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가 꽁꽁 얼어 붙었다. 경영위기설이 성큼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언론사의 매출추이가 수직낙하하기 시작했고 빚더미는 더욱 늘고 있다. ‘위기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회사측의 공세는 감원·임금 삭감 바람으로 구체화되고, 언론노조는 머리띠를 동여 맬 태세를 갖추고 있다. 부도와 언론시장 재편까지 예고되는 극심한 위기상황, 그 원인과 전망을 연속기획으로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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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가 거품 걷기에 바쁘다. 신문사는 서둘러 감면·감부를 선언하고 있고 방송사는 방송시간 단축과 제작 편수 축소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신문·방송을 막론하고 물자절약운동에 돌입하는가 하면 경비줄이기에도 고심하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경영위기에 빠질 때마다 0순위 처방으로 동원되던 인건비 축소도 어김없이 감행되고 있다. 사측은 인원 축소, 임금 동결 또는 감봉을 ‘특효 처방전’으로 내놓고 있다. 그리곤 너무나 떳떳하다. 공멸을 피하기 위해서는 일부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아니 당연한 조치라는 태도다.

언론산업을 위기로 내몬 직접적인 계기는 물론 IMF한파이다. 환율급등으로 제작비가 두배, 세배 껑충 뛰고 있고, 광고시장은 초긴축으로 돌아서버렸다. TV3사의 내년 1월 광고예약률은 50%대에서 맴돌고 있으며, 신문사의 올해 경영수지도 1∼2개 신문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적자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위기상황의 원인을 IMF에서만 찾는 것은 단견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다. 이같은 위기상황은 이미 예정돼 있던 것이라는 점, IMF는 단지 이에 가속도만을 붙였을 뿐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이다.

그럼 위기의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그 실마리는 각 언론사의 년도별 재무제표에서 확인된다. 일부 언론사를 제외한 대다수 언론사, 특히 신문사의 재무제표를 보면 해가 거듭할수록 부채비율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려왔다. 이에 비례해서 금융비용 또한 상승추세를 보여, 1년 피땀 흘려 벌어들인 이득은 고스란히 ‘빚잔치’로 까먹어 왔음도 확인할 수 있다.

언론사의 이런 빚더미 경영 뒤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무한출혈경쟁이다. 무한경쟁의 목표점은 오직 한가지, 광고 유치이다. 신문사가 전체 매출의 80%를 광고에 의존하고, KBS1을 제외한 전 방송사가 광고에 매출을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광고 유치를 위한 부수·시청률 제고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사항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같은 현실이 무가지 살포, 경품 제공 등과 같이 시장질서를 교란시키는 편법들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편법을 동원하기 위해 무리한 차입경영을 감행한 경영진의 책임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그런 점에서 무한경쟁을 선도해온 일부 재벌언론의 악폐는 누누히 지적해도 부족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이런 편법들이 시정된다 하더라도 언론사간의 무한경쟁은 피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우리 언론시장구조는 한마디로 ‘우산구조’라고 요약할 수 있다. 2∼3개 거대지배기업과 ‘군소기업’간의 격차가 극심하게 벌어지는 양극화 구조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분석은 무엇보다도 시장원리에서 찾을 수 있다.

언론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일부 거대 지배기업들은 ‘독점’의 열망아래 시장 지배력을 더욱 높이기 위해 물량 공세를 퍼붓고, ‘군소기업’들은 이런 지배기업들의 공세에 밀려 한계기업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맞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시장의 엄혹한 논리가 무한경쟁을 낳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장 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언론사간의 무한경쟁이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는 점이다. 제동 요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IMF요인. 그동안 무한경쟁을 선도해온 것은 재벌언론, 그리고 재벌언론의 뒤에는 내부 거래 등을 통한 모기업의 지원이 있었다. 그러나 IMF체제의 성립으로 내부 거래와 같은 ‘후광’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이른바 ‘실탄’ 지급이 과거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같은 변화상은 재벌언론의 걸음속도를 늦출 공산이 크다.

또 하나의 요인은 새정부의 정책 기조. 당선 일성으로 자유시장원리를 천명했던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공정거래위의 기능 강화를 재삼 확인한 바 있다. 김당선자의 이같은 의지가 그대로 관철된다면 내부 거래가 완전히 종식됨은 물론 무가지 살포, 경품 제공 등과 같은 불공정 관행들도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요인들로 인해 공정경쟁이 정착된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언론사간의 자본력 격차가 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IMF한파가 끝나는 시점에서, ‘공정’의 울타리안에서 이루어질 경쟁의 양상은 자본력 싸움으로 귀착될 것이고 언론사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욱 극심해질 수 있다. 더욱이 ‘불황기가 투자의 최적기’라는 금언에 따라 일부 지배기업이 ‘영토 확장’을 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군소 기업’이 언론시장에서 퇴출되는 현상이 초래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일차 대상은 이미 한계상황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되는 일부 중앙지와 상당수의 지방지가 될 것이다. 실제로 지방지 기자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지방지 시장이 1도1사 구조로 재편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분석이 대두되고 있다. 가뜩이나 협소한 광고시장에다가, 중앙지가 분공장을 설립해 지방지 시장 상륙을 개시한 데 따른 결과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분석엔 한 가지 주요인이 빠져 있다. 바로 언론노조의 대응이 그것이다. 언론사 경영진의 위기 돌파 과정과 시장 재편전략에 언론노조가 어떤 식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귀결점은 달라질 수 있다.

‘위기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회사측의 공세 앞에 언론노조는 현재 수세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감량 경영은 불가피하지만 그것이 ‘동료 자르기’로 귀결돼서는 안된다는 마지노선을 설정하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수세적 분위기 속에서도 좀더 적극적인 분석과 제안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언론개혁을 이룰 수 있는 적기가 바로 지금이라는 시각이 그 요체이다.

이런 적극적인 전망은 우선 재벌·족벌 경영체제의 개혁으로 모아지고 있다. 부실·방만경영의 책임을 물어 재벌·족벌 경영진의 권한 축소와 노조의 경영참가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양적 경쟁 추세가 누그러지는 대신 질적 경쟁이 본격화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만큼 보도내용의 개혁과 이를 위한 편집·편성권의 분산도 이끌어 낼만하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다소 낙관적인 전망이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조합원 사이에 넓게 퍼져 있는 ‘생존 위기감’을 어떻게 불식시킬 것인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사 공히 배수진을 친 싸움이라면 관건은 ‘힘’에 달려있기 때문에 어떻게 조합원의 불안감을 승리에 대한 자신감으로 뒤바꿔놓을 수 있는가가 최대의 관건이 되는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 구랍 17일 ‘고용안정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본격 대응 채비에 나선 것도 이런 상황 인식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계는 지금 사상 초유의 위기국면에서 사상 초유의 대회전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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