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두드리자. 그리고 벽을 깨자. 새해, 언론이 풀어야할 숙제는 많다.
그 가운데서도 취재의 소외지대에 한번쯤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여성·인권·노동·철거민 ·장애인 등 우리 사회의 소외지대에 살고 있는 약자들은 언론에서도 여전히 이방인으로만 투영된다. 그 중요성에 비해 지면과 화면에 나오는 그들의 모습은 초라하다. 반대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언론에겐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경우도 많다. 안기부·기무사 등 정보기관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각 언론사의 취재 시스템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해결 방안을 찾는게 그리 쉽지는 않다. 구조적인 문제인데다 또 ‘관행 파괴’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양지로만 향하는 언론의 눈길을 음지로 돌려보자는 취지에서 취재의 소외지대로 남아 있는 대표적인 곳을 점검한다.


“안 쓰는 것이 낫다” 성역 취급

정보기관
안기부와 기무사.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힘이 센 권력기관을 손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이름들이다. 단적으로 기무사는 대통령 2명과 안기부장 3명, 육참총장 2명을 배출한 권력 사관학교였다.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가져 온 곳도 중앙정보부라는 권력 심장부였다.

이들 기관은 한국을 움직이고 또 권력을 지탱시킨다. 특히 특정 권력자와 정권에 충성하는 친위조직이라는 오명은 다른 한편으론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공포감’의 근원지임을 의미했다. 김영삼 정부들어 역할 축소가 거론되고 실제로 업무조정 작업이 벌어졌지만 안기부의 수사권 부활 움직임등 위상은 다시 ‘원위치’되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이들 정보기관을 ‘소 닭 쳐다보듯이’ 한다. 취재의지도 없고 관심도 없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지난 94년 공보관실을 신설한 안기부의 경우 공식적인 취재 통로는 확보했지만 ‘외형적인 변화’를 뒷받침할만 내용적인 변화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정보기관은 기본적으로 ‘기밀’을 생명으로 한다. 따라서 언론은 결단코 ‘동지’일수 없다. 그러나 언론의 무관심은 필연적으로 정보기관의 ‘독주’를 낳는다. 그 해독은 단순하지가 않다.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때로는 그 칼날이 언론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기도 한다.

물론 언론도 변명은 있다. 취재를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한다”는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 기관은 지면에서 ‘특별 대접’을 받는다. 확인된 사실도 이들 기관이 개입했을 경우 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본적으로 감시의지가 없는데다 보도 자체를 기피하는 경향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정보기관의 문을 두드리는 일선기자들이 나올리 만무하다. 다소 거칠을 수도 있다. 혹은 섣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누리는 지위에 걸맞게 비중있는 관심과 견제 의지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때 이들 정보기관에 묻어 있는 ‘신화’는 깨질 수 있다. 한국언론이 무엇때문에 정보기관에 그리 관대한지 진실로 의문이다.

‘동업자 봐주기’ 관행 뿌리깊어

언론
‘동업자 봐주기’. 한국 언론의 뿌리깊은 전통이다. 사회 각 분야에 대해선 비판의 매서운 칼날을 들이대지만 동업자들에겐 한없이 관대하다. 물론 예외는 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을 경우 ‘지면 도배’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관련 기사가 폭주하기도 한다. 지난 7월 조선일보 남원당 지국장 살해사건으로 촉발된 이른바 ‘신문대란’ 당시 각 신문사가 보여준 모습은 이를 압축적으로 입증했다.

언론사가 그 어떤 곳보다 자신들에 대한 언론보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같은 ‘침묵’을 야기하는 한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론사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사회적 욕구는 그 어느때보다 높다. 지난해 8월 ‘신문전쟁 시리즈’를 연재했던 한겨레 여론매체팀이 96년 각종 언론상을 휩쓴데서 사회적 요구의 정도를 가늠케한다.

