위기에 대한 재벌의 발언이 미친 영향이나 노동법 개정추이를 보면 우리 사회에서 자본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 언론은 자본의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는데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언론은 경제 위기의 원인을 노동자에게 전가시키는 재벌측 논리를 충실히 따라갔습니다. 재벌을 이렇게 키워 나중에 이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지 우려됩니다. 이러다간 대통령도 전경련에서 뽑는다고 하는 게 아니냐는 웃지 못할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재벌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은 결국 노동자에게 있습니다. 언론은 이를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방송은 균형보도라는 미명하에 평면적 나열식 보도로 일관했습니다. 노동법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지, 노자의 입장에서 정밀하게 따져 나름대로의 가치 판단, 지향점을 명확히하여 여론 수렴의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데도 이를 포기했습니다.

─경제 위기에 대한 언론의 일관성 없는 보도도 역시 무책임한 보도행태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데요.

─기자들의 전문성 문제가 짚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경제위기에 대한 정부의 진단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정부내에서 여러 갈래로 흩어져 도대체 정부의 정책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럴수록 일선 기자들부터 중심을 잡고 이를 심층적으로 분석, 판단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역부족이었습니다. 정부의 각기 다른 발표를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보니 정부 발표에 따라 언론보도 또한 왔다갔다 한 것이지요.

─단적으로 재계가 경제 위기에 따른 감량경영을 외치자 언론은 감량경영의 당위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다가 LG, 대우 등이 감량경영은 없을 것이며 오히려 인원을 늘려 공격경영에 나설 것이라고 밝히자 태도를 완전히 바꿔 감량경영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경제상황이 심각하다고들 말하면서도 도대체 그 원인과 이유가 무엇인지 꼼꼼히 따져보는 보도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언론들이 앞다투어 경제위기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경제정책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이나 접근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정부와 재계의 발표를 중개방송하듯 하는 보도가 많았습니다.

─한총련 관련 보도 역시 올해의 대표적인 왜곡편파 보도의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보도만 보면 한총련이 갑자기 땅에서 쏟아난 것 같아요. 언론은 학생들이 왜 시위를 하고 있는지, 정부의 진압방식이 왜 강경으로 돌변했는지 등 기초적인 의문점조차 외면했습니다. 한마디로 언론보도의 기본조차 무시되지 않았나 합니다. 해설은 정부입장만 일방적으로 전달했구요.

─한총련 보도를 그렇게 몰고 간 것은 당시 편집국이나 보도국 고위 간부들의 시각이 크게 반영된 결과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현장의 기자들 또한 기자로서 치열한 문제의식이 요구된다고 봅니다. 당시 상황 자체가 워낙 몰려가는 분위기이기는 했지만 취재 현장에서부터 언론의 일방적인 여론몰이를 견제하기 위한 노력들을 그다지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입니다.

─성혜림 망명사건이나 귀순자 보도문제도 짚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특히 조선(북한) 잠수함사건 까지 터져 올해 역시 ‘조선(북한) 변수’가 정국에 미친 영향도 컸었습니다.

─조선(북한)귀순자 사건, 조선(북한) 붕괴설, 잠수함 사건 등 조선(북한)변수가 정국 풍향에 큰 영향을 미친게 사실입니다. 이런 사건들을 계기로 정부는 우리 사회의 보수화 경향을 더욱 강화시킨게 아닌가 하는데요. 문제는 DMZ사건 보도 등에서 잘 나타난 바와 같이 남북관계를 경색시키며 보수화 분위기를 증폭시키는 데 가장 앞장선 것이 언론이었다는 점입니다.

불공정 보도 예방 노력 절실

─이같은 언론보도의 저변에는 안보상업주의가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방송의 경우 DMZ 사건, 잠수함 사건 등 조선(북한) 관련 뉴스들이 시청률이 높다는 이유로 뉴스시간대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심지어는 시청률을 높인다는 이유로 점쟁이의 간첩 행방 찾기 등 안보상황을 호도할 수 있는 흥미거리 아이템이 주요 기사로 처리되기도 했습니다.

─귀순자보도 역시 문제였습니다. 정보에 대한 가치판단이 없습니다. 정보가치가 전혀 없는 평범한 일반귀순자들의 기자회견 내용까지 일일이 생중계하는가 하면 검증 노력 없이 귀순자들의 말이라면 조선(북한)의 실상이라며 무책임하게 보도했습니다.

