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의 계열신문사에 대한 부당 지원에 대해 지난 24일 공정위가 내린 시정명령은 그동안 신문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을 새삼 확인한 것이다. 그동안 재벌 소유 신문사들에게 모기업은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고 또 우군이었다. 따라서 발표 내용이 새로울 것은 없다. 다만 그러한 관행에 대해 침묵과 의도적인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정부당국이 칼날을 들었다는 점은 주목된다.

특히 15대 대선이 끝나고 언론개혁이 거론되는 시점에서 공정거래위가 이 문제를 들고 나오자 일각에선 ‘언론개혁’과 연관시켜 보는 시각도 상당하다. 공정위는 당초 지난 7월 재벌 소유 광고대행사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거쳐 재벌과 재벌소유 신문과의 ‘내부자 거래 실태’를 파악했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는 결과 공표를 미뤄왔다.

이번 조치로 재벌 소유 신문사들은 경영에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벌 소유 신문사들은 그동안 모기업과 지급보증 등의 형태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95년 기준으로 경향이 한화종합화학, 한화에너지 등 한화계열사에 2천 8백억원대의 차입금 지급 보증을 받고 있으며 삼성그룹 관계회사들도 중앙일보에 1천 1백 47억원대의 지급보증을 서주었다. 95년 7월 발생한 소위 신문전쟁 당시 한 신문사가 자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앙일보의 경우 다른 신문에 비해 2.5배 이상 삼성 광고 물량이 많은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경향신문이나 문화일보 모두 매출액의 10분의 1 이상에 달하는 광고를 모기업으로부터 받아왔다. 여기에 금융대출 지원, 계열사를 통한 부수확장 등 유무형의 지원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신문사들의 과당 경쟁을 부채질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돈 걱정 없는 신문사들의 ‘물량 작전’에 다른 신문사들도 마찬가지의 과잉 투자를 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비재벌 소유 신문사들이 그동안 끈질기게 요구해온 ‘공정경쟁’의 토대 마련에 중대한 기폭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재벌소유 신문사 입장에서도 나름의 기회일 수도 있다. ‘자생력’만 갖춘다면 재벌과 모기업으로부터 독립돼 ‘정론’을 펼칠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들 신문사들의 경우 모기업의 자금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 독자 경영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최근 ‘재벌 개혁’이 핵심적 개혁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민주노총 등은 공공연히 재벌이 신문사를 소유하는 풍토를 개선해야 한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할 때 그동안 경영난의 무풍지대로 여겨졌던 재벌 소유 신문들의 ‘시련’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존폐의 기로에까지 당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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