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는 한국 언론의 모습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묵은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면 으례적으로라도 ‘희망’과 ‘기대’를 실어 덕담을 주고 받는게 마땅하겠지만 언론 안팎의 현실은 이같은 덕담을 나누기엔 참으로 엄혹하다.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언론계에 불어닥치고 있는 감원과 감량의 황량한 삭풍 탓만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 사회가 정치적·사회적 민주화에 있어 일정한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되기도 하지만 언론의 공신력과 독립성은 오히려 뒷걸음치는 역류의 흐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 대한 권력의 개입과 통제는 문민의 시대에서도 결코 개선되지 않았다. 정보기관등을 동원한 물리적인 탄압은 사라졌다고 하지만 권력의 언론 고삐죄기는 보다 노골적이고 구조화되고 있다. 자본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대다수 언론의 소유 구조 자체가 자본의 지배하에 놓여 있을 뿐 아니라 그 경영과 편집방향마저 자본의 영향력에 휘둘리고 있는 실정이다. 신문은 신문대로, 방송은 방송대로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경쟁의 가속화로 상업주의·선정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언론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뿌리부터 위협하고 있다.

반면 이에 대한 언론 내부의 견제장치는 오히려 무력화되고 있다. 비판적인 견제세력 역시 언론과 언론인이라는 사회적 가치보다는 경쟁과 생존논리를 앞세운 자사이기주의의 물결 속에서 위축되고 있는 게 오늘 한국 언론의 자화상이다. 이 때문에 오늘 한국 언론의 위기가 말해지고 있기도 하다.

한국 언론이, 한국 언론의 저널리즘이 위기에 직면한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 한국 언론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구조적으로 권력과 자본에 예속돼 있는 한국 언론의 본질적인 ‘질곡’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성격을 달리한다.

87년 6월 시민항쟁이 넓혀놓은 민주화공간에서 싹을 틔웠던 언론운동이 그 1세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순환을 거치고 난 다음 닥치고 있는 위기라는 점에서도 결코 이전의 ‘위기’와 같은 것일 수 없다.

위기에 대한 처방은 다양하게 모색되고 있다. 지난해 신문전쟁을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거론됐던 신문 자본의 소유 제한이나 방송법 논란에서 제기된 방송위원회의 권한 강화및 공영방송 사장인선방식의 변경등이 제도적 개선책으로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위축된 언론운동의 활성화 논의는 실제 언론개혁의 1차적 책무가 언론인들에게 있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점은 한국 언론의 위기는 언론계의 사회적 담론의 빈곤에 기인하는 측면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 사회의 변화와 진전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선택들을 해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언론계 내의 다양한 논의의 부재는 곧 한국 언론의 사회적 상상력의 빈곤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사회를 보다 나은 사회, 보다 인간적인 사회로 만들고자 하는 소망이야말로 모든 언론 활동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는 소중한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곧 언론과 언론인의 사회적 역할이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다시 묻는 일이기도 하겠다.

새해 벽두 암담해보이기까지 한 언론 상황을 새삼 거론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한국 언론을 옥죄고 있는 이 질곡을 헤쳐나가지 않고서는 진정 신명나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질곡의 굴레를 타파하지 않고선 활로를 모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려움이 있다면 함께 나누고, 막힌 언로의 물꼬를 트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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