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당선자를 미리 예측한 MBC 투표자 조사 발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초점은 MBC의 투표자 조사 발표가 정당했는가, 아닌가로 모아진다.

KBS, SBS 등 결과적으로 ‘물을 먹은’ 언론사들은 “MBC가 상습적으로 약속을 파기하고 있다”며 분노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KBS 보도국의 한 간부는 “방송사간의 약속을 못지키면서 어떻게 국민과의 약속을 지킨다고 할 수 있겠느냐”며 “방송의 신뢰도를 땅에 떨어뜨리는 처사였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SBS 송도균 보도본부장은 “MBC가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중계방송에 이어 이번에도 신의를 저버렸다”고 성토했다.

그러나 KBS, SBS의 일부 기자들은 비난의 화살을 오히려 자신들의 내부로 돌리기도 했다. 한 기자는 “후보간 득표율 차이가 박빙인 상황에서 오히려 자정 이후에나 예측보도를 하겠다는 것은 고위 간부들의 몸사리기 아니냐”고 지적했다. 다른 기자는 “조사결과가 이회창 후보가 앞섰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KBS는 이날 MBC 투표자 조사 결과 발표 직후 대책회의를 갖고 보도여부를 놓고 격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학계 인사로 구성된 대선보도자문단의 만류로 결국 자정 이후 예측보도를 내보냈다. SBS도 저녁 8시 30분경까지 예측시스템을 가동시킨 결과 김대중 후보의 승리가 확실시되자 조사결과를 공개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약속 준수’ 쪽으로 결정했다.

MBC 경영진은 약속파기에 대해선 상대 방송사에 사과를 하는 등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 실무진들은 조사 결과에 자신이 있고 예고방송을 통해 시청자들과 약속까지 한 마당에 이를 사장시켰다면 더 큰 과오를 범했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1, 2위간 조사결과 차이가 1% 포인트에 불과했지만 그동안 선거여론조사 때마다 정확성을 자랑했던 갤럽측의 자신감도 조사결과 발표를 강행토록 한 주요원인이었다. 특히 갤럽은 이번 조사에서 동일인에게 4~5회 같은 질문을 물어 표심의 추이를 읽는 패널조사 기법을 도입한 게 주효했다고 자평했다.

MBC의 투표자 조사결과 발표는 선거법 위반 여부를 떠나 출구조사 허용 문제에 대한 공론을 다시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언론계는 다음 선거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투표결과 예측이 이뤄질 것이라며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조사결과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선 정치권이 출구조사를 전향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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