또한 방송 3사가 모든 귀순자 회견을 전부 생중계한 것도 문제입니다. 조선(북한)경제의 어려움으로 귀순자들이 계속 발생하는 상황인데 언제까지 이렇게 생중계를 계속 할 것인지는 재고해야 할 것입니다. 전파 낭비인데다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을 빼앗는 행위입니다.

─조선(북한) 관련 뉴스 파행의 1차적인 원인은 조선(북한)의 실상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약하는 외적요인에 있습니다. 첫째는 조선(북한) 관련 보도에 대한 정부의 보도지침이고 둘째는 조선(북한)이라는 일차 취재원과의 접촉을 제한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입니다. 이 두가지 외적 요인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조선(북한) 실상에 대한 객관적 접근이 힘들다고 봅니다.

─언론의 전반적인 보도경향이나 제작방침 쪽으로 눈을 돌리면 방송 뉴스의 연성화와 신문의 잡지화가 두드러져 보이는데요.

─방송뉴스의 연성화도 방송사간의 시청률 경쟁에 따른 결과입니다. 시청률이 모든 뉴스의 가치 판단을 좌우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국회의 국정감사 등 정치기사는 시청률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빠지거나 축소되고 그 빈자리를 생활 정보나 토픽성 기사 등 연성화된 뉴스가 채우고 있는 것이죠. 물론 생활정보 등 뉴스의 다양화란 측면에서 뉴스의 연성화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청률이 문제라지만 정치뉴스 등 무거운 뉴스들이 시청률이 안나온다고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 언제 방송이 본격적인 정치뉴스를 다뤄본 적이 있습니까. 지금의 뉴스 연성화는 뉴스 접근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상당부분 소재주의에 빠져 정작 뉴스로 다뤄야 할 것을 다루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주요 쟁점을 피해가거나 정부를 비판하거나 하는 정치뉴스를 적게 다루거나 사소화시켜 뉴스 자체를 희화화하고 있습니다. 심하게 말한다면 지금 방송뉴스의 연성화는 곧 ‘재미’를 앞세워 언론의 비판적인 기능 자체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꼴입니다.

─신문의 잡지화 경향은 생활기사 등 유익한 정보를 많이 제공하고 일반 기사형식으로는 자칫 소홀하기 쉬운 주제나 쟁점들에 대한 심층적인 취재및 접근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각적인 측면이 강조되다 보니 신문 편집 본연의 기능이 퇴색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신문 편집은 특별한 사안을 키우거나 사소한 문제를 한 데 묶어 뉴스의 가치를 높이고 이를 사회적 쟁점으로 만드는 것이 주임무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역할은 소홀해지고 포장 기술측면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우려되는 점들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민실위 활동에 대해서도 평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선 각 언론사노조의 내부 감시활동이 위축되면서 연맹 민실위 활동 또한 일선 취재및 보도현장과의 피드백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만.

취재기자 전문성 제고도 시급

─방송이 권력 편들기에 치중한 반면 신문은 오히려 재벌편들기 보도를 많이 했습니다. 재벌의 영향력 확대 욕구는 권력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신문사간에 치열해 지고 있는 경쟁상황이 경기불황과 맞물리면서 신문에 대한 재벌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민실위가 그간 재벌에 의한 왜곡보도 사례에 대해서는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언론 감시부분에서 특히 재벌 감시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겠습니다.

─대체로 사후적인 비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만 왜곡 불공정 보도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경주돼야 할 것 같습니다.

─신문의 경우 사주에 의한 편집권 제약이 더 심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처럼 편집권이 훼손된 적이 없습니다. 사주가 회사의 이익을 앞세우면 편집국장 이하 일선기자들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입니다. 기자본연의 임무를 벗어나는 일들도 회사의 이익이란 명분하에 하게 됩니다.

이같은 신문사의 상황으로 볼 때 각 신문사 민실위의 활동을 더욱 강화해야하겠습니다. 그러나 사주의 막강한 통제력은 오히려 민실위 활동의 현실적인 어려움이 되고 있습니다. 각 사별 대응이 어렵다고 한다면 연맹 민실위로 각 언론사의 내부 감시역량을 집결시키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권력에 의한 언론통제는 더욱 극심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언론의 공정보도 또한 국민적 심판대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지난 4·11 총선때 선거감시연대회의에 전적으로 선거보도에 대한 비판및 감시활동을 맡긴 것은 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실위 차원에서도 내년 대통령선거 보도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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