기사의 파장도 만만치 않았지만 언론에 대한 사회 일각의 비판적 시각과 자유로운 보도에 대한 기대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오래전에 언론은 중요한 취재처로 부상해 있다. 관련 전문기자들도 상당수이고 매체도 다양하게 발행된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대기자급의 옴부즈맨을 두고 다른 언론사 취재와 자체 감시를 동시에 수행한다. 이들은 언론사 사주의 비리 뿐만아니라 해당 신문 기자들의 비위 사실까지 묵과하지 않는다. 이들에 의해 언론사를 떠나는 기자가 나오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일부 주·월간지와 일간지가 자체 옴부즈맨을 가동하거나 언론을 적극적인 보도대상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은 희망적이다. 그러나 ‘한계’도 엿보인다. 무엇보다 언론사 내부의 자정 의지가 지나치게 낮다보니 피상적인 접근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남들에겐 ‘엄’하고 자신에겐 ‘후’한 언론의 빗나간 ‘관행’이 이제는 ‘파괴’돼야 될 시점에 처해 있다.

“관심 기울일 여력 없다” 외면

교도소
재소자들의 인권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일상화돼 있는 교도관들의 폭행, 직권 남용, 단식투쟁, 자해행위, 부정물품 반입, 재소자들간의 싸움 등 전국의 교도소와 구치소에선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일들이 발생한다.

지난 90년만해도 1년간 3천여명에 달하는 재소자들이 단식을 벌였다. 현재 전국 교도소와 구치소에 수감중인 재소자 수는 6만3천명(96년 7월 집계). 이미 수용능력을 1만명이나 넘어섰을 정도로 지금 교도소는 ‘만원’이다.

전국에 40개 교도소와 구치소가 있지만 이곳에 눈을 돌리는 언론사는 거의 없다. 그나마 법조 출입 기자들이 교도소 취재를 맡고 있으나 매일 쏟아지는 범죄, 판결, 수사 기사로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다. 재소자들의 단식농성은 아예 뉴스거리로 보지도 않는 등 뉴스벨류도 지극히 낮다.

이 관심의 사각지대에서 재소자들은 ‘방치’된채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다. 저항수단도 단식농성 등에 의존하는 정도다. 단식이라는 것이 자신의 생명을 걸고 재감시설내의 불의에 항의하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지극히 위험스런 항의방식으로 볼수 있다.

국내 인권단체들은 재소자의 교도소내 인권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언론이 관심을 가져 개혁의 실마리를 찾기를 기대하고 있다.
언론계도 일상적인 교도소 취재의 필요성에 대해선 일정부분 공감하는 분위기다. 동아일보 사회부 심규선 차장은 “재소자들의 인권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우리 언론이 교도소 문제에 대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검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성해야 할 부분이다”며 “출소자 등 취재의지만 있다면 실태 분석의 통로는 무한하다”고 밝혔다.

사건 터지면 ‘반짝 취재’

대사관
미국 워싱턴에 소재한 주요 국가의 대사관은 항상 기자들로 붐빈다. 그만큼 뉴스도 많고 잡다한 정보 수집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어떤가. 기자들의 모습을 아예 찾아 볼수 없다. 비자 발급 비리 등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터질때 생색내기식의 ‘반짝 취재’에 그친다. 지속적인 관심의 흔적은 찾아 볼수 없다.

그러나 국내에 나와 있는 대사관의 업무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자세히 눈길만 기울인다면 특종이 널려 있기도 하다. 국내에 상주공관을 설치하고 있는 국가는 모두 87개. 만만치 않은 규모를 자랑하는 곳도 있다.

주일 대사관의 경우 대사 등 순수 외무부 직원 22명과 정부 각 부처 주재관 59명 등 모두 81명이 상주하고 있으며 현지 고용원까지 합한다면 2백명에 이른다. 주재관을 파견하고 있는 정부부처는 국회사무처 법원 행정처에 이르기까지 18개로 정부의 거의 모든 부처를 망라하고 있다. 주미 대사관등 다른 주요국가 공관도 비슷한 규모이다.

특히 이곳에선 비공식적인 정보요원 한둘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지난해 3월 성혜랑씨 탈북 사건이 터졌을 당시 주미대사관이 주요 취재기관으로 부상됐지만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언론사들은 ‘수박 겉핥기 식’의 취재패턴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더구나 서울을 아시아 태평양의 외교 중심지로 만든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다. 지난해 착공된 외교센터도 이러한 계획의 일환이다. 시대변화에 따라 자국기업의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현장을 발로 뛰는 외국 대사관이 늘고 있는 것 역시 한국 언론 입장에선 주목할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외무부에 출입하는 기자 혼자서 전담하는 식의 취재방식으론 주한 외교가를 뚫을 수 없다. 경찰 기자들을 활용하는 식의 새로운 방법이 모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언론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한 언론인은 “한국기자들의 어학수준이 과연 대사관을 자유롭게 취재할 수 있는 수준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한국 언론의 ‘세계화’에 대한 비참한 진단이다.

