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년 새해. 얼어붙었던 남북언론의 교류에도 새로운 획을 긋게 되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런 기대감들이 조금씩 싹트고 있다.

이는 새로 들어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남북언론교류에 대해 긍정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다가 언론노련등 각 언론단체들도 구체적 계획마련에 들어가는 등 남북언론교류의 물꼬를 트기위해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우선 언론단체들은 남북언론교류를 위해 제도적인 벽부터 허무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다.

국가안전기획부 법 제2조 2항등에 근거하고 있는 ‘특수자료 취급지침’조항은 언론이 조선(북한)의 기초자료에 접근하는 것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취급지침에 따르면 조선(북한)의 신문, 방송, 잡지등 1차 자료를 보도하려는 언론사는 안기부장에게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한 일반 언론사의 조선(북한)TV방송청취는 아예 불가능한 실정이다.

일부 언론사들은 조선(북한)의 TV방송을 시청하지는 못하더라도 라디오 방송은 청취를 하고 있다. 그러나 라디오 방송으로 청취한 내용도 보도하기 위해서는 취급지침에 따라 사전 승인을 받도록 되어 있다. 이같은 규정을 사안에 따라 때로 무시하더라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발목을 잡아맬수 있는 묘한 규정이다.

언론단체들은 이같은 ‘특수자료 취급지침’ 폐지를 관철시킬 계획이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측도 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빠른시일내에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언론사내에 팽배해 있는 조선(북한)에 관한 부정적인 시각을 재정립하는 것도 시급한 문제다. 그동안 언론사들의 조선(북한)관련 자료나 보도는 정부 정책을 일방적으로 받아쓰는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다. 연합통신 북한부 정일용기자는 “대북 보도에 대해서 언론은 그동안 기본 기능을 포기해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 정책과는 별개로 언론은 나름의 역할이 있다. 우리 언론에는 북한에 대해 기본적으로 축적된 정보가 없다. 앞으로 북한 관련 대형사건이 터져나올 경우 외신에 의존하는 불상사가 생겨야 하겠느냐”며 인식 변화의 시급함을 지적했다.

이와함께 안기부에 소속된 내외통신의 위상변화가 하루 빨리 이루져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70년대 중반 조선(북한)문제 연구기관으로 탄생, 일간통신사로 등록한 내외통신은 조선(북한)에서 나오는 방송 등의 영상물, 신문·잡지·원전 등 간행물 등 1차자료를 독점하면서 이 중 취사선택해 언론에 정리·배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민감한 정치적 시기마다 특정정당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이슈를 만들어 의도적으로 여론을 왜곡시켜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더구나 내외통신의 존립근거 자체가 여전히 안기부내 심리공작을 담당하고 있는 ‘심리전실’ 산하의 한 부속기구로 돼 있어 안기부의 조직적 통제를 받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돼 왔다.

특히 안기부는 내외통신 기사에 대해 일일이 데스크보듯이 점검해오고 있다. 언론이 스스로 자료를 접해 현상을 진단하고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내외통신의 한 기자는 이번 대선에서도 일부 의도적인 편집이 이루어졌다고 전했다. 그는 “월북한 오익제씨를 다루면서 신분을 전천도교 교령이 아닌 새정치국민회의 상임고문으로 내보내게 된 것은 간부들의 판단이 작용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예전 같으면 이슈를 삼을 수 있는 사안인데도 안쓴 경우가 많았다. 정권교체 가능성이 타진되면서 몸사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며 최근의 변화상을 전했다.

내외통신 내부에서는 연합통신으로의 이관, 통일원으로의 이양, 전문통신사화등 위상변화를 바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또 안기부만 국내에서 유일하게 ‘조선중앙통신사’의 국문 통신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북한)당국이 대내외로 공식입장을 천명할 때 이용하고 있는 중앙통신사의 국문통신은 조선(북한)에서 오는 1차자료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평가받고 있다. 통일원 역시 국문통신이 아닌 제3국으로 보내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쓰인 통신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역시 언론사 자체 의지의 여부가 문제 해결의 관건이다.

97년 한해는 어느해보다 언론사의 조선(북한) 취재 경쟁이 활발했었다. KBS는 지난 6월 조선(북한)동포들의 기아 실상을 화면에 담아 ‘일요스페셜-지금 북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를 내보냈고 MBC도 ‘PD수첩’을 통해 조선(북한)주민이 인육을 먹고 있다는 내용을 방송해 논란을 빚었다. 신문사들도 조선(북한)의 식량 사정을 시리즈로 내보냈으며 조선(북한)의 문화재를 경쟁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조선(북한) 현지 취재 열정은 대단한 반면 조선(북한)에 대한 일반적이고 평상시에 이뤄져야 할 사실 취재 노력을 계속하지 않는 모습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언론사 스스로가 조선(북한)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적극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기자들도 조선(북한) 문제에 적극적일 경우 주위로부터 ‘친북주의자’아니냐는 의심스런 눈초리를 받기 일쑤라고 토로하기도 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정권의 정책과 관계기관의 변화가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언론정책과 관련 정책 구상을 담당하고 있는 국민회의 홍순태 전문위원은 “특수자료 취급지침은 당연히 폐지돼야 한다. 다만 안보와 관련된 부분도 있어 이 부분은 안기부와 언론이 자체적인 협의를 통해 해결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안기부 개혁문제와 직접 관련된 문제들인 만큼 큰 틀에서 정책이 검토중이다. 아직까지는 밝히기 힘들다”고 말했다. 다만 이전의 상태는 아닐 것임을 시사해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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