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란 역시 어떤 뜻에서든 ‘시대의 거울’인가보다. 요즘의 지면과 화면들을 들여다보면 권력이동의 선연한 모습을 넘칠만큼 실감케 된다. 시대의 구비구비 마다에서 들어야했던 ‘용비어천가’의 변주곡이 어김없이 울려온다.

이미 이땅의 말장이들은 ‘김비어천가’라는 이죽거림마저 서슴지 않는다. 용처럼 날아오른 대통령 당선자, 그분의 말바꾸기도 이제는 모두 역사의 부름에 따른 응답으로 둔갑한다. 50년만의 여야 정권교체라는 유행가투의 언사도 이렇다할 주석없이 어엿한 시사용어로 굳어져간다.

4·19가 이루어냈던 여야 정권교체, 오늘과는 견줄수 없는 그 무구한 여야 정권교체도 무참히 묻혀버리고 만다. 오죽했으면 하루 아침에 칭송일색의 하늘에 떠오른 당사자가 스스로 계면쩍어하고 언짢아했다는 후문마저 들려오겠는가.

그러나 이제는 새해이다. 그 낯간지러운 사연들은 가슴속의 활화산으로 접어두고, 새해의 화두를 꼽아보는 것이 온당한 차례일 터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땅의 겨레가 6월민주항쟁으로 거두어낸 우리의 헌법 전문이다.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여…, 이렇게 이어지는 문장이 헌법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 새삼스러운 감회로 떠오른다.

민주개혁 그리고 사회적 폐습과 불의의 타파! 그렇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합의한 헌법의 으뜸가는 명령이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오늘의 참담한 사태도 그 지상 지엄한 명령을 배반한데서 빚어졌던 것이 아닌가. 혓바닥만의 개혁과 말놀이만의 타파는 그 배반을 가리고자 하는 분장술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의 사태는 어쩔 수 없이 그 배반을 응징하고, 헌법의 명령에 충성하는 지순한 개혁과 타파를 요구한다. 말하자면 우리의 헌법은 이미 앞질러, 총체적 개혁과 총체적 타파만이 총체적 난국의 처방임을 선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와 함께 떠오르는 또 하나의 화두는 역시 ‘언론 바로세우기’이다. 원론부터 털어놓자면 헌법 전문이 명령하는 개혁과 타파에 ‘성역’이 있을 수 없다. 더구나 언론은 민주국가 또는 민주사회의 엔진이라고도 자찬된다. 엔진의 고장을 다스리지 않는 민주국가 또는 민주사회의 개혁과 타파란 애당초 그 명실이 일치하지 못한다.

중국의 속담은 우리와는 달리, 소를 잃은 뒤에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고 가르친다. 오늘의 우리를 내다보고 지어진 속담인 것도 같다. 이제부터라도, 아니 이제야말로 언론이라는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이런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유롭고 책임있는 언론’이라는 보고서를 냈던 미국의 헛친스 위원회이다.

1946년, <타임>의 발행인인 헨리 루스의 선도로 이룩된 그 위원회의 보고서는 그야말로 50년도 더 지난 이땅의 언론을 가리키는 듯한 진단을 내리고 있다. 이를테면 언론기업의 소유집중화 현상은 언론이 사회전체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또는 언론이 사회적으로 비난받을만한 활동을 하고 있어서 그대로 계속 방치한다면 정부의 간섭이 불가피하다는 대목 등이 그것이다.

이른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선구적 업적으로 평가되는 헛친스 위원회는, 그러나 현실적 구속력과 실천의 열매를 거두는 성공에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따라서 지나친 연발로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는 우리는 그들의 업적과 대비되는 실천적 실패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

사실 우리는 그들처럼 보고서를 마련하는데 1년여를 들일만한 겨를이 없다. 아니, 어쩌면 그만한 시간을 들여야 할 필요도 없다. 그들쯤의 보고서 수준이라면 쌓이고 쌓여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처방전도 어지간히 마련되었다고 자부할만 하다.

그 일단이 언론노련과 기자협회, 그리고 프로듀서연합회 등 3단체가 마련한 ‘언론개혁 10대과제’이다. 그들은 공보처의 폐지와 방송위원회의 독립, 공영방송 사장 선임제도의 개선에서부터 재벌의 언론소유 원천봉쇄와 족벌소유의 상한선 제도화 그리고 편집 편성규약 채택의 의무화와 국민주방송 설립에 이르기까지 꽤 짜임새있는 그림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 그림의 다듬기이며, 그 그림의 현실화를 위한 운동일 뿐이다. 구태여 ‘운동’임을 선언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우리의 ‘언론 바로세우기’를 애당초 권력이동의 기류에 기댈 수는 없는 탓이다. 언론 3단체가 중심이 되고 시민사회단체들이 가세하는 국민운동으로, 우리는 기필코 언론다운 언론의 새해를 열어내야 한다. 민주언론의 전사들이여, 분연히 그 앞장에 나서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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