명문대기사는 무조건 키워도…

비명문대
신문이나 방송만 들여다 보면 우리나라에는 대학이 몇개 없는 것 같다.
언론이 대학에 주목할 때 처음 거론되는 곳은 우선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명문대학이다. 전문대와 4년제 대학을 포함한 전체 2백76개(96년 현재 교육부 통계) 대학중 나머지 대학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는지 언론을 통해서는 쉽게 포착할 수 없다. 큰 사고나 저지르지 않는 한 이들 대학들이 언론에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학 관련 보도가 명문대 중심으로 흐르는 것에 대해 기자들이 말하는 이유는 이렇다. “서울대가 하는 일은 대단히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그만큼의 비중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서울대에 대한 보도는 이런 정책적이고 중요한 보도만 있는 게 아니다. 요즘 학생들이 무슨 농담을 하는지, 도서관에서 무슨 공부를 하는지, 술 마시고 행패를 부렸는지 안 부렸는지 등등 사소하고 시시콜콜하기까지 하다.

대학 관련 보도는 경찰기자들의 몫이다. 30여개 경찰서를 9개 정도의 구역으로 나눠 각 담당 경찰기자들이 해당구역의 대학취재를 담당한다. 이들의 취재 는 명문대를 겨냥한다.

관악서를 출입하던 한 기자는 “기자들이 서울대는 거의 매일 나가지만 같은 지역에 있는 중앙대와 숭실대는 거의 가지 않았다. 심지어는 관악서를 출입한지 4개월이 지나도록 중앙대를 한번도 안간 기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고려대와 국민대, 성신여대 등이 있는 종로서 출입기자들은 물론 고려대에만 들린다.

이들이 비명문대학 관련 아이템을 만들어봐도 데스크에서 거부되기 일쑤라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또 한편에서는 이 문제를 대학관련 보도의 사건 중심, 시위·학생운동 중심 보도 태도에서 찾기도 한다. 대학보도에서 정작 중요한 전반적인 대학교육, 대학문화 보다 일시적인 현상에서만 접근해 전체적인 대학의 상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홍보도 없고 취재도 없고…

소기업
지난 1년 동안 소기업의 구체적인 실상이나 이와 관련한 정부 정책을 다룬 기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 중소기업 보도에 포함돼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 중견기업 관련 보도일 뿐이었다.
그러나 소기업이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적지 않다. 소기업은 매출액이 대기업에 훨씬 못미치지만 소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는 대기업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94년 현재 고용인 3백인 이상 대기업에 속한 월 평균 노동인구는 91만여명. 반면 50인 이하 소기업 사업장에 고용된 월 평균 노동인구도 1백17만명에 이른다. 미국의 경우 소기업이 전체 경제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0%를 넘는다. 당연히 경제 기사에서 소기업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소기업이 우리언론에 의해 ‘홀대’ 받는 이유는 다양하다.
대기업이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데다 독자들의 관심, 그리고 그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실제 30대 그룹이 전체 GN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2%에 다다른다.

그러나 반드시 이 때문만은 아니다. 언론의 ‘자기 편의’ 도 대기업 편중을 낳는 한 요인이다. 취재가 용이하고 대기업의 대언론 서비스 정신은 상당히 철저하다. 홍보실과 기자실이 있고 기자들에게 보도할 만한 내용이 들어있는 보도자료를 수시로 배포한다.

반면 중견기업만 해도 언론 홍보 마인드가 부족하다. 기자실도 홍보실도 없고 기자들은 무조건 피하려 한다는게 중소기업 담당 기자들의 얘기다.
더욱이 각 신문사 경제부에 중소기업을 전담하는 인력은 태부족하다.
2백33만개나 되는 중소기업을 돌아다닐 수는 없다. 결국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나오는 자료에 의존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기업의 소외는 피할 수 없다. 중견기업 보다 훨씬 취약하다. 이들도 이를 의식한듯 최근에 ‘소기업 연합’을 구성하는 등 비중에 걸맞는 대접을 요구하고 있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 대한 반감이기도 하다.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재벌의 영향력을 제어한다는 차원에서도 이들 소기업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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